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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적멸보궁 도보순례하는 사람들
7월 2일 오전, 5대 적멸보궁을 걸어서 순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간 지 5시간만에 강원도 고성 건봉사에 도착했다. 일주문 앞의 느티나무 아래 누워있는 세 사람. 자신의 몸뚱이 만한 배낭을 옆에 두고 덥수룩한 수염을 한 그들의 행색에서 ‘주인공’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현민스님(김해 은하사), 이근태 씨(60, 부경대 식품공학과 교수), 이청수 씨(55, 부산 명지동). 6월 14일 불보종찰인 양산 통도사에서 출발한 세 사람은 정선 정암사, 영월 법흥사, 평창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고성 건봉사까지 걸어서 순례했다. 그들이 30Cm 보폭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겨 온 산길은 720Km나 된다.

건봉사에서 19일 동안의 장정을 회향한 그들은 단지 누워 있을 뿐이었지만 고된 여정을 거쳐 온 흔적이 역력했다. 새까만 피부, 부르튼 상처를 붕대를 돌돌 감은 다리, 손질하지 않은 머리, 그러나 진한 피로와 땀으로 지친 그들에게서는 강한 신념이 배어 나왔다. 역경을 넘어 선 그들은 환희심으로 다시 태어났다.

◇추억에서 시작된 만행
7월 2일 열아흐레 간의 만행을 회향하던 날, 건봉사로 불쑥 찾아든 취재진이 못마땅한 듯 도보순례단 일행은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이근태 거사의 도움으로 걸어 온 19일간의 일정을 들었다. 일행은 6월 14일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긴 여정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경주 안강, 영일 상옥, 영양 일월, 울진 현동을 지나 강원도 태백 땅으로 들어섰다. 출발한지 8일째 되던 6월 21일, 정선 정암사를 참배한 뒤 또다시 걸음을 옮긴 일행은 영월을 지나 사자산 법흥사, 평창을 거쳐 오대산 상원사에 도달했다. 태백준령을 따라 설악산 봉정암을 참배한 일행은 인제를 거쳐 고성 건봉사에 도착했다. 이렇게 걸어 온 길이 1800리, 남한에서 가장 길다는 낙동강의 1.5배에 달하는 거리였다.

이번 도보순례를 처음 제안한 이는 이근태 거사였다. 이근태 거사는 어렸을 적 법당에 비가 흥건히 젖는 것도 모른채 기도에 몰입했던 어머니의 정성을 떠올렸다. 단한번이라도 그런 어머니의 불심을 따라갈 수 있기를 서원했다. 5대 보궁을 걷는 계획은 그럴 듯 했다. 이제야 어머니의 정성에 보답할 길을 찾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뜻을 전해 들은 30년지기 도반이었던 현민스님이 기꺼이 동참했다. 그렇게 시작된 도보순례였다.

◇19일만의 재회
순례단 일행은 최종 도착지인 건봉사에서 이청수 거사의 아내를 만났다. 만행이 끝나는 날에 맞춰 일행을 태우러 오기로 약속돼 있었던 것이다. 기간 중 들렀던 평창 성곡사에서도 명정스님이 회향을 축하하러 왔다.

이청수 거사는 19만에 만난 아내를 보고도 무덤덤했다. 그러나 아내는 쳐다보는 눈을 의식한 탓에 표정을 감추고 있었지만 가슴 속에서 우러나는 반가움만은 숨기지 못했다. 수염으로 뒤덮인 남편의 얼굴을 보는 아내 양순이(현민스님의 표현이다)는 “곁에 있을땐 몰랐는데 새삼 남편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털어놓았다.

일행 가운데 이청수 거사가 가장 힘들어 했다. 현민스님과 이근태 거사는 지난해 봉정암에서 통도사를 걸어서 순례했던 경험을 갖고 있었지만, 이청수 거사는 처녀순례였기 때문이다. 속도도 가장 뒤쳐졌다. 어떻게든 일행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이청수 거사는 마음속으로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며 묵묵히 걸었다. 4일째 영양 일월산을 넘던 날은 너무 힘들어서 구경은 고사하고 땅만 보고 걸었다. 현민스님과 이근태 거사의 “집으로 돌아가라”는 장난투의 놀림에도 굴하지 않고 참회의 걸음을 착실히 내디뎠다. 마침내 이청수 거사는 만행의 마지막 종착지였던 건봉사 사리탑 앞에 설 수 있었다.

회향이 끝나고 이청수 거사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고백했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낸 보람을 느낀 것이다.

“무엇을 얻고자 만행에 동참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불자로서 보람된 일일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참여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처음부터 취재진을 외면하던 현민스님은 줄곧 웃음으로 취재를 피했다. 그 이유를 현민스님의 입을 빌리자면 이렇다. “여기서 입을 열면 또 하나의 상을 만들어내는 것이에요. 그동안 고생한 사람들을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묻지 말아주길 바랍니다.”

현민스님은 “나중에 함께 걸어보라”는 말로 소회를 대신했다. 말로써 표현되는 순간 어긋난다는 스님의 가르침이었다.

일행 가운데 리더 역을 맡았던 현민스님은 날마다 가장 먼저 출발했다. 조금이라도 앞서가는 이가 있어야 계획대로 일정을 이끌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지난해 만행에 이어 현민스님은 올해에도 기꺼이 참가했다. 30년 도반지기인 이근태 거사의 뜻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민스님은 이번 만행을 또 다른 수행으로 삼았다. 하루 최고 58Km를 걷는 고행도 마다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출·재가를 떠나 깨달음을 향한 만행에 함께 동참한 세 명의 도반은 다시 일어나 길을 떠났다. 6년 고행 끝에 깨달음을 성취했던 부처님의 고행을 생각하며 숫타니파타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박봉영 기자 | bypark@buddhapia.com |
2003-07-04 오전 8: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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