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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힘내세요!"
6월 10일, 울산 남구 월드컵 문수 축구경기장에는 목사와 스님, 신부, 교무 등 4개 종파 성직자들이 축구 경기를 가졌다. 유니폼을 차려입고 축구화를 신은 스님과 목사가 한판 승부를 벌이고 수녀, 정녀들이 열띤 응원을 펼친 이색적인 축구 대회가 열린 문수 축구경기장은 붉은 응원의 물결도, 터질 듯한 함성도 없었지만 지난해 월드컵 4강 신화와 맞먹는 멋진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울산시 불교사원연합회(회장 눌암)가 주관하고 불보신문이 주최한 평화통일기원 제1회 종교인 연합 친선축구대회. 불교, 기독교, 성공회, 원불교에서 스님, 목사, 신부, 교무들이 팀을 만들어 출전한 한국 종교 역사상 유례가 없는 축구대회였다. 일년 전 월드컵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울산 월드컵 문수 경기장에서 종파를 달리하는 종교인들이 자기 종교 중심의 이기심과 배타적 분위기를 넘어 축구로 하나된 모습을 보이며 또 다른 역사를 써 내려간 것이다.
축구 경기에 앞서 가진 식전행사에 참석한 각 종교계 원로들 또한 이날의 축구대회에 아낌없는 격려와 찬사를 보냈다. 통도사 주지 현문스님, 성공회 부산교구장 이대용 주교, 원불교 부산 대신교당 황도국 교무, 부산 종교인 평화회의 상임 고문 정영문 목사 등 각 종파의 어른들이 참석한 식전행사에서 행사를 주관한 눌암스님은 "종교를 초월한 종교인들의 화합된 모습은 나와 이웃을 하나로 묶는 시발점이 될 것이며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사회분위기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용 주교 또한 "오늘 이 경기에 참석한 모든 종교인들이 누가 누구를 이겼다고 기억하기 보다 사랑을 배웠다고 기억하게 되길 기도한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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슛! 골∼인!
드디어 한 골이 터졌다. 종교의 벽을 허물며 사람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놓은 득점으로 신부팀과의 경기에선 교무팀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승부에 연연하지 않았다. 양산 분도수녀원 한마르타 수녀는 "말로만 그치지 않고 이렇게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하나임을 알아가고 한발한발 다가설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며 "여성 성직자들도 탁구라도 하면 좋겠죠?"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열린 스님팀과 목사팀의 경기를 응원하던 김인숙 불자(울산시 남구)도 "감격스럽다. 목사님들이 이긴다해도 이렇게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다"며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스님, 목사, 신부, 교무가 한자리에 모인 축구 대회이고 보니, 수녀와 비구니 스님이 나란히 앉아 담소를 나누며 응원을 보내는가 하면, 통도사 승가대학 학인 스님들과 목사, 신부들은 응원을 통해 자연스럽게 하나 되어갔다. 경기장 한쪽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울산불교교육원 소속 석정원차회가 녹차와 다식, 떡, 수박 등을 준비해 전통 문화의 멋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이날 경기를 관람한 사람도, 직접 경기에 뛰었던 사람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누구나 소리 높여 종교화합을 외쳤지만 대립과 반목을 벗어나지 못한 현실이기에 이날 축구 대회가 주는 감동은 더욱 컸다.
대학교 시절 선후배로 구성된 교무팀은 단 한번의 연습이 없었음에도 호흡이 척척 맞았고, 제일 두터운 선수층(?)을 자랑한 스님팀은 목사팀, 교무팀, 신부팀을 차례로 이겨 전승을 기록하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전반 종료 후 짧은 휴식시간. "스님, 좀 살살하세요." "신부님은 축구 선수보다 잘하시는 거 같아요." 웃음 섞인 말들로 서로를 격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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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성직자들은 부산, 경남은 물론 대구 서울 인천 등지에서 먼길마다 않고 경기를 위해 달려왔다. 사전 연습은 없었지만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지칠 줄 모르고 뛰고 또 뛰었다. 새벽 6시에 출발 경기에 참석한 민통선평화교회 정경호 장로는 "성직자들이 앞장서서 이렇게 함께 뛰고 어울리는 것은 '하나됨'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희망의 몸짓이 될 것"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종교화합을 강조하는 어떤 학술대회나 세미나보다 더 큰 결실을 맺은 1회 종교인 연합 친선 축구대회는 대회 자체가 종교간의 벽을 허문 멋진 골든 골이었다. 승부를 넘어 똑 같은 승리의 트로피를 받아든 종교인들은 손에 손을 마주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통일은 소통이고 대화를 의미한다. 이날 종교인들이 하나되어 부른 통일의 노래는 종교와 종교의 통일, 나와 이웃의 통일, 남과 북의 통일을 염원하는 기원이 되어 문수축구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종교인 친선 축구 경기를 있게 한 스님과 신부의 인연
"어, 동규(신부)야!"
"어? 재철(종선스님)아!"
25년만에 다시 만난 고등학교 동창생. 2000년 초파일 부산기독교교회협의회를 비롯한 8개 교단 대표들이 통도사를 축하 방문한 자리에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절친한 친구였던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한사람은 성공회 신부가 되어 있었고, 또 다른 한사람은 스님이 되어 25년만에 만난 두 사람의 우정은 두 종교간의 이해로 이어졌고, 종교인 친선 경기대회라는 큰 열매의 씨앗이 되었다.
종교인 친선 축구대회 집행위원장 종선스님은 "김동규 신부를 만나면서 종교인들이 마음을 모은다면 세상을 위해 많은 봉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공통점을 가졌던 두 사람이 찾아낸 종교화합의 물꼬는 축구. 두 사람의 인연을 다시 맺어준 송영웅 목사, 장덕훈 교무를 집행위원으로 4개 종파 성직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집행위원들은 앞으로 지속적인 교류를 가질 예정이며 가을에는 성직자들만의 축구경기를 갖고 매년 6월에는 대규모 축구대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김동규 신부는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보다 다양한 교류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올해는 천주교에서 참가하지 못했는데 내년에는 천주교도 참여하고 보다 많은 종교인들을 하나로 묶는 행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