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부처님은 꼭 사찰의 법당에만 계시는 걸까? 내 남편, 내 가족, 내 이웃도 부처님이 아닐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섬긴다면 바로 이들이 살아 있는 부처님일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가족과 이웃을 부처님처럼 모시자는 사람들이 있다. 부부법회, 가정법회, 지역법회를 여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서울 불광사 불자들의 지역법회, 부산 혜원정사 연꽃부부회의 부부법회, 대구 칠불회 회원들의 가정법회 현장을 탐방해 부처 닮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본다.
▶불광사 법등모임
| ||||
4월 27일 서울 석촌동 불광사의 일요법회. 법회가 끝나자 ‘송파 ○○구’ 등 팻말을 든 불자들이 손짓을 하고 목소리를 돋우며 시선을 끌기에 바쁘다. 법당 여기 저기 흩어져 앉아있던 법등 회원들을 모우기 위해서다. 팻말을 든 사람의 얼굴을 알아본 회원들이 한 곳에 모여들고 이내 모임은 대화와 웃음으로 활기가 돈다.
“대자행 보살, 몸 아픈 건 어떻게 됐어요?” “고마워요. 거사님 기도 덕분에 견딜 만하네요.” 나누는 대화에는 애정이 담겨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가족과 진배없다. 이들이 이렇게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은 모두 불광사 불광법회 ‘구법등’ 회원이기 때문이다.
불광법회가 시작된 것은 1975년 무렵. 광덕 스님이 서울 대각사에 불자를 모아 법회를 시작한 것이 불광법회가 발족하는 인연이 되었다. 스님은 불광법회 가족들이 경조사 간에 서로 도우며 효율적으로 신심을 다지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친지별 지역별 모임을 갖게 했다. 이 모임의 기본단위가 ‘법등’이며, ‘법등’들이 모임이 바로 ‘구법등’인 것이다.
현재 불광법회에는 송파 15구와 같은 40개의 구법등이 운영되고 있다. 각 구법등은 5개의 법등으로 구성되고 법등 모임은 상호 가까운 거주지 위주로 생활지역, 친밀도, 연령, 연락편의 등을 고려해 조직된다. 한달에 한번씩 각 법등을 방문해 지역법회를 열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사정들을 알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외에도 구법등회는 봄?가을로 야외법회와 성지순례, 천마재활원, 송암보육원, 자광원 등 복지시설에 대한 지원사업도 자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불광사 법주 지정 스님은 “불광법회 법등들이 단합된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서로를 부처님처럼 섬기고 아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며 “불자들이 이런 힘을 바탕으로 소승적 신앙을 극복할 때 불교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부산 혜원정사 연꽃부부회
| ||||
연꽃부부회 보살들은 분홍빛 고운 생활한복을 단복으로 맞추어 입고 법회 전 사찰 곳곳에서 절 살림을 돌본다. 하루 종일 남편과 함께 절에서 법문도 듣고 봉사활동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마음 편하기 그지없다. ‘이삼현-박자인화’, ‘오주흥-이공덕심’. 한명찰에 나란히 적힌 이름들이 다정하다.
이날 정기법회 후, 거사들은 어느새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산신각 옆 봉축 점등탑을 조립하고 전등을 다는 일로 비지땀을 흘렸고 보살들은 법회 뒷정리, 설거지 등 절 일을 도우며 종종걸음을 쳤다.
10년 전 고산 스님(쌍계사 조실)의 뜻에 따라 창립된 연꽃부부회는 부부가 함께 신행 활동을 해야 가입이 가능하다. 150쌍의 부부, 즉 300명의 회원들이 활동하는 연꽃부부회는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포교한 가정 포교의 성과인 셈이다. 남편과 아내가 도반이 되고 보니, 좋은 점이 한둘이 아니라는 게 회원들의 한결같은 자랑이다.
“부부가 서로 부족한 점을 격려해주면서 불법 공부도 함께 하고, 아빠, 엄마 보면서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불법 만나니 좋고, 훌륭한 다른 회원들을 보면서 배울 수 있고….”
부부가 일심동체로 힘을 모으니 역할은 배가된다. 연꽃부부회가 조촐하게 시작했던 경로잔치는 이제 혜원정사의 연례행사로 자리잡았고, 매월 성우원 후원과 소외된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과 사찰 대소사에서의 자발적 봉사와 재정적 지원은 단연 돋보인다. 내달부터는 둘째 주 화요일마다 원허스님과 함께 생활 속의 실천을 점검하는 토론법회를 별도로 가지며 공부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이삼현(48) 신임 회장은 “부부가 도반으로 신행생활을 함께 하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며 “많은 가족들이 부처님 품안에서 단란하고 지혜롭게 사는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회원 배가 운동을 벌일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대구 칠불회 가정법회
| ||||
대구 칠불회 회원들은 혼자선 반야심경 하나도 독송하기 어렵지만 여러 회원들과 같이 법회도 보고 기도를 하니 신행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칠불회는 지난해 12월 30여명의 회원이 모여 창립식을 가진 이래 매달 셋째 수요일 회원집을 법당삼아 순회 가정법회를 봉행해 오고 있는 대구 영남불교대학 칠곡지역 신도들의 신행모임.
칠불회는 가끔 스님을 모셔 법문을 청해 듣기도 하지만 대개 회원들끼리 반야심경, 천수경 등을 봉독하고 각자 준비해온 다과를 함께하며 신행담을 나눈다.
부처님오신날을 목전에 둔 4월 24일 칠불회 회원 30명은 영남불교대학 감포분원을 찾아 연등 만들기 봉사를 펼쳤다.
이곳은 신도수가 적어 부처님오신날 장엄할 연등을 아직 다 만들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것. 이들은 사찰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손수 도시락도 장만하고 수저와 그릇까지 챙겨왔다. 이렇게 작은 부분 하나까지도 신행의 일부로 여겨 소홀한 법이 없기에 혹 산사에서 법회라도 갈라치면 어느 곳에서도 환영을 받는다.
“보통 사찰 신도회는 고령화 추세가 문제라고들 말하지요. 우리 칠불회는 반대로 회원들의 나이가 점점 젊어지고 있어요.”
실제 칠불회 회원들은 20대에서 6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그러다보니 수십년의 신행경력이 있는 선배 보살들은 이제 갓 입문한 젊은 보살들에게 오랜 신행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 준다. 또 젊은 보살들은 나이든 보살들을 극진히 모시고 예를 다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화합이 잘되다 보니 30여명으로 출발한 모임이 어느새 60여명으로 2배 가까이나 회원수가 늘어났다.
그러나 모임의 덩치가 커지면서 한 가지 문제점이 생겼다. 법당이 바로 회원 가정집 거실인 이유로 인원이 많아서 걱정이다. 그래서 모임을 동별로 세분화 하는 것도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
칠불회 회장 법수지 보살은 “가정법회는 일반법회와 달리 가까운 이웃들이 소규모로 모여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부담없는 모임을 통해 신행이나 불교공부를 할 수 있어 좋다”며 “앞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바자회나 봉사활동 등을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