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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부산 남산동 무심선원(선원장 김태완)에서 ‘선(禪)으로 읽은 금강경 강의’를 진행하던 김태완 원장(46, 부산대 철학과 교수)이 손가락을 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게 그림자입니다.”
곧 이어 똑 같이 손가락을 펴 보이며 김 교수가 한 말이다.
같은 손가락을 펴 보이며 ‘법’이라고 했다가 곧바로 ‘그림자’라고 앞의 말을 부정하고 있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김 원장의 말에는 법, 즉 깨달음의 본질이 담겨 있다. 문득 실상을 보는 안목이 생기면 보이는 것 모두가 실상이지만, 그 이전에는 전적으로 그림자만을 본다는 설명이다. 즉, 반야니 법이니 깨달음이니 하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문득 실상을 보는 안목을 갖추고 보면 바로 지금 여기서, 말하고 듣고 보고 행동하는 것이 그대로 진리를 드러내는 것임을 김 원장은 거듭 강조한다.
김 원장은 선(禪) 공부를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이나, 독화살을 맞은 사람에 자주 비유하곤 한다. “스스로 독화살을 맞았다는 사실을 여실히 인식하면 그 다음은 그 화살을 뽑겠다는 간절한 한 생각뿐입니다. 화살을 뽑겠다는 한 생각, 악몽에서 깨어나겠다는 간절한 바람, 즉 반야에 대한 목마름이 공부의 출발입니다.”
간절한 발심과 ‘반야’에 대한 목마름이 있을 때라야 ‘법’이라는 생수를 곧바로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원장의 설법은 사람들의 목마름을 자극한다. 설법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들려줌으로써, 공부에 자극을 준다. 결국, 목이 말라진 사람들을 맑은 생수가 넘치는 우물, 즉 반야로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무심선원은 단순히 경전을 읽고 뜻을 풀이하는 공부모임이 아니다. 경전을 방편 삼아 법을 설하는 모임이다. 설법을 통해 사람들이 자칫 빠져 있기 쉬운 삿된 견해에서 벗어나 바른 견해를 갖추도록 이끌어주고, 바른 견해를 토대로 반야를 직접 실감할 수 있도록 선 공부를 지도해 주고 있다. 이것은 발심(發心), 참문(參問), 참구(參究), 감변(勘辨)과 인가(印可)로 이어지는 조사선의 공부과정을 그대로 실행하는 모델이다. 선을 공부하여 마음을 깨닫겠다는 발심을 끌어내고, 발심자들이 묻는 법에 대한 응답으로 깨달음의 인연을 성숙시키거나 의문을 증폭시켜 스스로 참구하게 한다. 그리고 그 참구의 결과에 대해 또 다시 질의응답으로 학인의 공부정도를 판단하고 점검함으로써 깨달음에 이르도록 길잡이가 되어준다.
김 원장 자신의 수행 체험을 토대로 매주 토요일마다 설해지고 있는 설법을 청문(請問)하는 사람들은 이런 저런 공부모임이나 사찰을 두루 거친 경력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동참자들은 한결같이 김 원장의 설법을 듣는 것만으로도 복잡하던 머리 속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입을 모은다.
파라미타 부산지부 고등부지회장을 맡고 있는 김창오(64) 거사는 “공부에 대한 막연한 생각만을 갖고 이리 저리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명확한 지침을 제공해 준다. 설법을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공부모임의 심부름꾼을 자임하는 강보영(27. 부산대대학원 철학과)씨는 “공부 이후 안정을 찾았다”며 “일상에서 외부적 경계, 조건에 끄달림이 덜하니까 이리저리 헤매던 방황에 종지부를 찍었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공부라는 게 특별한 게 아닙니다. 바깥 경계를 따라가느냐, 그 자리에 머무느냐의 문제입니다. 날 때부터 갖고 있는 법이라는 놈을 써서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는 것만 알면 모든 근원은 내가 발 딛고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문득 알게 될 것입니다.”
이치상의 이해를 넘어 실 체험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무심선원의 설법은 매주 수요일, 토요일 열리고 있으며 홈페이지(www.mindfree.net)나 통신회원으로 공부 지도를 받고 있는 전국의 회원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051)515-7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