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오후 서울 봉은사 보우전. 원혜 스님(봉은사 주지)이 한국 불교에 대해 설명한다. “부처님은 모든 것이 상호 의존하고 관계돼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연기법입니다.”
누구나 알 만한 간단한 내용이다. 그러나 언어의 벽이 가로 막는다면 문제는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 사찰을 찾아 왔을 때가 바로 그렇다.
이 때 외국어에 능통한 불자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Sakyamuni Buddha said 2500 years ago that everything is dependent upon each other. We call this Dependent origination.” 원혜 스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진행된 유창한 외국어 통역. 통역자들의 노력 덕분에 외국인들은 그제야 1,600년 역사의 한국 불교의 멋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의 고개가 저절로 끄덕거린다.
이날 프로그램은 ‘제1회 주한외교사절 및 상사 임원부인 초청 한국 전통사찰 체험 행사.’ 이 행사에 참여한 푸른 눈의 외국인들은 사찰 참배, 발우공양, 다도 시연 , 선식 강연, 사찰 음식 체험 등을 통해 한국 전통 문화에 흠뻑 젖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주한 영국대사관 부대사 부인 로빈슨 씨는 “이번 행사가 한국 문화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기회가 됐다”며 “마늘 같은 향신료가 사찰 음식에 안 들어가는 것이 인상적”이라고 발우공양의 소감을 밝혔다. 컨테이너 회사에 일하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왔다는 에이팍 씨도 “한국 절을 지나면서 본 적은 있어도 직접 방문하기는 처음”이라며 “통역 봉사자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이날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진행하며 한국 불교를 낯선 이방인들에게 알린 사람들은 누구일까? 바로 봉은사 문사수회(회장 이태길) 회원들이다. 한국 불교를 알고 싶은 외국인들의 귀와 입이 되는 문사수회는 봉은사의 외국어 통역 자원봉사 모임이다. 80여 회원 대부분이 몇 년 이상의 외국 생활 경험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중 10여 명은 국제 포교사로도 활약 중이다.
문사수회는 현재 봉은사 내에 외국인 안내 부스를 자원봉사로 상설 운영 중이다. 봉은사를 방문한 외국인에게 봉은사를 소개하는 것이 문사수회의 소임이다. 또 문사수회는 영어, 일어, 중국어로 불교를 배우는 모임도 갖고 있다. 올 하반기부터는 법화경 영어 공부 모임, 비디오 법문 시청 후 토론 등 프로그램도 시작할 계획이다.
외국어로 불교를 공부하고 통역 봉사를 하는 문사수회가 만들어진 것은 2000년 10월. 서울에서 제 3차 아셈 정상회의가 열릴 무렵이다. 각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회의였기 때문에 전 세계 언론의 시선이 서울로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봉은사 신도들은 이 행사를 한국 불교를 알릴 절호의 기회로 삼자고 서원을 세우고 6월부터 회화 및 사찰 안내 교육을 자체 실시했다. 그 결과 외국인을 위한 사찰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봉은사 문사수회가 발족된 것이다.
문사수회의 진가는 지난 2002 한일 월드컵 때 유감없이 발휘했다. 봉은사는 40여 일 동안 계속된 월드컵 행사 기간 내내 템플스테이를 실시했다. 발우공양, 참선, 예불, 다도 체험, 인경, 불화그리기, 연등 만들기 등 1박 2일 코스로 진행된 봉은사 템플스테이는 외국인들에게 한국과 불교 문화에 대한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