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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천안 국립청소년수련원에서 진행된 ‘틱낫한 스님과 함께 하는 3일간의 수행’은 여독을 푸는‘온전한 휴식(Deep Relaxation)’이란 프로그램으로부터 시작됐다.
전국 각지에서 온 3백여 수련생들은 여장을 푼 후 체육관에 모여 바닥에 드러누웠다. 지친 몸을 눕히고 쉬노라니 한 비구니 스님이 나와 ‘숨을 들이쉬며(Breathing in)' 등 몇 곡의 찬불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수련생들은 자장가 같은 노랫소리에 몸을 맡기고 몸의 곳곳을 의식하면서 긴장을 이완시키는 명상을 40여분간 진행했다.
불자 뿐만 아니라 가톨릭 신자, 일반인, 스님과 수녀 등 참석자들은 틱낫한 스님이 이끄는 프랑스 수행공동체 플럼빌리지에서처럼 정념(正念, Mindfulness) 수행을 체험하기에 앞서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호흡 명상, 걷기 명상, 종(鐘) 명상 등 기본적인 명상법을 배웠다.
한 비구니 스님이 깨어 있는 마음으로 들숨과 날숨을 관찰하는 ‘호흡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고 매 순간 지금 이 순간에 도착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들이쉬고, 내쉬고 깊이, 천천히 고요히 편안히, 웃고 놓아버리세요(release). 지금 이 순간이 아름다운 순간임을 생각하면서...”
호흡명상과 함께 수련기간 내내 해야 할 중요한 명상인 ‘걷기 명상’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걷기 명상을 할 때는 호흡과 걸음에 마음을 집중하세요. 말은 하지 마세요. 만약 말을 꼭 해야 한다면 걷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그래야 말하는 사람, 말, 말을 듣는 사람에게 온 마음을 집중할 수 있거든요.” 스님은 자연 속에서 걷기 명상을 하면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풀들이 만드는 생명의 축제 속에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법회 도중에 2~3차례씩 울리는 종 소리에 맞춰 하는 ‘종 명상’도 독특한 수행법이었다. 종이 울리면 수련생들은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호흡에 온 마음을 집중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 도착한다. 종소리가 그칠 때까지 호흡과 명상은 계속된다. 종소리가 들리면 긴장을 풀고 그저 자연스럽게 숨을 쉬며 느긋한 마음으로 멈추면 된다.
종 명상은 저녁 식사후 틱낫한 스님의 법문을 들을 때도 2-3번 있었다. 강연이 길어지면 사람들의 주의력이 산만해지고 깨어 있는 마음으로 법문을 들을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종을 세 번쯤 울리고 그때마다 스님은 말을 멈추고 호흡에 집중하며 깨어 있는 마음을 수행했다.
처음 수련생들과 만난 틱낫한 스님은 ‘정념(正念)’ 수행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직접 칠판에 한자를 써가며 자상하게 설명한다.
“정념 수행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것을 깨어있는 마음으로 온전히 인식하는 것입니다. 마음 챙김의 한자어인 ‘염(念)’이 지금(今)과 마음(心)이라는 두 글자로 이뤄진 데서 알 수 있듯 여러분의 마음을 지금 이 순간으로 데려다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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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오전 6시부터 좌선과 예불 등을 시작으로 수행이 시작되어 틱낫한 스님의 ‘화’를 주제로 한 법문, 걷기 명상, 노래 명상, 온전한 휴식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정념 수행에서 가장 중시하는 이날의 걷기 명상은 틱낫한 스님과 스님들을 필두로 수련생들이 넓은 수련장을 매우 느린 속도로 걷는 형태로 진행됐다. 걷기 명상은 보통 들숨 하나에 두 걸음, 날숨 하나에 두 걸음으로 걷는다. 걸을 때마다 자신에게 “고요히 고요히, 깊이 깊이” 등의 메시지를 주기도 한다.
걷기 명상과 먹기 명상을 마친 후 조상과 고향, 영적 가족 등 3가지 뿌리를 느껴 보는 ‘땅과 깊이 만나기’등의 수행도 했다. 절하는 형태로 두 손을 마주 모아 연꽃 봉우리를 만들고 서서히 몸을 낮춰 땅에 사지와 이마가 편안히 닿도록 한다. 지구의 힘을 온몸 가득 받아들이는 지구와 접하기는 3~5번씩 한다.
이어 진행된 것은 '불살생(不殺生)'을 비롯한 전통 불교의 5계를 서구인의 현대생활에 맞게 응용한 '다섯 가지 마음 챙김 수행'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인 목사 2명과 독일인 부부 법사 등 틱낫한 스님을 따르는 재가 신자 6명이 토론형태로 진행했다.
미 조지아주에서 목사로 일하고 있는 알 링고씨는 세 번째 마음 챙김인 '성(性)에 대한 책임'을 설명하면서 "결혼도 이혼도 해보았는데 성적 욕망의 충족이 결코 행복을 주지 않는다"며 "이 마음 챙김 수행으로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설했다.
일부 기독교 신자들은 5계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에게 죄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했고 틱낫한 스님의 제자들은 "부처님을 스승의 한 명으로 모시는 것일 뿐이며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이라고 답했다.
이어 조별 토론 시간에 참석자들은 수행에 대한 소감을 털어놓았다. 책이나 신문 등을 보고 참가한 일반인들은 종교를 떠나 간편한 수행을 통해 내면의 고요와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인 한 여성은 “이번 수행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예 잊고 사는 것들을 하나하나 되살리는 연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제대로 숨쉬기, 걷기, 말하기, 밥 먹기, 미소 짓기 등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참선, 위빠사나, 단전호흡 등 이미 다른 수행을 체험해 본 사람들은 중급이상의 수행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점을 들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성철 스님의 지도로 40여년간 간화선을 해 왔다는 차상훈(69) 경기대 교수는 "틱낫한 스님이 임제종 선사라고 해서 참석했는데 내용이 기대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며 "깨달음을 지향하는 전문 수행자들에게는 초보적인 수식관에 머문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번 수련회에 참석한 10여명의 국내 비구, 비구니 스님은 정념 수행법이 간명하고 생활속에서 응용이 가능하다며 한 목소리를 냈다. 대구 지장선원장 지공스님은 "불교의 여러 수행법을 응용해 창조적으로 개발한 것 같다"면서 "참나를 자각하는 손쉽고 현실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대중 포교에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3일째 되는 마지막 날의 마지막 순서였던 5계 수계식은 모든 참석자들의 자발적인 참여 속에서 장관을 이루었다. 줄곧 영어로 말하던 틱낫한 스님이 수계식 때는 베트남어로 반야심경을 외웠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추방당한 후 한시도 잊을 수 없었을 모국어로 독경하시는 스님의 목소리가 대중의 가슴을 울렸다. 그토록 쉽고 부드러우면서도 큰 산처럼 견고한 모습으로 수련생들을 지도하는 틱낫한 스님의 천진한 표정은 시인이자 평화주의자, 참여불교의 선구자로서의 이미지를 모두 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