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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대 종파인 조동종 관장(종정에 해당) 이타하시 고슈(板橋興宗)스님과 전 조동종 청년승가회 회장 아라키 세이쇼 (荒田淸降) 스님, 발행 10만부를 자랑하는 계간 <조동종 그래픽> 사장 후지끼 류센(藤木降宣) 스님과 젊은 소장파 스님 8명이 18일 저녁 송광사에 도착했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어김없이 예불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울려 퍼지는 새벽 3시. 사부대중이 모두 대웅전에 모이자 예불문, 이산혜원선사 발원문, 금강경, 그리고 108배가 이어졌다. 지난밤에 조용히 찾아 온 손님들도 모두 동참했고 이타하시 고슈 스님은 76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단아한 자세로 절을 올리며 수행자의 꼿꼿함을 내 보였다.
아침 공양 이후 조계총림 방장 보성스님이 이타하시 고슈 스님의 처소를 찾았다.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으셨는지요?”
“고즈넉한 한국의 산사에서 잠을 청하니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3년 전 일본 총지사에서 이타하시 고슈 스님과 인연을 맺은 보성스님은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안부를 물었고 두 고승의 눈빛은 따뜻하기만 했다.
이타하시 고슈 스님은 3년 전 백양사를 방문했을 때 가부좌를 틀고 참선 삼매에 빠져 있는 한국 스님들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에는 현재 선종계통의 종파에서는 안거 등 수행체계가 형식적으로는 갖추어져 있지만 실질적으로 스님들이 가정을 이루고 있기에 깨달음을 위한 수행을 많이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 소장파 스님들에게 안거 등 부처님 당시의 수행체계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조계종 승가의 수행을 체험시키기 위해 송광사 방문을 주선했다. 고슈 스님은 “일본 강점기 이후 한국불교가 일본 불교화 되고 세속화 되어 수행체계가 무너진 줄 알았는데 조계종이 이렇게 수행 체계를 유지하고 있어 부럽기 그지없다”며 수행의 중요성과 한국불교에 대한 부러움을 표현했다.
두 나라 스님들이 차 향기 은은한 삼일암(방장스님 처소)에서 마주 앉았다. 아라키 세이쇼 스님이 보성스님에게 질문했다.
“일본불교는 납골당을 중심으로 한 당까제도(조상의 시신을 화장해 사찰에 안치하고 자식들은 대대로 그 사찰을 원찰로 하는 일종의 평생신도 개념)를 통해 재정으로 사찰을 운영하는데 송광사 같은 큰 사찰은 어떻게 운영됩니까?”
“한국스님들은 대부분 무소유를 삶의 원칙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직접 채소밭을 일구기도 하지요. 열심히 수행하다보면 신도들이 모이게 되고 이들이 지극정성으로 올린 시주물은 바로 사찰운영의 기본 재원이 됩니다. 다소 부족하긴 하지만 불편함은 못 느낄 정도입니다.”
보성 스님은 또 “스님이 수행력은 없으면서 잔재주로 먹고사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당까제도는 일본에 토착화된 일종의 전통입니다. 그렇지만 10년 동안 조동종에서 결혼하지 않는 청정비구 30명만 배출한다면 앞으로 일본 불교에 수행체계가 바로 설 것입니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세이쇼 스님의 질문이 이어졌다.
“9 11 테러 이후 세계는 혼돈 그 자체입니다. 불교는 어떤 입장으로 대처해야 합니까?”
“원망을 원망으로 갚으면 안 됩니다. 열심히 수행정진하고 부처님의 자비심을 계승해 인류 사회에 삶의 지표를 제시할 때 불교가 비로소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일본 조동종 스님들은 보성스님과의 좌담 이후 사시 예불, 참선 등 한국 스님들의 수행을 체험하고 보림사와 쌍봉사를 참배했다. 저녁에는 강원 스님들과 좌담회도 가졌다. 20일에는 통도사, 불국사, 석굴암을 순례하는 등 뜻 깊은 시간을 보내고 귀국했다.
순천 송광사=김두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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