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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더쿵 쿵덕…”
“찌장 보오살…”
일요일 오후 오후 2시 안산 천수사에서는 도량이 좁을세라 각기 다른 장르의 음악들이 요란하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소매를 펄럭이며 탈춤을 배우는 어린이들. 북과 징, 꽹과리, 장구의 어우러짐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어깨까지 들썩거리게 만드는 사물놀이. 기타와 드럼, 키보드로 지장보살님의 서원을 멋지고 신나는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는 락밴드 ‘도솔천’.
얼핏들으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천수사 도량을 화음의 도가니로 만들고 있다. 이렇게 주말이면 국악과 양악을 배우는 이들로 북적대는 안산 천수사는 탈춤팀, 사물놀이팀, 락밴드 등 세 개의 문화 동아리로 어린이ㆍ청소년들을 사찰로 이끌고 있다.
이중 하나만 있는 절도 드문데 세 개씩 운영하며 문화 포교에 주력하는 사찰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일요법회가 끝나면 이들의 춤사위와 악기ㆍ노랫소리로 천수사는 온통 야단법석이 된다. 도량 밖에 서 있으면 이곳이 문화센터인줄 착각이 들 정도다.
1층 강의실 문을 삐끔히 열어보니 탈춤 출 때 손에 끼는 하얀 한삼을 풀풀 휘날리며 초등학생 20여명이 장구 가락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 아직은 동작이 낯설어서인지 박자와 동작이 따로 놀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동작을 배우고 있다. 동작이야 어떻든지 아이들의 눈가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천수사에서는 탈춤반이 어린이 법회 참가자면 누구나 반드시 거쳐야 할 의무과정이 되어 있다. 주지인 지허 스님이 아이들에게 우리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엄명(?)을 내린 것. 이렇다보니 탈춤반은 첫째ㆍ셋째 일요 법회가 끝나면 곧바로 연습에 들어간다.
연습지도를 맡은 법인성 보살(31)은 흥사단 문화분회 소속으로 9년전부터 탈춤을 배워 일본, 프랑스, 독일 공연을 수차례 다녀왔을 정도의 실력파 강사.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2년정도 아이들에게 체계적인 봉산탈춤 교육을 시켜 경로잔치 등 봉사활동에 투입시킬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컴퓨터 게임에 익숙해져 처음에는 탈춤 배우는 것을 재미없어 했는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외사위 등 다양한 동작을 가르쳐 주니 차츰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법인성 보살은 자칫 아이들이 지루하고 딱딱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우리 문화를 재미있게 가르치기 위해 매주 머리를 짜낸다. 이런 노력 덕택일까. 탈춤을 배우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오거나 천수사 신도인 부모님 손에 이끌려 오는 어린이들이 부쩍 늘었다.
탈춤 배운지 3개월됐다는 예라(연현초등 3년)는 “절에서 탈춤을 배워가면 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친구들 앞에서 자랑할 수 있어 기분 좋아요. 한발을 들면서 추는 외사위는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요,”라고 즐거워 한다.
사물놀이팀에 있는 할머니 감로행 보살(70)과 일요일마다 함께 온다는 유림(별망초등 4년)이도 “처음에는 춤동작이 어려워 따라하기 힘들었는데 친구들과 자꾸하다보니 기분이 즐겁다”고 얘기한다.
어린이들의 탈춤 사위를 뒤로 한 채 어두컴컴한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보니 방음장치가 돼 있는 음악실이 나타났다. 사찰에 웬 음악실(?)하는 호기심은 이내 깨졌다.
‘쿵쾅 쿵쾅….’기타, 키보드, 드럼, 베이스 등이 토해내는 요란한 락 음악이 7평 남짓한 실내에 울려 퍼졌다. 천수사 청년회원들인 다섯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만든 교계 유일의 락 밴드‘도솔천’이한창 연습중이다.
도솔천’은 자작곡‘지장보살’로 지난해 12월 조계종 문화부에서 주최한 찬불가 경연대회에서 본선까지 올랐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음악을 전공한 여대생과 20대 후반의 직장인들로 구성된 ‘도솔천’은 지허 스님이 눈높이에 맞춘 청소년 포교를 위해 만들었다.
리더 최상호씨는 “불음가요를 발랄한 락 음악으로 작곡해 거부감이 일지 않을까 걱정하며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 놓았는데 방문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등 호응이 좋아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도솔천’은 락 찬불가 음반을 출시해 군부대나 교도소 공연에도 나설 예정이다.
음악실 문을 나서니 2층 법당에서부터 신명나는 징과 꽹가리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소리를 따라 올라가보니 10명의 보살들이 사물놀이 삼매에 빠져 있다.
천수사의 사물놀이 패는 지역에서도 유명하다. 안산지역 문화행사에서는 없어선 안될 감초역할을 한다. 프로 무용수 출신의 상쇠(사물놀이의 리더) 지경숙(50)씨의 자랑처럼 지난해에도 안산시민을 위한 불교예술제와 부처님오신날 안산 시청 앞 점등 축제 등에서 맹활약을 했다.
지경숙 보살은 “행사장에서 사물놀이 반주에 맞춰 흥겹게 손뼉치고 놀다보면 청소년들이 저절로 일어나 어깨춤을 출만큼 좋아한다”며 “앞으로는 청소년 회원들도 모집할 것”이라고 포교 효과에 대해 피력한다.
어린이ㆍ청소년들과 그 어머니, 할머니들이 함께 연주하고 춤추며 우리 문화를 소담스럽게 일궈가는 문화포교 도량 천수사. 오늘도 천수사 앞마당에 서면 사물놀이와 락밴드의 흥겨운 음성공양을 들을 수 있다.
<인터뷰>
천수사 주지 지허 스님
청소년 포교위해 과감한 투자
군부대, 양로원 등 그늘진 곳 포교 나설 터
“문화 동아리를 세 개씩이나 운영하려면 경제적인 것 뿐만 아니라 연습 공간 마련 등 신경써야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하지만 신세대들을 절로 불러 들이기 위해선 효과적인 포교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수사 주지 지허 스님은 신세대 포교를 위해서 그들이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을 활용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스님은 빠듯한 절 살림에도 불구하고 수백만원이 넘는 락밴드의 악기 구입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요즘은 과거와 달리 음악을 하려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악기 값이 만만치 않아서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포교를 위해선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기에 미련없이 지원했지요.”
물론 스님이 이렇게 문화 포교에 관심을 가진 데에는 스님 자신도 기타와 태평소를 준 프로정도로 연주할 만큼 음악에 남다른 조예가 깊기 때문이다.
스님의 머릿속에는 각 팀이 음반도 내고 어느정도 남앞에 떳떳히 설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면 종합예술단을 구성해 교도소나 양로원, 군부대 등 사회의 그늘진곳을 찾아다니며 포교활동에 매진하겠다는 생각이 서있다. 또 스님은 산사음악회도 기획해 일반 시민들이 음악을 통해 불교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도록 할 계획이다.
김주일 기자
jikim@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