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문 끝에 강원도 산골의 그 절을 찾아 간 시간은 해가 질 무렵. 조용히 법당에서 삼배를 하고 나오니 비구니 스님 한 분이 건너편 요사채를 향해 걷고 있었다.
“스님...”
“뉘시오?”
“영자양이 행자 생활하는 곳이 이 절 맞습니까?”
순간 스님의 얼굴이 굳어졌고 금방이라도 화를 낼 것 같았다. 몇 번을 물어도 법명조차 가르쳐 주지 않는 스님은 시종 “왜들 이러느냐”며 “더 이상 도혜(영자의 법명)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세상이 그 사람을 돕는 유일한 길”이라고 자르듯 말했다.
핸드폰이 뭔지도 모르던 순박한 산골소녀가 핸드폰 광고에 출연하면서 ‘상품적 가치’로 세상풍파에 시달리던 짧지만 긴 세월. 그리고 아버지를 잃은 고통. 박절하고 삭막한 세상인심에 쉽게 아물지 않을 정도로 큰 상처를 입은 산골소녀가 부처님께 귀의해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왔다는 기자의 말에 대해 스님은 완강히 팔을 저었다.
“그 사람 지금 이 절에 없어요. 보냈어요. 사람들이 아는체하고 찾아오려고 하니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있나요. 그저 없는 듯이 살게 내버려 두면 어때서...”
“어디로 갔나요?”
“또 찾아 가서 괴롭히려고요? 이제 찾지 마세요. 다른 스님과 상의해서 더 깊은 산으로 보냈어요.”
그 절에 도혜행자가 온 뒤로 스님과 본인 모두가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단다. 언론의 집요한 취재 요청과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던지는 말 한마디조차 영자에게는 지나칠 수 없는 일들이었다는 것.
도혜 행자의 절 생활에 대해서 묻자 스님은 아예 산문 밖을 향해 걸었다. 때문에 기자는 몇 마디 질문을 하며 스님을 따라 절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불가(佛家)와 인연이 있는 사람인 것은 분명해요. 반야심경이고 금강경이고 경을 빨리 외웠고 염불도 곧잘 해요. 목청도 좋고요. 잊을 것은 잊고 새로운 것에 열중하려는 생각이 있었겠지만... 아무튼 그 사람이 잘 정진 하도록 세상이 가만 놔두는 것만 바랄 뿐입니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계도 받고 제 갈 길을 잘 갈 수 있을 겁니다.”
산골소녀가 더 깊은 산사로 들어가고 없는 그 절이 산그늘 속으로 잠겨들었다.
임연태 뉴미디어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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