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불사건이 또 발생했다. 그것도 지성의 전당이라 불리는 대학 내에서 벌어졌다. 동국대는 불교계에서 설립한 대학이어서 캠퍼스에 법당이 있고 대학본관 앞에 불상도 모시고 있다. 그 교정에 모신 불상에 붉은 색으로 십자가가 그려지고 '오직 예수'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대학 내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우선 개신교신자 학생의 소행으로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종교적 신념은 신앙인에게 있어 길이며 희망이며 생명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여러 종교가 있고 사회적 규범도 있으므로 그 신념을 표현하는 데에는 절제와 상식이 요구된다. 종교의 자유, 신앙의 표현이라고 해서 폭력과 몰상식을 통해서라도 무작정 실현시키려 한다면 그런 종교는 이미 세상을 구원하는 종교가 아니라 오히려 갈등과 파멸을 초래하는 종교가 되고 말 것이다. 그것은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관련 전쟁들이 입증하고 있는 터이다.
이번에 동국대에서 벌어진 훼불사건은 우리를 분노하다 못해 서글프게 한다. 최근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이웃종교들이 축하메시지를 보내오는 등 종교간에 일고있는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몰상식한 행동이 얼마나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파괴하고 그들이 목적하는 선교에 역행하는 것인지를 깨닫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경찰에서 지금 탐문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하나 지금까지 수많은 훼불사건에서 보여주었듯이 결과가 명쾌하게 나타날지 의문이다. 그동안 경찰은 훼불사건이 있을 때마다 우범자나 정신이상자의 소행으로 추측된다는 입장을 밝혀왔는가 하면 종교갈등 문제로 훼불사건을 바라보아 폭력이라는 사회적 해악을 발본색원한다는 자세보다는 마치 종교갈등에 깊이 간여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신앙의 자유, 선교의 표현을 보장한다는 미명아래 이런 광신적 폭력만행행위를 방조, 용인하려는 경찰당국의 태도가 이런 일을 계속 조장시키고 있는다는 점을 각성하고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대학당국에도 할 말이 있다. 그동안 동국대에서는 개신교학생들의 동아리연합회 가입을 두고 갈등을 빚어와 이번 일이 이와 관련된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는 줄 안다. 따라서 동국대학 당국에서도 타대학의 경우를 참고하여 가능한 학생들의 활동을 보장해 주되 이와 유사한 훼불사건이 발생할 경우 단호하게 대처하는 방향으로 전향적 검토가 있어야 할 것으로 안다. 예컨대 이같은 훼불사건이 발생하면 향후 몇 년간 동아리연합회 가입이나 활동을 제한하며 가입이 받아들여져 활동할 때라도 이같은 사건이 다시 발생하면 향후 몇 년간 가입을 취소하고 활동을 제한시키는 등의 내규조치를 마련하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