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의령군 부림면 단원리 열 가구 남짓한 마을의 일요일 새벽은 선다원(禪茶園)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분주한 발걸음으로 깨어난다.
비까지 내려 깜깜하고 춥기만 한데, 선다원 법당 앞에는 아이들의 작은 신발들이 가지런히 비를 피하고 있다. 혜림이, 혜원이, 쌍둥이인 하나, 두나, 그리고 선학이, 진주에서 주말마다 찾아오는 지문, 성문이 등 단원리 마을의 아이들 모두가 생활한복을 곱게 입고 새벽예불에 참석한 것이다.
단원리의 일요일 새벽 풍경은 4년 전 선다원이 마을에 터를 잡으면서부터 언제나 한결같다. 비가 내리던 8일에도 새벽잠을 설쳐가며 할머니의 손을 잡고 선다원을 찾은 아이들은 졸음을 쫓으며 법원스님의 헌다의식으로 시작된 예불 내내 합장한 고사리 손을 흩뜨리지 않았다.
예불이 끝나고 다실에서 두나(부림초 6)가 차를 준비하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익숙한 반가부좌 자세로 참선을 했다. 세 살 때부터 이미 다도를 해온 여섯 살 성문이도 고사리 같은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졸음을 참고 있다. 30~40분쯤 흘렀을까? 땡땡! 차 준비가 끝났다는 종이 울렸다. 참선을 끝낸 아이들은 다실 입구에서 흐르는 물로 손과 입을 헹구고 다실로 향했다. 그런데 다실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몸을 굽혀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통로를 지나야 다실에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실을 직접 설계한 선다원 주지 법원스님은 "깨달음의 세계나 차의 세계는 지위고하, 명예, 아만심 등 일체의 것을 내려놓은 후라야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 그것을 상징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낮춰 들어선 다실에서 차담(茶啖)을 나누며 추운 몸을 녹인다. 한 잔의 차를 나누는 시간, 입안에 고이는 차향은 동심을 다선일미(茶禪一味)의 세계로 안내하기에 충분했다.
매주 토요일 저녁에는 어른들이, 일요일 새벽예불 후에는 마을 아이들이 모여 차를 마시며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선다원의 다도 수행은 마을 아이들을 변화시켰다. 4년 전부터 매주 부산과 의령을 오가며 아이들 다도를 지도해온 박보현행(44) 보살은 "아이들이 너무 밝아지고 예뻐졌다"고 자랑부터 시작했다. 학교 선생님들이 달라진 아이들 모습에 놀라 선다원을 찾아오기도 했을 정도다. 발표력이 좋아지고 상대에 대한 배려가 늘어 좀체 싸우는 일이 없다. 부모가 없어 얼굴이 그늘 졌던 몇몇 아이들도 환한 웃음을 되찾았다. 이제 선다원에서 보내는 일요일은 아이들이 일주일 내내 기다리는 즐거움이자 마음을 온통 빼앗아 버린 놀이이고 몸과 마음을 변화시키는 수행이기도 하다.
다도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는 혜림(신반중 2년)이는 "춥고 잠이 오지만 벌떡 몸을 일으켜 절에 오면 동네 아이들과 따뜻한 차를 마시며 얘기도 하고 참선도 할 수 있어 너무 좋다"며 “아이들 모두 예불과 참선을 하고 차도 마시면 성적도 오르고 마음도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천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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