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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년 동안거 금강경 결제 용상방 증명 청화 통광, 논주(발제) 각묵, 입승(사회) 현응, 원주 성륜, 서기 해강, 부전 대은, 원감 재연, 대중 도법…’
왜 금강경 결제를 선택한 것일까. ‘조계종의 오늘과 내일, 소의경전 금강경으로 다시 본다’는 대주제 속에 그 해답이 있다.
결제의 살림살이를 총괄하고 있는 재연스님(화림원 원감)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금강경은 조계종의 소의경전이면서 대승불교의 중심에 있는 경전인데, 불자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돌아봐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했습니다. 소의경전이 수행자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대하려는 노력이 없었기 때문에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상태라 할 수 있지요. 소의경전의 필요성 자체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결제는 선방에서만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금강경 결제는 선 중심의 획일화된 수행풍토에 대한 반성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2천명이 넘는 스님들이 석달 동안 선방에서 정진하는 국가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도인이 나오지 않는다’ ‘수행이 바른 길로 가지 않는다’는 한탄이 나옵니다. 말로는 무아를 말하고 있지만, 무아의 참된 의미를 두고 고뇌하거나 사유하는 이는 드뭅니다.”
논주 소임을 맡은 각묵스님(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의 지적은 한국불교의 수행풍토에 던지는 의미심장한 일갈이다.
“소의경전은 종단 구성원에게 있어 생명줄과 같은데도 불구하고 종단구성원들로 하여금 소의경전에 의지해서 말하고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도록 누구도 가르쳐 준 적이 없다”는 도법스님(실상사 주지)의 표현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소의경전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된 이번 결제는 청화스님(성륜사 조실)과 함께 증명법사를 맡은 통광스님(쌍계사 강주)의 법문으로 시작됐다. “공부의 목적은 실상반야를 이루는데 있으니, 결제 기간동안 용맹정진으로써 일체의 상을 여의어서 실상의 도리를 깨달으라”고 당부했다.
이 날의 주제는 ‘상(相 ·산냐)이란 무엇인가’. 각묵스님은 산스크리트 원전과 구마라즙·현장 번역본을 비교, 강의를 진행했다.
“불교수행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sati(마음챙김)를 간단하게 취급한 결과, 팔정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정념(正念)이 대승불교의 실천도인 육바라밀에서는 상실되어버리고 대승불교 수행의 어느 곳에서도 강조되지 않는다. 부처님이 외도의 선정수행과 고행을 바른 수행이 아니라고 파악한 것은 외도의 수행에는 선정은 있지만 정념이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정념이 없는 선정은 정정(正定)이 아니다.”
이에 대해 해강스님(화엄학림 학감)은 “육바라밀에 정념이 없다는 것은 지나치게 좁은 해석이다. 선정바라밀 속에 정념이 있다.”고 반론했다. 도법스님(실상사 주지)도 공감을 표시했다.
구마라즙이 제유발취보살승자(諸有發趣菩薩乘者)를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ㆍ多羅三ㆍ三菩提心)으로 의역한 의도에 대한 토론도 이어졌다.
각묵스님은 “금강경은 깨달음의 문제를 보편화시키고 그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로 보살을 설정하고 그 보살의 궁극적인 태도를 산냐의 극복에 두기 때문에, 구마라즙은 발취보살승자를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으로 의역을 해서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해월스님(동화사 강주)은 “금강경은 수보리가 부처님에게 묻는 구조를 갖고 있는데 어느 순간 선남자 선남녀가 등장하는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세력이 등장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매는 그것이 아무리 깊고 수승하다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개념을 그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미세한 산냐에 걸려 있는 것이므로 무아를 바르게 보는 지혜를 완성할 수 없다”는 발제문 내용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로부터 반론이 제기됐다.
토굴에서 왔다고 밝힌 정범스님은 “삼매는 아 인 중생 수자상에 연연하지 않고 수행을 통해 터득할 수 있는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반박했다.
참가대중들의 표정은 토론이 끝날 때까지 진지함이 묻어났다. 한 소리도 놓치지 않으려는 번득이는 눈빛 속에 3시간여의 토론은 막을 내렸다. 참가대중들은 깨달음을 향한 길이 얼마나 험난한가를 새삼 확인했다. 이번 토론을 통해 더욱 치열한 구도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발심을 새롭게 했다. 실상사 화림원의 금강경 결제는 아직도 8번의 논강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참선 대신 간경수행
“자주 만나 법을 논하라. 화합 속에 만나고, 화합으로 마감하며, 화합하여 법을 실행하라.”는 부처님의 유훈에 따라 모인 실상사 화림원 금강경 결제에 든 100여 대중.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이 시대에서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마음을 모은 이들이다.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기에 앞서, 남의 견해에 귀 기울이고, 진지하게 따져 ‘바른 길’을 찾겠다는 것이다.
재가불자들은 재가불자대로, 출가 대중은 출가 대중대로 제각각 앞 뒤 맞지 않는 주장과 제 나름의 견해에 매몰되어 다른 시각과 견해를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 현 풍토를 개선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실상사 화림원은 비구, 비구니, 우바이, 우바새가 따로 수행해야한다는 벽을 허물고 참선 대신에 금강경 간경 수행을 선택했다. 이 곳에 모인 대중들도 “일체의 상을 여의어 실상의 도리를 깨닫기 위해 불자라면 누구나 수행지침서인 경전을 바로 보고, 그에 걸맞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또 “우리의 수행이 생각이나 말에 그치지 않고,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모든 행위가 낱낱이 연기법과 무아의 실천이며, 환희로운 법보시가 되게 하리라”고 다짐한다.
금강경결제 일정
11월 23일 왜 금강경인가
11월 30일 상이란 무엇인가
12월 7일 범소유상 개시허망은 잘못된 번역인가
12월 14일 조사는 대승이고 아라한은 소승인가
12월 21일 금강경과 공덕
1월 4일 무엇이 제일바라밀인가
1월 11일 무아를 잃어버린 한국불교, 힌두교의 아류인가
1월 18일 마음은 흐름인가, 불생불멸인가
1월 25일 산냐를 척파하면 허무주의가 되는가
2월 8일 어떻게 산냐를 극복할 것인가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실상사 화엄학림 강당 (063)636-3990
박봉영 기자
bypark@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