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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사찰로… 각종 프로그램 풍성
숲 깊숙한 산사의 대웅전에 비춰진 아름다운 조명에 국악과 가요, 잔잔한 클래식 등의 음악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런 모습은 이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주5일 근무제 시행에 맞춰 사찰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사찰의 특성을 살린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찰의 변화는 불과 2~3년 전에야 시작됐다. 문화적인 생활을 향유하려는 인구가 증가하고 주5일 근무제가 부분적으로 시행되면서 사찰은 자연속의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찰은 더 이상 불자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농장이요 공연장이요 쉼터다.

번잡함으로 가득한 도심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여유를 느끼길 기대하는 사람들은 사찰로 향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사찰은 문화생활을 누리길 원하는 사람들의 시대적 욕구에 부응하고 더 다양한 문화적 혜택을 부여하기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주제가 있는 수련회

10월 5일 새벽 6시, 20여명의 사람들이 해남 대둔사 숲길을 거닌다. 목포 삼호중공업에서 근무하는 이정근 씨(38). 주5일 근무가 시작되면서 휴일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새벽숲길’에 참가한 이 씨 가족은 두륜산 곳곳을 거닐며 한껏 자연과 호흡했다.

선 등 각종 수행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여가를 유익하게 보내려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사찰의 주제있는 수련회가 각광을 받고 있다. 이같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대둔사 ‘새벽숲길’은 꽤나 인기 있는 수련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여유로워진 직장인과 일반인들을 위해 자신을 돌아보고 재충전할 수 있도록 매월 두차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불자가 아니라도 누구든지 참가할 수 있는데다가 자연과 어울어진 휴식을 맛볼 수 있는 점이 매력이다.

백두대간의 정기를 함께 누리고자 한다면 오대산 월정사의 ‘천년의 기다림’만한 프로그램도 없다. 적멸보궁과 전나무 숲길로 유명한 특성을 최대한 살린 ‘천년의 기다림’은 가족이 함께 자유로운 휴식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남양주 보광사는 숲과 태극권을 주제로 수련회를 열고 있다. 폭포에서 명상하기, 송하방담(松下放談), 명상하며 걷기 등 특색있는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이 외에도 보성 대원사의 티베트불교를 곁들인 수련회, 공주 영평사의 구절초와 함께 하는 수련회, 창원 서원사의 낙동강변을 거니는 수련회, 영천 은해사의 팔공산 달빛산행 수련회, 서울 길상사의 선 수련회 등 지역과 사찰의 특성을 살린 수련회가 다양하게 마련돼 있어 취향에 따라 참여할 수 있다.

◇산사음악회

사찰에서 여는 각종 문화공연도 사람들의 발길을 사찰로 끌어들이고 있다.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향연은 공연장이나 전시장에서는 맛볼 수 없는 감동을 느낄 수 있어 각광받고 있다. 특히 산사음악회는 사찰의 자연환경과 음악이 어우러져 대중적 인기를 모아, 음악회를 여는 사찰이 점차 늘고 있다. 춤과 음악이 있는 산사만 일부러 찾아다니는 ‘마니아’들도 생겨났다.

광주 증심사는 생명나눔과 환경보호, 종교인의 각성을 생각하자는 취지로 매월 음력 보름 ‘풍경소리’라는 산사음악회를 열고 있다. 음악회가 시작되면 칠흑같은 어둠을 가르며 무등산으로 퍼져 나가는 선율은 사람들을 불러모으기에 충분하다.

가을을 만끽하고 싶다면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봉화 청량사에서 산사음악회로 알찬 여가를 보낼 수 있다. 실제로 지역주민과 신도들의 반응은 뜨겁다.

전시회를 겸한 산사음악회도 있다. 봄꽃축제와 단풍축제를 매년 두차례 열고 있는 북한산 심곡암은 선서화 전시회와 음악회를 함께 마련해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해남 미황사는 남도 농요에서부터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 미황사 군고(群鼓) 시연까지 다양한 장르의 공연으로 땅끝마을 잔치를 벌인다. 불교적인 색채가 강한 공연이 보고 싶다면 음악회에 앞서 열리는 괘불제와 탁본전 등에 참가할 수 있다.

이 밖에 진천 보탑사와 서울 도선사, 서울 진관사, 공주 갑사, 광주 무각사, 합천 해인사 등도 음악회를 열어 일반인들의 발걸음을 산사로 이끌고 있다.

◇주말농장

볼거리를 제공하는 문화공연과는 달리 주말농장은 자신이 직접 키우고 수확하는 재미가 있다. 주5일 근무제 시행에 맞춰 일부 사찰과 불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주말농장은 가족과 함께 좀 더 유익하고 보람 있는 주말을 계획하는 직장인들이 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특히 불교의 친환경사상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사찰의 주말농장은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청도에 1,500여평의 농장을 마련한 대구 관음사는 120여가족에게 텃밭을 제공하고 있다. 이 곳에서 만난 정준철 씨(42) 가족은 5평 남짓한 밭에서 자라고 있는 배추와 상추를 보여주며 “정성스레 밭을 일구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한 주의 피로가 싹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정토회 주말농장은 3,000평에 달하는 도심 속의 생태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주말이면 농작물을 가꾸려는 가족들이 밭을 일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띤다. 음식물쓰레기 퇴비화 연구실험장, 야생화 관찰학습장도 갖추고 있어 교육과 체험학습의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참여불교재가연대의 파주 생태주말농장은 가구당 10평의 토지를 분양하며, 농작물 재배 경험이 없는 이들을 위해 공동경작도 하고 있다. 귀농을 원하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놓고 있는 남원 실상사는 사찰의 고전적인 기능을 넘어 사회재교육과 대안학교의 도량으로 자리 잡았다.

특별취재팀
buddamster@buddhapia.com
200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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