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둘러싼 것들로 인해 내가 규정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를 둘러싼 것들을 제대로 아는 것은 곧 나를 아는 것과 직결되기도 한다.
사학도였던 대학 시절부터 부산 동백중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한 이후 지금까지 한결같이 자신을 둘러싼 것들의 숨겨진 가치와 역사를 알기 위해 한길을 걸어온 주영택(63.향토사학자)거사.
지난해 2월 29일, 퇴임과 동시에 가마골 향토역사연구원을 개원하고 부산의 문화재 발굴 및 보호에 심혈을 기울여 온 그의 일상은 자신을 알아가는 수행과 맞닿아 있다. 이제 주거사는 자신이 알아낸 부산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전하는 일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25일도 학교 선생님들 몇 분의 초빙을 받아 한창 발굴중인 만덕사지를 둘러보고 석불사에 올라 그곳 마애불 29채의 면면을 설명했다. 금정산성내 마애불 중에는 주거사에 의해 발견되어 제 가치를 찾게 된 경우도 많고 보니 그 설명은 단순치 않다. 숨어 있는 원석을 가공하여 보석의 제 가치를 드러내듯 주거사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
그와 함께 하는 금정산 산행이나 범어사 순례는 그가 발로 뛰고 시간을 들여 느끼고 본 것을 고스란히 전해 받을 수 있어 인기가 높다. 200회 이상 금정산을 오르내리면서 범어사의 범위를 나타냈던 범어기(梵魚基)를 발견했고, 폐사지인 해월사지의 위치를 밝혀냈다.
게다가 금정산내에 흩어져 있던 55채의 마애불을 정리했으니 금정산과 범어사에 대한 살아 있는 보물고인 셈이다. 숨겨진 역사이야기, 불교적 가르침을 꼽꼽히 전해주는 그의 설명 덕에 전문 답사팀부터 일반인, 대학생, 교사, 중?고등학생들에 이르기까지 그와 함께 범어사와 금정산을 다녀간 이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가치에 새롭게 눈을 뜬다.
“과거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현재도 미래도 장담할 수가 없어져요. 그러니 우리가 물려받은 것은 최대한 가치를 재발견하고 보존해서 우리의 미래인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하죠.”
요즘 들어 더욱 바빠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는 만큼 세상에 전해주는 것, 그것이 회향임을 알기에 지역문화에 대한 교육, 답사팀 안내, 향토 사료집 발간 등을 위한 자료수집과 현장 답사 등으로 하루해가 찰나처럼 지나가 버린다.
이미 부산의 지명, 문화재, 명소 등을 정리한 <가마골 역사 이야기>를 펴낸 그는 앞으로 해운대의 비석, 해운대 지명과 관련된 최치원 선생의 여정, 금정산과 범어사 등 지역을 알리는 소책자 발간을 준비 중이다. 또한 가마골 향토연구원도 연구회원과 일반회원 10명 정도를 두어 활성화할 계획이다.
설명을 이어가던 그가 갑자기 질문을 던진다. “범어 3기와 범어 8경이 뭔지 알아요?” 범어사에서 기이한 것 세 가지와 여덟 가지 빼어난 풍경을 모르면 범어사에 서린 불교적 가르침을 제대로 알 수 없다며 조용히 설명을 잇는다.
“범어사 어산교에서 바로 보는 노송, 청련암 법당에서 내리는 밤비 소리, 내원암에서 듣는 은은한 종소리, 계명암에서 바라보는 10월 상달, 대성암 구들장 밑을 흐르는 숨겨진 물소리......” 계속되는 설명이 흐르는 물처럼 고요하고 멋스럽다.
“제대로 알고 느끼는 것 그것이 세상을 알고, 자신을 아는 지름길”이라는 향토사학자 주영택 거사는 자신의 보물창고를 활짝 열어 세상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일만 남겨 놓았다.
천미희 기자
mhcheon@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