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든지 이 경을 설하거나 읽거나 외우거나 쓰거나, 이 경전이 있는 곳에는 마땅히 칠보로써 탑을 쌓되 지극히 높고 넓고 장엄하게 꾸밀 것이요. 또 다시 사리를 봉안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이 가운데는 이미 여래의 전신(全身)이 있는 까닭이다."<법화경>
경전은 단순한 책이 아니다. 부처님의 사상이 그대로 농축된 법신(法身)이나 다름없다.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을 강조하는 선종의 옛 선사들이 수행의 한 방법으로 간경(看經)을 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가령 중국 선종의 초조 달마대사는 <능가경>을 애독했다는 기록이 있고, 5조 홍인대사는 <능가경>과 <금강반야경>을 소의로 해서 종풍을 펼쳤으며, 6조 혜능대사는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란 경문을 보고 깨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불법에 대한 큰 믿음과 바른 이해의 기초 위에 경전공부를 하면서도, 보살행을 펼치는 모임이 있어 눈길을 끈다. 놀랍게도 ‘치마불교’의 주역으로 오해받기 쉬운 50~60대의 보살이 주축이 된 이 단체는 바로 ‘대한불교 자비행회’(회장 어수정).
14일 오전 10시 대학로 흥사단의 한 강당.
40여명의 자비행회 회원들이 강의실에 모셔진 탱화를 바라보며 예불과 천수경을 정성스레 올리고 있었다. 30여분의 기도가 끝나자 회원들은 입정(入定)에 들어 <법화경>의 권위자인 혜경스님(소림정사 주지)의 등단을 기다렸다. 이윽고 법사인 혜경스님이 <법화경> ‘견보탑품’을 해설하기 시작했다.
“인도에서는 유골을 ‘사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리는 ‘제행무상’의 법칙을 거스릴 수 없어요. 영원한 진신사리는 부처님의 마음에서 나온 경(經)입니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혜경스님의 법문에 마음을 집중하는 보살들은 스님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적으며 어느새 경전삼매에 빠졌다. 이미 <법화경> 강의는 여러번 들은 바 있지만, ‘부처님의 전신인 법화경을 모든 불상에 봉안하는 이유’ 등 실제적인 비유를 곁들인 스님의 설법은 들을 수록 깊이가 있다.
자비행회가 창립된 것은 13년전인 89년 3월. 당시 조계사 총무원회관에서 불교 공부를 하던 ‘관음회’ 회원 중 경전공부와 자비행을 병행하겠다고 20여명의 보살들이 발심하면서부터 비롯됐다. 당시 보살들은 성지 순례에 나설 때마다 불사에만 관심을 쏟는 사찰과 기복에만 매달리는 불자들의 신행행태에 문제의식에 느끼고 경전공부를 통한 선행과 더불어 사는 보살행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어수정 회장은 “타력신행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납득할 수 있고 의심이 없어야 부동(不動)의 발심을 일으킬 수 있음을 자각하고 경전공부를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자비행회는 청량리 불교교화원 법당에서 경전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엔 3000원의 회비로 성지순례를 병행하며 신심을 다지기도 했다.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는 예불과 천수경, 염불정근, 찬불가 부르기가 끊임없이 계속된다. 지난 8일에는 적성산 안국사를 참배하고 돌아오면서, 온산과 어우러진 단풍의 향기와 빛깔을 보고 일체가 어우러진 대승의 삶을 절감했다는 것이 이연순 회원의 말이다.
자비행회는 89년 무설정사의 혜경스님과 인연이 닿으면서 공부의 깊이가 더해졌다. 하나의 경전을 오랫동안 일심(一心)으로 들여다 볼수록 실천 없는 신행의 공허함을 더욱 절감했다. 그래서 평상심으로 이웃과 조화롭게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한편 소년소녀 가장에 대한 장학금 전달, 소쩍새마을 후원하기, 양로원 돕기 등 자비행도 더욱 내실을 다지게 되었다.
거사 10명을 포함한 100여명의 회원들은 8년전부터는 지금의 흥사단 강당에서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한번도 빠짐없이 ‘부처님과 하나되는 수행법’을 진행하고 있다. 혜경스님과 박종 법사가 격주로 강의를 진행해, 그동안 부처님 일대기로부터 <아함경> <원각경> <승만경> <능엄경> <화엄경> <법화경> 등 주요 경전을 배웠다. 처음에는 기초교리도 몰랐던 회원들이 꾸준한 경전공부를 토대로 한 참선, 염불 등의 수행과 보살행 실천으로 회원 모두가 일당백 포교사가 된 것이다.
여느 불교학자 못지 않게 경전공부를 많이 한 어수정 회장은 "올바른 수행과 실천은 올바른 불교관에서 나오는 것임에도 불자들이 경전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수요 강의에 불자들의 많은 동참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011)776-3545
김재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