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 종로구 경운동에 위치한 서울노인복지센터 조리실. 1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노인 2000여명분의 점심공양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가운데 잿빛 법복을 입은 한 보살이 눈에 띤다.
무우 껍질을 벗기고, 파를 다듬고, 국을 옮기면서도 항상 웃는 얼굴로 자원봉사자들을 독려하고 있는 이 보살은 언뜻 50대 중반의 나이처럼 보이지만 실은 내년이면 70세가 되는 노익장인 이화수 보살이다.
지난 5월부터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 보살은 자신도 노인이면서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즐겁게 하고 있다.
손이 떨려 식판을 들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직접 음식을 나르기도 하고 어르신들의 말벗도 되어주는 이 보살의 이곳에서의 자원봉사는 다른 보시행 가운데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 보살은 육군사관학교를 비롯한 군법당, 비구니 스님들이 운영하는 어려운 사찰과 복지시설들, 소년소녀 가장의 집 등 소외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특히 이 보살이 주력하는 봉사활동은 서울 가락동 경찰병원과 일원동 삼성의료원, 인연닿는 상가집에서 펼쳐진다. 무연고자나 소년소녀 가장 등 돈이 없는 환자나 고인들을 위한 호스피스 케어, 염불기도, 장례봉사 등이 그것이다.
이날 오후 3시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무료급식 봉사를 마친 이 보살은 함께 온 이경순, 김옥연, 임순덕, 김민숙, 배경민 보살 등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자신이 부회장을 맡고 있는 장충동 백련선우회 사무실로 향했다.
보다 어려운 보시행인 장례봉사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임종에서 다비까지 진행되는 불교장례식은 죽은 시신을 염할 때 나오는 악취와 분비물 등 전문적인 훈련과 웬만한 신심 없이는 감당하기 힘든 가장 어려운 자원봉사이기 때문이다.
장례봉사 교육은 임종기도로부터 시작됐다. 가족의 평안과 영가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염불기도, 고인의 몸을 반듯하게 모시는 수시(收屍), 법사의 염불염습에 맞춰 정성껏 몸을 닦아 수의를 입혀주는 염습(殮襲), 목관에 고인을 모시는 입관(入棺), 상가에서 장지로 출발하는 발인(發靷), 화장장에서의 다비(茶毘) 또는 매장, 납골안치 및 위패봉안까지 불교식 장례의 모든 것을 차례차례 습득시켰다.
“장례봉사에서 영가와 상주와 한마음이 되어 시신 한번 거두어 보면 절에 몇 년 다닌 것과 같은 공부 효과가 있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고 변하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상’을 몸과 마음으로 깨닫는 산 공부를 하게 돼요.”
이 보살은 장례봉사를 통해 불자들이 불교의 생사관(生死觀)과 무상관(無常觀)을 저절로 깨닫게 되어 불교 공부가 일취월장하게 된다고 체험담을 이야기 했다.
처음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젊은 영가의 시신을 수습했을 때의 생생한 환희심, 영안실에서 장의사로 취급받고 수모를 당했을 때의 하심공부, 시신에서 나오는 악취가 원래 없는 것임을 관할 때의 마음자리, 영가가 눈에 보일 때 법성계를 외우며 보이지 않게 하던 일 등 무궁무진한 공부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염습을 배우고 있는 김옥연 보살은 실습이 끝난 후 “이 보살님은 6년동안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마치 지장보살님처럼 온갖 궂은 일을 앞장서 해왔다”면서 “경전 공부를 뛰어넘은 실천을 통해 불법을 증험하는 산 공부를 일깨워주고 있다”고 귀뜸했다.
이 보살이 장례봉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7년전. 조계사의 독실한 신도였던 여동생의 시어머니가 임종하자 장례의식이 철저하게 기독교식으로 진행되어 충격을 받은 것. 이 때부터 이 보살은 장례의식을 직접 배워 96년 6월 백련선우회(회장 성태용)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이웃 종교처럼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종교가 되지 않고서는 시민들의 정신적 귀의처가 되지 못한다”는 이화수 보살은 “늦었지만 호스피스 케어와 장례봉사에 많은 불자들이 동참하는 생활불교를 만들어야 한다”며 여생을 불교장례문화 보급을 위해 바치겠다는 원력을 내비쳤다. (011)9035-7166
김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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