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right}오늘날 현대문명은 인간주의(人間主義)로 세계 역사를 창조했습니다. 인간주의는 한없는 욕망으로 인한 전쟁과 환경파괴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양의 전통적 정신문화는 인간을 초월하여 인간의 모순을 근원적으로 해결한 참사람이 살아있습니다. 오직 이 참사람만이 중생을 구제할 수 있고 세계평화의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과학문명은 표면적으로는 이성의 문명이라고 하나, 그 이면에는 자연을 지배하는 욕망적 인간주의로 전락하여 여러 가지 병폐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불교의 조사선(祖師禪)은 자아를 초월한 그 본성 자리인 인간의 진실상을 근원적으로 완전히 드러냈으니, 이것을 참사람이라고 합니다.
참사람은 본래 자유자재하여 인간을 과학문명의 노예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참사람은 대자연과도 불이·일체(不二一 )의 생명이니 대자연을 포용·애호(包容愛護)하는 것입니다.
참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협조하면서 자비정신을 구현함으로써 세계인류 평화의 역사를 창조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조사선의 참사람 법문을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
(本則)
위산( 山)스님이 도오(道吾)스님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왔는가?"하니, 도오스님이 이르되 "간병(看病)하고 왔습니다" 했어요. 위산스님이 다시 이르되 "몇 사람이나 병이 들었던가?" 하니, 도오스님이 답하길 "병든 자도 있고 병들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위산스님이 이르되 "병들지 아니한 자는 이 도오종지(道吾宗智) 두타(頭陀)가 아닌가?"하니, 도오스님이 이르되 "병과 병아님이 다 타사(他事)에 간섭하지 아니 하나니, 속히 이르고 속히 이르시오."라고 하니 위산스님이 이르되 "이를래야 교섭할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를 천동각선사는 이렇게 노래 했습니다.(天童覺禪師 頌)
묘한 약은 어찌 일찌기 입을 통과하는고? 신(神)같은 의사는 능히 손을 잡지 아니 하느니라. 만약 있다고 하면 저것은 본래로 없음이 아니고, 지극히 빈 것이라 하면 저것은 본래로 있는 것이 아니로다. 멸하지 아니하고 남이오. 망하지 아니하고 수(壽)하느니라. 온전히 위음왕 부처님 이전을 초월하고 홀로 공겁의 이후를 활보(活步)하느니라. 평정(平正)을 이룸이여, 하늘이 덮고 땅이 받침이오. 움직여 굴림이여, 까마귀(해) 날고 토끼(달) 달리도다.
이것을 다시 나는 이렇게 부연하고자 합니다.(西翁禪師 着語)
衆流截斷이라 柳綠花紅하고 明月藏鷺하며 獨步靑天하도다.
別別 淸風凜凜拂乾坤하고 四海茫茫却倒流하도다.
喝 -
(모든 흐름이 끊김이라. 버드나무는 푸르고 꽃은 붉도다. 밝은 달 속에 백로를 감추고 홀로 푸른 하늘을 活步하도다. 특별히 말하노니 청풍은 늠늠하여 건곤을 떨치고. 사방 큰 바다는 아득하여 도리어 거꾸로 흐르도다.
아 - 악 -)
<서옹스님 인터뷰>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서옹(西翁) 스님을 8월19일 참사람 무차대법회가 끝난 뒤 백양사 설선당(說禪堂)에서 친견했다.
-참사람 무차대법회를 열게 된 취지는 무엇인지요.
▲오늘의 세계 역사는 지나친 물질의식에 집착한 나머지 부정부패와 내몫 지키기에 혈안되어 남을 파괴하는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주의로 인류는 멸망하게 됩니다. 참사람은 자유자재하며, 자비심으로 서로를 돕고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전통을 살려 평화적으로 역사를 창조하고 남북통일과 인류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법회는 원래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데 굳이 '무차' 형식의 법회가 필요한가요.
▲원래 불교는 평등의 정신에 기반하여 가르침을 펴고 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다보니 사람들에게 습(習)이 들어 이상대로 안되게 마련이지요. 이를 바로잡아 수행기풍을 바로 잡는 기회로 삼자는 것입니다.
-위빠사나 관법(觀法)과 조사선을 비교하신다면.
▲위빠사나 수행은 소승불교에서 유래된 것으로 산란한 정신을 안정시켜 정신을 맑게 하는데 효력이 있지만, 생사문제는 해결하지 못해요.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주의 진리를 꿰뚫는 참선이 필요해요. 좀 어렵지만 근원적인 문제해결에는 동양의 조사선이 효과적입니다.
-최근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는데 국민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은.
▲불교에서는 인간의 근본 자리에서 모든 것을 해결합니다. 따라서 남북문제는 당사자가 '주인공'의 입장에서 노력하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불자이든 아니든 참사람 정신이 역사창조의 근본이 될 수 있으니, 나를 버리고 동체대비의 '하나'로 돌아가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남북의 이산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신다면.
▲그동안 남북이 분열되어 살아왔는데 서로 교류를 하고 대화를 하게 되어 다행입니다. 인간은 근원으로 돌아가면 서로 통해있는 만큼 서로 이해하고 도와야 해요. 너무 감정에만 치우치지 말고 근본과 본심으로 돌아가서 멀리 내다보며 살아야 합니다.
-조사선이 현대에 와서 위기에 처한 원인은 무엇인지요.
▲인간주의가 오늘날 욕망으로 흘러 전쟁과 환경파괴를 낳고 있어요. 물질문명의 이기가 인간을 본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참모습으로 살 때 욕망에 흐르지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불교는 조사선의 전통을 갖고 있는 만큼 이 전통을 되살려 화합을 통해 역사발전과 인류평화에 이바지해야 합니다.
-98년 제1차 국제무차선대회에 비해 행사가 많이 축소됐는데요.
▲98년에는 국제적인 행사로 개최했으니, 이제 국내적으로 내실을 기할 생각입니다. 매년 무차선법회를 개최하고 싶지만 사중 살림을 고려해 2년만에 개최하게 된 것입니다.
-조계종의 수행기풍 진작을 위해 당부하실 말씀은.
▲조계종이 조사선의 수행전통을 되살려 자비·화합해 민중에 이바지 하는 종단이 되길 바랍니다. 현실은 언제나 이상과는 다르듯이 포기·낙담하지 말고 종지종풍대로 정진하면 새로운 역사가 펼쳐질 것입니다.
-오늘 법회를 회향하신 소감은.
▲많은 수행자들이 신심을 갖고 참여해, 인간의 참모습을 깨닫기 위해 노력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동화사조실 진제 스님 법어
(주장자( 杖子)를 들어 법상(法床)을 한 번 치고 설하기를,)
이 주장자( 杖子)는 삼세제불의 명근(命根)이요,
역대도인(歷代道人)의 안목(眼目)이로다.
이 주장자를 알면 일초 직입 여래지(一超直入 如來地)리라.
여래지란 법신변사(法身邊事)냐, 여래선(如來禪)이냐,
향상일로(向上一路)를 투과(透過)하여야 여래지를 증득(證得)하여 요사인(了事人)이 됨이로다.
21세기는 참사람을 밝히는 선수행(禪修行)이 아니고는 세계인류의 평화를 성취할 수 없고, 마음의 갈등을 해소(解消)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모든 사람들이 생활 속에 선수행을 꾸준히 닦아 행할 것 같으면 큰 지혜(智慧)를 증득하여 편안한 낙(樂)을 누리시게 될 것입니다.
인생은 오늘 있다가 내일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나 혼자만이 많이 가지겠다고 탐심하지 마시고, 만인에게 베푸는 선행(善行)을 행하여야, 나고 날 적마다 복(福)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복이 되는 선행을 행하고, 참나를 닦아 행하는 선 수행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댜 줄 것입니다.
옛 도인이 말씀하시기를
"인빈(人貧)함은 지단(智短)이요 마수(馬瘦)함은 모장(毛長)이니라"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선수행과 선행을 겸비한 생활 철학으로 생활화 합시다.
근세(近世)에 유명한 선사(禪師) 2분을 소개할까 합니다.
남방에 혜월(慧月) 선사가 계셨는데, 경허(鏡虛) 선사로부터 인가를 받아 제자가 된 후로, 남방에 주석(住錫)하시며 많은 수좌스님들을 지도하고 계셨습니다. 그 당시는 우리나라가 36년간 일본인 통치(統治)를 받는 불행한 시기였습니다.
우리나라를 지배 통치하는 남총독(南總督)이 남방 선지식이 명성이 대단한 것을 알고 하루는 혜월 선사를 방문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총독이 말하기를, "한 말씀 묻고자 합니다. 어떤 것이 불법(佛法)의 진리입니까?"
혜월 선사가 대뜸, "불법의 진리? 귀신 방기(鬼神放氣)니라" 하니, 총독이 어리둥절하여 알아듣지 못하고 가버렸습니다.
그런 후로, 남총독이 혜월 선사에게 방망이를 맞고 갔다는 소문이 일본국(日本國)까지 분분하니 일본 군인이 그 말을 듣고, "내가 한국에 가서 혜월 선사를 혼내주리라" 하고, 한국에 와서 혜월 선사 계시는 방 앞에 이르러 노크도 안하고 구둣발로 들어가 혜월 선사 목에 장검을 뽑아 대거늘,
혜월 선사가 즉시에 손으로 일본 병사 뒤편을 가르키니 도적이 제발에 절여 뒤를 돌아보니, 혜월 선사가 즉시 일어나서 일본 병사의 등을 치며, "내 칼을 받아라" 하니, 그 일본 병사가 장검을 거두고 큰 절을 하며, "과연, 큰스님이십니다." 하고 돌아갔습니다.
만약, 그 당시 혜월 선사가 공포의 표정을 지었더라면, 즉시 목이 달아났을 겁니다. 이렇게 당당한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느냐? 우리 모두 생활 속에 참사람을 찾는 선 수행을 잘함으로써, 만인에 앞서는 선견지안목(先見之眼目)을 갖추게 되니, 우리 모두 열심히 정진합시다.
혜월 선사 회상에서 운봉 선사가 여러해 동안 혜월 선사를 모시고 정진하다가 이곳 백양사 운문암에서 용맹정진중 대오견성(大悟見性)을 하셨습니다. 그 후, 혜월 선사 계신곳을 찾아가 예삼배를 올리고 묻기를 "삼세 제불(三世諸佛)과 역대 도인(歷代道人)들이 어느 곳에서 안심입명(安心立命)함이닛고?" 하니, 혜월 선사께서 '양구(良久)'를 하시니 운봉 선사가 대뜸 말하기를 "산 용(龍)이, 어찌 죽은 물에 잠기어 있습니까?" 했지요.
혜월 선사께서 "너는 어떻게 하려는고?" 하자, 운봉 선사가 '불자(拂子)'를 들어 보이니, 혜월 선사께서 "옳지 못하고, 옳지 못하다" 하니, 운봉 선사가 다시 "기러기가 창문 앞을 지나간지가 오랩니다" 하니, 혜월 선사께서 "내가 너를 속일 수가 없구나" 하시고 법을 전하고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런 후로 세월이 흘러 연로한 후에는 산에 떨어진 솔방울을 주워다가 불을 때는 생활을 하셨는데, 항시 솔방울 포대를 짊어지고 오다가, 쉬는 자리에서 잠깐 쉬었다가 오시고 하셨는데, 하루는 솔방울 포대를 반쯤 짊어지고 일어서는 자세를 하고 열반에 드셨습니다.
여러분 이 어찌된 연고입니까?
보통 사람들은 숨이 떨어지면 전신(全身)을 가누기가 힘들거늘, 혜월 선사는 이와 같이 열반상을 보이셨습니다.
장하고, 장하도다. 운봉 선사는 혜월 선사로부터 인가를 받은 후로 제방 선원과 선지식을 참방하셨습니다.
경기도 양주 망월사를 가시어, 제방에서 발심한 수좌스님들과 모여 결제방을 짜기를 용성(龍城) 선사를 조실 스님으로 모시고 운봉 선사를 입승 스님으로 모시고, 석우 선사를 선덕스님으로 모시고 40여 명의 스님들이 정진했습니다.
그러던 중, 반살림이 도래하여 조실 스님께서 법상에 오르시어 법문 하시기를, "삼세 제불(三世諸佛)도 참 나를 보지 못함이요, 역대 도인(歷代道人)들도 나를 보지 못함이니, 여기에 모이신 대중 스님들은 어느 곳에서 참 나를 볼려는고?"
이렇게 물으니, 운봉스님이 일어나 대답하시기를, "유리 독 속에 몸을 감추었습니다." 하니, 용성 선사께서 법상에서 내려 오셨습니다.
대중들이여, 물음도 멋이 있었고, 또한 답하심도 멋이 있음이로다.
유리독 속에 몸을 감춤이라 하는데, 조실 스님께서 한 말씀하시고 법상에서 내려 가셨던들 더욱 더 좋았을 것을!
산승(山僧)이 그 당시 조실이 되었던들 한마디하고 내려갔을 것입니다.
"사자(獅子)가 선릉(善能) 사자후(獅子吼) 하는구나. 하였던들 금상첨화(錦上添花)로다."
운봉 선사는 이러한 고준한 안목을 갖춘 선지식이라. 세월이 지나 입적 수일 전에 제자되신 향곡 선사께서 묻기를 "스님 언제 사바세계를 여이고 열반에 드시렵니까?" 하시니, "토끼꼬리 빠지는 날 까지"라 하시고, 음력 2월 29일 신도와 제자들을 불러 마지막 법문을 하시고 입적하시려 할 때,
향곡 선사가 묻기를 "스님께서 도를 깨치셨습니까?" 하자, "깨달을 것이 있으면 벌써 도가 아니네, 도를 도라고 하면 도가 아닐세." 그러시고는 대뜸 한 대 때리셨습니다.
"대적 삼매(大寂三昧)도 변함이 있습니까?"
"누가 적정 삼매(寂靜三昧)라고 하더냐?"
"열반(涅槃)의 길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아야, 아야."
"스님께서 돌아가신 다음 어느 곳으로 가시렵니까?"
"동쪽 마을 시주네 집에 물소가 되어 가리라."
"그러시면 물소라고 불러야 옳습니까? 스님이라 불러야 옳습니까?"
"풀을 먹고 싶으면 풀을 먹고, 물을 먹고 싶으면 물을 먹으리라."
"스님께서 열반에 드시면, 누구를 의지하여 지도를 받습니까?"
선사께서 오른 손으로 자리를 툭툭 치시며, 육자백이를 읊으셨어요.
"저 건너 갈비 봉에 비가 묻어오는구나. 우장 삿갓을 두르고 김을 매러 갈거나."
그러시고 편안히 들어누워 숨을 거두려 하셨습니다.
좌우에 있던 대중들이 "스님, 스님" 소리치니, "나를 불러 무엇 하려는고?" 하시고, 입적하셨습니다.
대중들이여, 양대 선사(兩大禪師)의 입적(入寂)함을 보시오.
한 분은 솔방울 포대를 지고 반쯤 일어나는 자세에서 열반에 드셨고, 한 분은 토끼꼬리 빠지는 날 제자들과 대담하시고 열반에 드시니, 제불제조(諸佛諸祖)의 무상대열반(無上大涅槃)이로다.
대중은 알겠습니까?
一顆明珠轉玉盤 徹底無瑕光皎然
頂門未具金剛眼 慧月雲峯不易親
한과의 밝은 구슬 옥반위에 굴으니
철저히 티 없이 찬란함이로다
이마 위에 금강 안을 갖추지목하면,
혜월 운봉 선사를 쉽게 친견하지 못함이로다.
(喝 一喝하시고 下座하시다.)
看話禪의 修行體系
성본스님(동국대 교수) 강설
간화선은 각자의 번뇌망상(煩惱妄念)을 조주(趙州)의 무자(無字) 공안(公案)이라는 방편을 간(看·始覺)하여 근원적인 각자의 본래심을 깨닫도록 하는 참선수행을 말합니다. 즉 번뇌망념과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난 근원적인 본래심의 세계(還歸本處)로 되돌아가 열반적정(涅槃寂靜)의 경지를 체득하게 하는 참선 수행인 것입니다. 즉 무자 공안을 방편으로 스스로 苦에서 해탈하는 자각의 종교인 것입니다.
사실 간화선의 근본은 조주 무자 공안을 참구하는 것이며, 간화선의 수행에서 조주 무자 공안을 능가하는 공안은 없습니다.
조주 무자 화두를 看하여 각자의 본래심을 깨닫도록 하는 宋代의 간화선은 五祖法演(?--1104)의 법문에서 최초로 제기되었으며, 大慧宗 에의해 간화선으로 대성되었고, 無門慧開(1183--1260)의 {無門關}에서 수행체계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선불교에는 많은 公案이 있습니다. {전등록}에 전하는 소위 1700 공안이나,{벽암록}100칙, {종용록} 100칙, {무문관}48칙 등의 많은 공안집에 전하고 있는 公案이 있습니다. 또한 대혜가 편집한 {正法眼藏}3권에는 五家 各派 조사들의 공안(어록) 661칙을 수록하여 대혜가 着語와 評唱을 붙이고 있는데, 이러한 선종의 공안집에 수록된 공안들은 조주의 무자 공안처럼, 근원적인 본래심을 깨닫고 참구하기 위한 공안이 아니라,다양한 事例,혹은 判例인 공안을 공부하여 정법의 안목을 구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선불교의 교과서인 것입니다. 사실 공안은 判例이며 事例인 것입니다.사건의 진실이 밝혀진 체험적인 사례이며 지혜로운 안목의 판례인 것입니다.
대혜가 간화선의 수행방법을 제시하면서 오로지 조주의 무자화두만을 참구 할 것을 누누이 강조하면서 달리 {正法眼藏} 3권을 엮고 661칙의 공안을 하나 하나 열거하면서 착어와 평창을 붙이고 있는 것은 후학들에게 정법의 안목을 점검하고 공안공부를 통하여 불법의 지혜(後得智)를 체득하게 하기 위해 선불교의 교재로 편찬 한 것입니다.
옛 조사들의 다양한 깨달음의 체험과 정법의 안목을 공안을 통해서 배우고 익혀 각자 정법의 안목을 깊고 넓히는 判例와 事例로 삼도록 한 것입니다.
붓다의 설법을 8만4천 법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중생의 번뇌가 8만4천이나 되기 때문이며, 수많은 중생들의 번뇌(고뇌) 病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84000이나 되는 다양한 법문의 처방 약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양한 事例의 선문답(공안)을 통하여 다양한 불법의 안목을 구족해야 자신의 일상생활 매사를 정법의 안목으로 살아갈 수 있을 뿐만아니라 다양한 사건과 고뇌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올바른 正法의 眼目으로 구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宋代 이후의 선원에서는 무자 공안을 참구하는 좌선 수행 이외에 선지식의 정기적인 上堂法門과 수시로 실행되는 小參法門 이외에도 {臨濟錄}{碧巖錄}{無門關}{從容錄} 등의 공안집을 교재로 하여 조실스님이 특별히 납자들의 안목을 열어주고 사상을 갖춘 수행자를 배출하기 위한 실천수행적인 語錄提唱(강의)이 실행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