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사회복지 전문가인 권경임(45)씨는 20여년 연구의 결실을 담아 튼실한 무게가 느껴지는 저서‘현대불교사회복지론’(나남출판)을 내놓으면서도 무척 수줍어 했다.
평생‘불교’와‘복지’만 생각하며 살아온 노처녀가 처음 세상에 자신을 드러낸다는 부담감인 듯하다.
“전생에 스님이었나봐요.어려서부터 불교에 그렇게 호감이 가더라구요.그러다보니 지금까지 불교를 멀리해본 적이 없었고,공부를 하다보니 자연히 불교와 관련된 연구를 하게 됐습니다."
불교집안에서 태어난 권씨는 자연스레 절집을 자주 드나들었다.‘자비(慈悲)’의 실천이란 생각에서 성심여대(카톨릭대 전신)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해선 ‘수선회’라는 불교서클에 가입해 큰 스님의 법문을 들으러 다니는 데 열심이었다.
출가(出家)와 공부를 저울질하다 일단 공부쪽을 택했다고 한다.이화여대를 거쳐 동국대 불교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20년이 걸렸다.‘불교사회복지학’이란 학문분야를 혼자 개척하다시피 공부해야했기 때문이다.
“불교는 자비와 보시를 중시하는 종교이며,수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종교입니다.불교는 기원전부터 사회복지를 해온 셈이죠.불교사 속에서 그 뿌리를 찾고자 했습니다.”
돈독한 불심에 오랜 연구성과인지라‘현대불교사회복지론’은 매우 광범하면서도 빈틈 없다.30여 가지 불교경전과 사상별로 복지개념을 이론적으로 추출해내고,다시 석가모니와 아쇼카왕(인도)·양무제(중국)·쇼토쿠태자(일본)등 주요 인물들의 행적 속에서 불교적 복지구현의 실례들을 찾아냈다.
어렵사리 공부하는 과정에서 여러차례‘차라리 출가했을 것을’이란 흔들림이 적지않았다. 평소 아껴주던 탄성스님으로부터 제자로 거두어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았지만 책출간을 앞두고 결심을 미뤘다고 한다.
“탄성스님이 지난 6월 입적하지 않으셨다면 책 출간하고 바로 출가했을지도 몰라요.그렇지만 이젠 마음을 굳혔습니다.그동안 공부한 것으로 좋은 일 많이 하고, 다음 세상에서 남자로 태어나 일찍 출가할 겁니다.”
평신도에 대한 승려들의 권위를 강조하고,승려간에도 법랍(출가한 이후의 연조)을 따지고 남녀차별이 심한 불교계의 현실속에서 여자평신도로서 겪은 설움이 적잖음을 말해주는 대목이 따갑다.
2000.10.05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