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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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은 ‘포행로’이며 동물들의 ‘오솔길’
81. 적상산 안국사

해발 1614미터인 덕유산은 백두대간이 지리산에 이르기 전 마지막으로 크게 기지개를 켠 곳이다. 적상산(1034미터)은 덕유산의 정상인 향적봉 줄기가 북서쪽으로 치올라간 아우산이다. 덕유산국립공원 안에 포함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 ‘무주’편에 보면 ‘사면으로 곧추 선 암벽이 층층이 험하게 깎이어 마치 붉은 치마를 두른 것 같아’ 그 이름을 적상산(赤裳山)이라고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일찍이 신라와 백제의 변경이었던 지역으로, 고려 때 최영 장군이 이 천혜의 요새에 축성할 것을 건의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월인(月印) 스님이 성 안에 안국사(安國寺)를 창건해 국태민안을 기원한 것도 그 무렵일 것이다. 조선조에 들어와 성을 오늘의 모습으로 보축하고 사고(史庫)를 설치하였다. 안국사는 국사(國史)를 지키는 나라의 원찰이 되었다.

적상산은 여인네들의 치맛단처럼 사방이 구비진 천애의 층암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옛 글에 ‘…겨우 두 갈래 길이 산 위로 열려있다’고 했는데, 지금도 두 갈래이다. 무주읍을 지나 북창으로 올라가는 길과 그 반대쪽 치목에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북창에서 안국사 가는 길은 포장은 되어 있지만, 협곡을 낀 가파른 구절양장(九折羊腸) 구빗길에다 터널까지 통과해야 하는 험로이다.

적상산의 8부에 자리한 산정호수는 지난 1995년 양수(揚水) 발전을 위해 만든 인공호수 적상호이다. 원래 이곳에 있던 안국사와 사고는 수몰 전에 위쪽으로 옮겼지만, 댐 건설 과정에서 18만평의 삼림이 사라지고, 고산 분지와 습지의 독특한 생태계가 파괴되어 버렸다. 게다가 식생의 고유성이 지켜져야 하는 국립공원임을 망각한 채 족제비싸리, 중국단풍, 일본 홍단풍 등 외래종 조경수들만 그득 심어놓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사고는 왕조실록과 옹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서고이다. 임진왜란 때 유일하게 병화(兵禍)를 피한 전주본을 재인(再印)하여 광해군 때 정족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에 사고를 지어 봉안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사고를 수호하는 역할을 사찰에서 맡게 되었는데, 이곳 안국사를 비롯하여 전등사, 각화사, 보현사, 영감사 등이 그곳이다.

적상호를 굽어보는 둔덕에 선사양각(璿史兩閣)의 사고가 나란히 앉아 있다. 사고의 언덕에서 굽어보는 적상호가 평화롭다. 옛 문헌에 ‘성 안은 평탄하고 넓어 물이 사방에서 솟아난다. 참으로 천연의 요새다’라고 했는데, 지금도 그 표현은 유효하다.

안국사 모니터링 구간은 사고를 거쳐 일주문에 이르는 구간, 안국사 경내지역, 안렴대와 주변 능선 등 세 구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았다.

사고에서 송대로 내려가는 초입에 고색이 창연한 부도 몇 개가 몇 그루의 독일가문비나무 그늘에 편히 쉬고 있다. 우람한 몸집을 자랑하고 있는 독일가문비나무(Picea abies)는 나무의 모양새가 우리 전나무와 흡사하다. 그러나 부도와 사고(史庫)가 있는 사적지에 외래종 나무는 아무래도 격이 맞지 않는다.

바야흐로 버섯의 계절이다. 송대로 내려가다 보면 큰눈물버섯 등 몇 종류의 버섯들이 무리지어 자라고 있다. 큰눈물버섯은 표면은 황갈색이며, 섬유상 인편(鱗片)으로 덮여 있고, 가장자리는 내피막의 흔적인 섬유상의 털이 붙어 있다. 독은 없으나, 식용하지 않는다.

현재 적상산성은 무주우체국에서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재청에서 1사(社) 1문화재 정책의 일환으로 적상산성 지킴이 역할을 무주우체국에다 위임해준 것이다. 거기에 안국사가 빠져 있어서 아쉽다.

지금 안국사 자리는 지난 1949년에 소실된 호국사의 옛 터라고 한다. 청하루(淸霞樓)를 중심으로 위아래 구역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위쪽의 새로 닦은 터에는 본전인 극락전을 비롯하여 천불전, 청하루, 성보박물관, 요사채 등등이 자리하고, 본래 호국사 옛터였다는 아래 구역에는 객실과 해우소 등이 자리하고 있다.

안국사 주변에서는 박새류와 딱따구리류를 비롯하여 붉은머리오목눈이, 곤줄박이, 딱새, 노랑턱멧새, 직박구리, 어치 등이 관찰되었다. 꿩, 검은등뻐꾸기, 파랑새, 까마귀 등은 소리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적상호에는 원앙이 확인되었고, 노랑할미새도 호수 가장자리에서 서식하고 있었다. 적상호 아래 마을 주변의 숲에서는 되지빠귀와 꾀꼬리가 관찰되었다.

천불전은 사고의 선원각을 옮겨온 것으로, 한국전쟁 때 화를 입지 않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마루로 위층과 아래층이 분리된 중층구조는 다른 전통건축에서는 보기 어렵다.

적상산의 여름철 나비로는 세줄나비류, 표범나비류, 네발나비류, 제비나비류, 부전나비류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황다리독나방은 천불전 마당에서 관찰되었고, 별박이세줄나비는 사고 주변에서 만났다.

경내에는 ‘노무라단풍(野村)’이라고도 불리는 홍단풍을 비롯해, 사스타데이지, 컴프리, 자산홍, 일본목련 등 외래종 초본과 목본들이 개체수로 더 많다. 절을 이전해 오는 과정에서 분별없이 심은 것들이다. 사스타데이지는 여름의 시작과 함께 핀다고 하여 ‘여름국화’라고 불리는 원예교배종 국화이다. 꽃이 가을까지 연이어 피기 때문에 모르는 이들은 구절초로 착각하기 일쑤다.

안국사는 해발 1000미터의 정상부에 있지만, 물은 그리 부족하지 않다. 우물을 방불케 하는 큰 샘이 사시사철 줄어들지 않고 흐른다. 산 아래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음용수로 떠가지만, 물속에는 사람들이 던져 넣은 동전들이 수두룩 가라앉아 있어서 음용하기에는 좀 꺼림직하다. 경내 약수라고 해도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면 공동우물 개념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해우소는 중층 구조로 전통해우소 흉내를 내고 있지만, 시스템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래층 변조칸을 시멘트로 막아서 냄새가 지독하게 나고 파리도 엄청 많다. 관리에 신경을 좀 써야겠다.

해우소 앞을 지나면 능선과 안렴대로 가는 숲길이 나 있다. 숲길은 이용자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붙여지게 마련이다. 수행자들에게는 그늘 좋은 ‘포행로’가 될 것이다. 그러다가 해가 지면 숲길은 오소리를 비롯한 적상산의 포유류들이 지나다니는 그들만의 오솔길이 된다.

포유류는 대개가 야행성이기 때문에 실물 확인이 쉽지 않다. 이 점을 감안하여 털, 배설물, 소리, 발자국 조사를 병행한다.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청문조사도 유용하다. 청문에 의하면, 삵, 오소리, 너구리, 멧돼지 등의 포유류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적상산의 명소인 안렴대(按廉臺)는 바위의 절리현상으로 이루어진 절벽이다. 조선조 안렴사(按廉使)들이 난을 평정하기 위해 올랐다는 전설과 짝하여 멀리로는 덕유산 줄기들이 장쾌하게 지나가고, 발 아래로는 남도로 가는 길이 달리고 있다.

안국사와 안렴대를 포함한 정상부는 늙은 노송도 간간이 보이지만, 주목을 끌지 못하고 거의가 활엽수들이다. 가을이면 단풍이 들어 글자 그대로 붉은 치마폭[赤裳]을 펼친 듯 할 것이다.

부도-송대-사고-안국사-안렴대-향로봉 주변의 초본으로는 여로, 뻐꾹나리, 조릿대, 김의털, 우산나물, 하늘말나리, 오리방풀, 애기나리, 까치수영, 박쥐나물, 모시대, 산오이풀, 동자꽃, 물봉선화, 정령엉겅퀴, 흰송이풀, 진범, 까치수영, 노루오줌 등등이 있다. 안국사 안팎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초본으로는 뱀무, 광대수염, 돌나물, 기린초, 갈퀴나물, 큰방가지똥, 그리고 엉겅퀴 종류 등이 있었다.

적상산 숲은 층위구조가 튼실하고 종도 비교적 다양했다. 신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개서어나무, 들메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비교적 건조한 곳에는 참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습한 곳에는 들메나무, 고로쇠나무, 까치박달 등이 많이 보인다.

그 밖에 전나무, 잣나무, 피나무, 느티나무, 층층나무, 쪽동백, 떼죽나무, 노각나무, 서어나무, 산벚나무, 개벚나무, 쇠물푸레나무, 노박덩굴, 개옻나무, 철쭉, 진달래, 조록싸리, 말발도리, 둥근생강나무 등등이 체크되었다. 6월 초, 꽃이 핀 나무로는 고광나무, 노린재나무, 산딸나무, 층층나무, 국수나무, 찔레 등이 있다.

호국사비 주변은 수각의 물이 흘러내리는 곳이라 주변이 음습하다. 버드나무류를 비롯하여 딱총나무 등 음습한 곳을 좋아하는 식물들이 저네들의 세상을 이루고 있다.

안국사는 양수발전소 건설로 본의 아니게 자리를 옮긴 지 10년, 하루하루 새로운 면모를 가꾸어 가고 있다.
김재일 사찰생태연구소 | temple-e@hanmail.net
2007-07-11 오후 5: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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