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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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080미터, 탁트인 공간 풍부한 식생…“무궁한 절경”
80. 수도산 수도사

‘…산세를 둘러보니 사방 어느 쪽도 공결이 없고 지세가 높고 확 트인데다 절터가 반듯하며 가야산으로 안산을 삼고 있었다. 봉우리에 흰 구름이 자주 걷히기도 하고 덮이기도 하는 모습을 앞문을 열어 놓고 하루 종일 마주하고 있었더니 의미가 무궁하였다. 참으로 절경이라 하겠다.’

조선 후기 정시한(鄭時翰)의 <산중일기(山中日記)>는 그가 3년여 동안 전국 고찰을 순례하고 남긴 흔적이다. 당시 사찰의 자연환경과 가람 모습, 여러 스님들 이야기는 사료적 가치가 상당하다.
윗글은 그가 김천 수도사(修道寺)에 하루를 유숙하며 수도산(修道山)의 정경을 예찬한 부분이다. 그의 예찬을 마음속에 그리며 수도사를 찾아 나섰다.

수도산에 절이 처음 들어선 것은 통일신라 말. 도선 국사가 이 산중에 쌍계사, 청암사, 수도사 등 세 절을 차례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쌍계사는 한국전쟁 통에 사라지고 청암사와 수도사만 남았다.

김천에서 대덕을 지나 아흔아홉구비 가랫재를 넘으면 청암사 가는 길이 있다. 수도사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 잠시 들렀다. 청암사 주변은 원래 적송이 많았으나, 건축재로 나가고 지금은 못난 소나무만 절을 지키고 있다. 임상에는 다음 세대 적송들이 전혀 보이지 않아 청암사 적송은 지금 대가 끊어지고 있다.

청암사를 나와 수도사까지는 자동차로 10분 거리. 마을 길가에 우람한 당산나무와 서낭돌탑이 있다. 당산나무는 수령 100년 정도의 전나무인데, 아래 줄기에 오소리굴 같은 구멍이 나 있어서 인상적이다.

사하촌에서 수도사까지는 경사가 있는 숲길이다. 왼쪽으로 계곡이 함께 하지만, 규모도 작고 수량도 넉넉하지 않다. 서식하는 어류도 버들치와 갈겨니에 한정되어 있고, 개체수도 많지 않다. 다만, 용소폭포에서 청암사 구간의 계곡에서는 동사리, 자가사리, 돌고기 등이 관찰된다.

계곡 바닥에서 발견한 굵은줄나비는 길이가 7센티나 되는 검은 날개 중앙에 굵은 흰줄이 가로로 나 있다. 숲이 있는 계곡 주변이나 산간마을의 낮은 산지에서 많이 관찰된다.

그 밖에 별박이세줄나비, 거꾸로여덟팔나비, 외눈이지옥사촌나비, 산호랑나비, 긴꼬리제비나비, 홍점알락나비, 큰줄흰나비, 작은주홍부전나비, 뿔나비, 흰줄표범나비, 굴뚝나비 등이 관찰되었다.

시멘트길만 아니면 산책하며 걸어도 좋을 숲길이 주차장까지 나 있다. 계곡숲은 듬성듬성 노송도 보이긴 하지만, 주로 참나무류를 비롯한 활엽수들이다. 함박꽃나무, 고광나무, 들메나무 고로쇠나무, 비목나무, 노각나무, 노린재나무, 단풍나무, 생강나무, 쪽동백나무, 때죽나무, 미역줄나무, 초피나무 등이다. 이 가운데 고로쇠나 들메나무 등 몇 종의 나무들을 빼고는 계곡에서 멀리 떨어진 산에서도 관찰된다.

함박꽃나무는 ‘산목련’이라고도 부르는 낙엽활엽소교목이다. 습기가 적당하고 비옥한 반음지를 좋아한다. 꽃은 매일 피고 지는데, 모양도 수려하거니와 향기가 좋다. 줄기와 가지는 회색빛이 도는 황갈색이고, 잎은 어긋나게 나 있다. 꽃은 양성(兩性)으로 초여름이 제철이다. 6매의 흰꽃잎 속에 붉은 수술대와 꽃밥이 인상적이다. 사찰 조경수로도 품격이 있다.

주차장 한 켠에 몸집이 큰 해우소가 점잖게 앉아있다. 수도사 해우소는 중층 다락형 구조의 전통해우소이다. 위에는 판벽을 친 용변칸이 있고, 아래는 변조칸이 있다. 용변칸에서는 화장지 대신 왕겨가 비치되어 용변 후 왕겨를 변조에 뿌리도록 되어 있다. 소변은 소변기에서 따로 받아내고 있다. 수분이 증발된 분(糞)은 변조칸에서 오랜 시간을 지나 건비(乾肥)가 되어 농작물의 밥이 된다. 전통해우소의 생태적 가치는 ‘음식→분(糞)→거름→음식’이라는 생명의 순환시스템으로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묶어주는 데 있다.

관음전 석축은 몸집 큰 막돌로 쌓아서 눈맛이 무겁고 거칠다. 그것을 담쟁이, 푼지나무, 줄사철나무 등 덩굴식물로 가볍게 가려놓았다. 푼지나무는 덩굴식물로 바위나 큰 나무에 기어오른다. 회갈색 줄기에는 털이 나 있고, 5미터까지 뻗는다. 이 줄기와 가지에서 지네발 같은 기근(氣根, 공기뿌리)이 나와서 바위를 붙잡고 있다. 꽃은 초여름에 피는데, 색깔은 황록색이다.

대적광전으로 오르는 돌계단 주위로 불두화(佛頭花)가 탐스럽다. 꽃의 모양이 나발불두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해 꽃이 피고, 암수가 없는 무성화(無性花)라는 점에서도 불교 이미지가 강하다. 사찰에서 많이 심지만, 인도 등 아열대에서는 볼 수 없는 온대북부지역의 나무이다.

수도사는 산의 8부에 자리해 있어서 물이 귀한 편이다. 관음전 뒤로 실낱같은 계류가 있는데, 거기에 보를 막아서 물을 저장해두었다. 유사시 방화수(防火水)로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그 계류 옆에 2층 시멘트 슬레이트 요사채가 있는데, 몸집이 너무 커서 수도사의 흉물이 되어버렸다.

수도사가 앉은 고도는 수도산의 8부인 해발 1080미터라고 한다. 대적광전과 약광전 앞마당에 서면 좌청룡과 우백호가 뚜렷하고 안산도 부드럽다. 안산 너머 연꽃처럼 핀 가야산 흰 봉우리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도선 국사가 청암사를 창건한 뒤 이 절터를 발견하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사흘 동안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조금도 허사가 아니다.

대적광전과 약광전에 모셔진 불상은 모두가 석불이다. 전설에 따르면,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상은 산 너머 거창군 가북면 북석리에 있던 것을 모셔왔다고 한다. 수도사 주변은 육산이라 큰 불상을 새길 만한 바위가 없지만, 산 너머 남서사면 쪽에는 질 좋은 화강암들이 많다. 따라서 이 전설은 지질학적으로 상당히 신빙성을 갖추고 있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이 산중에 텃새 동박새가 서식하는 것이 놀랍다. 따뜻한 남쪽 바다 동백숲에서나 볼 수 있는 동박새가 대적광전 앞 단풍나무 주변에서 관찰된 것은 경내 어딘가에 보금자리를 틀고 새끼들을 키우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동박새는 참새만한 크기로, 몸 색깔은 황록색이며, 배는 희고 턱 밑은 노란색이다. 눈 주위에 둥근 띠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꿀을 빨기 편리하게 혀끝에 붓 모양의 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보호색을 띠며 주로 상록 활엽수림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도 잘 띄지 않는다.

선원을 지나 푸른 지붕을 한 토굴 주변에서 개불알꽃 등 몇 종류의 야생화가 수줍게 꽃을 피우고 있다. 개불알꽃은 30센티 가량의 줄기에 초여름이면 붉은 자줏빛 꽃이 줄기 끝에 1개씩 피는데, 입술꽃잎이 주머니 모양을 하고 있어서 ‘복주머니꽃’이라고도 부른다. 주로 높고 깊은 산속에서 피는데, 수도사의 지표종으로 삼을 만한 꽃이다.

수도사 주변은 다른 절에 비해 야생화들이 다양하고, 귀화식물들의 숫자도 상대적으로 적다. 그만큼 생태계가 양호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6월초 수도사 경내외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야생화로는 쥐오줌풀, 광대수염, 기린초, 꿩의다리꽃, 며느리밥풀, 노루오줌, 바위채송화, 산수국, 원추리, 하늘말라리, 애기똥풀, 가시엉겅퀴, 꿀풀, 할미질빵 등이 있다.

수도사에서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은 완만하다. 능선에 올라서면 경사가 느린 숲길이 좌청룡과 우백호로 갈려진다. 이 숲길은 수도사 스님들의 포행길이기도 하다. 곳곳에서 수도산의 임해를 보는 즐거움이 있다. 나무들의 수령은 평균치가 30년 정도, 청년숲이다.

수도산 식생은 가야산국립공원과 유사하다. 가야산과 마찬가지로 상록활엽수가 관찰되지 않아서 우리나라 온대중부형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은 활엽수들이며, 침엽수로는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가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소나무로는 수도산의 마지막 세대인 노송들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식재된 잣나무들이 곳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전나무는 주로 수도사 주변에서 관찰된다.
초여름 꽃을 피우는 목본류로는 함박꽃나무, 층층나무, 고광나무, 고추나무, 국수나무, 노린재나무, 물참대, 쪽동백나무, 때죽나무, 찔레꽃 등이 있다.
글·사진=김재일(사찰생태연구소장) | cafe.daum.net/templeeco
2007-07-06 오후 3: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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