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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실한 자연 뛰어난 풍광 "금강산에도 없다"
108사찰 생태기행 82.내연산 보경사
내연산 비하대 소나무
한국화의 원형은 조선 후기의 진경산수(眞景山水)라고 한다. 그 전까지의 그림은 중국화를 모방한 동양화에 지나지 않았다. 그 중국 산수가 우리 산수(생태적 경관 landscape)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자각한 뒤 새로운 기법으로 나온 것이 바로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진경산수이다.

겸재의 진경산수 가운데 ‘고사의송관란도(高士倚松觀瀾圖)’ ‘삼룡추도(三龍秋圖) 1ㆍ2’ ‘내연산폭포도(內延山瀑布圖)’ 등은 그가 경북 청하현감으로 재직할 때 내연산(內延山)을 오르내리며 그린 산수화이다.

포항 보경사(寶鏡寺)가 바로 그 내연산 산수 속에 자리한 신라고찰이다. 행정구역은 포항시 송라면 중산리이지만, 이 지역 노인분들은 아직도 ‘청하 보경사’라고 일컫는다. 조선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이 지역이 청하현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겸재 정선이 청하현감으로 재직한 것은 2년 남짓, 그동안 보경사와 청하골을 오르내리며 내연산수를 화폭에 담았던 것이다. 그가 그린 내연산 계곡을 ‘청하골’이라 부르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보경사 창건사에는 시기와 주인공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전설이 전해온다. 그러나 중국으로부터 보배로운 거울을 들여와 묻고는 절을 지어 ‘보경사’라 했다는 줄거리만은 다름이 없다. 그 후, 고려조에 들어와 고려시대에 와서는 원진국사(圓眞國師)가 크게 중창을 하였다.

주차장에 내리면 보경사의 사하촌인 덕곡(德谷)마을이다. 절의 덕을 입고 사는 마을이란 뜻으로, 예전에는 모두가 보경사 소유였으나, 지금은 개인소유지로 많이 넘어갔다.

덕곡마을 식당촌 뒤로 청하골 계곡물이 흐른다. 청하골에는 청호반새, 물총새, 노랑할미새, 물까마귀 등 물을 좋아하는 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청호반새 사진=원우 스님

청호반새는 여름철새로 이름 그대로 날개과 등쪽이 푸르다. 부리는 붉고, 머리는 검은모자를 쓴 듯하고, 가슴은 흰색, 배는 황갈색이다. 물총새와 함께 화려한 색조를 자랑한다. 길고 튼튼한 부리로 물고기와 개구리 등을 잡아먹는다. 개체수도 적고, 사람을 기피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주위로 노송숲이 그윽하다. 그 숲속에 회화나무, 말채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밤나무 등 노거수들이 장로(長老)로 서 있다.

원래 이 숲의 좌장은 수령 8백년된 회화나무였다. 원진국사의 보경사 중창시기에 맞추어서 ‘8백년’의 나이로 대접받은 이 좌장나무는 지난 번 매미 태풍 때 쓰러져 열반에 들고 말았다.
보경사 숲

절집의 노거수는 살아있는 역사물이다. 노거수 목재를 과학적으로 분석해보면 그 속에 화재나 풍수해 등등 흔적이 입력되어 있다. 그래서 노거수를 생명문화재라 하는 것이다. 그 좌장나무가 사라짐으로 해서 보경사에서 또 하나의 문화재가 사라진 셈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의 후손 되는 늙은 회화나무 몇 그루가 노송 숲에 남아 있다는 점이다.

회화나무는 높이 20미터 이상 자라는 키 큰 교목이다. 외모가 느티나무와 흡사해서 한자로 같은 ‘괴(槐)’자를 쓰지만, 나무껍질이 세로로 갈라져 있는 것이 좀 다르다. 여름이면 녹색 잔가지 끝에 황백색의 작은 꽃이 핀다. 산소 방출량이 많아서 요즘 가로수나 공원수로도 즐겨 심는다. 콩과식물이라 가을이면 잘록잘록한 콩꼬투리 종자가 난다. 이것을 따서 봄에 심으면 싹이 잘 난다.

일주문 숲을 지나면 위쪽 계곡에서 수로가 내려와 보경사 경내를 지나간다. 이 농수로(農水路)는 사하촌의 수천만평 넓은 들을 먹여 살린다. 경내로 농수로가 지나가는 예는 보경사가 유일하다.
대개의 산중절은 절 앞에 물길이 흘러서 사람들은 그 물길을 건너는 것으로 마음을 씻고 경내로 들어선다. 그런데 보경사는 좋은 계곡을 끼고 있으면서도 절로 건너오는 그런 명당수가 없다. 그래서 이 농수로가 보경사의 명당수 역할까지 해준다.

보경사의 가람배치는 천왕문-오층석탑-적광전-대웅전을 중심축으로 하여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오충석탑을 중심으로 한 천왕문-적광전-설법전-법종각 영역, 대웅전을 앞에 둔 팔상전-산신각-원진각-영산전-명부전-원진국사탑비 영역, 성보박물관과 승방 영역이 그것이다.

적광전은 금당탑비의 내용을 보면 1677년에 중창한 것으로 되어 있다. 기단이 외벌대라서 격이 낮아 보이지만, 대웅전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이 절의 금당(金堂)이었다. 금당의 격에 맞게 기단부 석재가 모두 옥석(玉石)이다. 옥석은 내연산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적광전 신방목 양쪽에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방울이 달린 목걸이, 불거진 눈, 비대한 몸체 등은 천상 해태상이다. 적광전 옆 설법전은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명부전 앞에 중창주인 원진국사비가 보호각 안에 있다. 보호각 옆에 큼지막한 피나무 한 그루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명부전 뒤로 일각문이 있어서 동암(청련암)으로 이어진다.

보경사 탱자나무
경내의 나무로는 종무소 옆에 있는 수령 4백년의 소나무를 비롯해 피나무, 감나무, 오동나무 등이 있으나, 요사채 마당의 두 그루 늙은 탱자나무가 가장 주목 받는다. 게시판 안내로는 수령이 4백년이나 된다고 한다. 노쇠한 데다 풍수해까지 입어서 두 나무 모두 큰 줄기는 잘라지고 없다.

이 나무의 후손들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바깥 담장께로 가면 건장한 탱자나무들이 튼실하게 자라서 생울을 조성하고 있다. 가을에 잘 익은 탱자에서 씨를 거두어 습기 있는 모래와 섞어 두었다가 봄에 파종하면 싹이 잘 난다.

내연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이다. 일주문을 지나 청하골을 따라 오르는 계곡길과 일주문 바로 앞에서 우측으로 난 능선길이 그것이다. 능선길은 일주문 앞에서 보경사 담장을 끼고 시작된다. 자동차 한대가 지나다닐만한 포장길 한 줄기가 산으로 올라가 있다.
보경염낭거미

보경사는 관광사찰치고 주변 자연생태가 튼실하다. 보경염낭거미 같은 희귀종 거미도 보경사의 생태가족이다. 세계적으로 표본이 3개체뿐이라는 보경염낭거미는 우리나라에서는 1977년 보경사 주변에서 처음 채집하여 1979년에 ‘보경’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등록했다.

소나무가 우점 하는 동암-능선-문수산-정상 지역은 송이가 많이 나는 곳이라 송이철이 되면 주민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킨다. 이 지역의 소나무 수관은 안강형에 가깝다. 일부 능선에서는 신갈나무들이 이 소나무들을 위협하고 있다. 능선을 타고 정상으로 오르다보면 등뒤로 멀리 동해바다가 펼쳐진다. 보경사 중창주인 원진국사 부도로 오르는 계단길도 이 길에 이어져 있다.
서운암 다리

다시 보경사 산문으로 돌아오면 그윽한 숲길이 절 앞을 지나 청하골 열두폭포로 이어진다. 큰절에서 서운암까지는 불과 300미터 거리이다. 서운암 앞 계곡에 시멘트로 만든 아름다운 다리가 놓여있다. 비록 시멘트로 만들었지만, 주위의 지연환경과 잘 어울린다. 교각도 물속의 튼튼한 암반을 딛고 있어서 겉보기보다는 아주 튼튼하다. 매미 태풍 때도 끄떡없이 견디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내연산의 산신은 여신(女神)으로 전해온다. 여신 이름이 ‘할무당’인데, ‘할머니’의 지방 사투리인 ‘할무이’에서 비롯된 듯하다. 박씨 성을 가진 보경사의 큰보살이 죽어서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상생폭포 가는 등산로 옆에 ‘고모당신지위(姑母堂神之位)’라고 쓴 돌위패가 할무당의 것이다.

청하골의 절벽들은 숨가쁘지만, 산길의 경사는 그리 가파르지 않다. 보경사와 등산로 주변에서 관찰된 초본으로는 사초과의 몇 종류를 비롯하여 여로, 주름조개풀, 고마리, 바디나물, 가는장구채, 산괴불주머니, 큰개별꽃, 산박하, 투구꽃, 고깔제비꽃, 일월비비추, 족도리풀, 노루발풀, 금낭화, 더덕 등이 있었다. 지칭개, 개쑥부쟁이, 질경이, 민들레 등은 등산객들이 오르내리면서 퍼뜨린 초본들이다. 꽃이 핀 것으로는 노루오줌, 까치수염, 꿀풀, 기린초 등이 기록되었다. 절벽에는 바위채송화를 비롯해 부처손, 구실사리, 십자고사리 등 양치식물들이 붙어 있다.

상생폭포는 내연산 열두폭포로 가는 첫 폭포이다. 두 줄기 쌍폭으로 이루어진 이 폭포를 정시한은 <산중일기>에서 ‘사자쌍폭(獅子雙瀑)’이라 명명했다. 환경시대에는 자연과 인간이 상생(相生)한다는 의미로 ‘상생폭포’라고 하는 것이 좋을 성 싶다.

흰띠왕가지나방 한 마리가 움푹한 바위틈에 날개를 밀착하고는 낮잠을 즐기고 있다. 여름철 산간지역에 나타나는 중형 크기의 나방이다. 몸과 날개는 모두 암갈색 바탕에 얼룩무늬가 있다. 더듬이는 암수가 모두가 빗살 모양을 하고 있다.

내연산에는 다양한 나방들이 서식하고 있다. 보경사 경내에서는 점무늬재주나방, 목도리불나방, 쌍복판눈수염나방, 왕눈큰애기바방 등 여러 종류의 나방을 만났다.

겸재의 내연산삼용추
겸재의 ‘내연삼용추’는 관음폭포-연산폭포 등 연이은 세 폭포를 그린 것인데, 이를 두고 정시한은 <산중일기>에서 “금강산에도 없는 것”이라 예찬했다. 그러나 내원암과 계조암 등 그림 속의 암자들은 언제 폐사되었는지 흔적도 없다.

내연산 열두폭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관음폭포에서 고개를 올려다 쳐다보면 비하대(飛下臺)가 아스라이 솟아있다. 비하대는 정시한이 <산중일기>에서 중허대(中虛臺)라고 이름 불렀던 절벽으로, 낭떠러지에 늙은 소나무 두 그루가 비스듬히 서 있다. 바로 이 소나무가 겸재의 ‘고사의송관란도’에 나오는 바로 노송이다.

내연산은 낙동정맥의 중남부에 위치해 있어서, 소나무들을 보면 위쪽의 금강송 닮은 것도 있고, 남쪽의 안강송을 닮은 것도 있다. 겸재송은 적당한 키에 적당히 굽어있어서 양쪽을 모두 닮았다.

내연산 일대는 식물구계학적으로 볼 때 온대 남부와 중부의 경계선상에 있다. 태백산맥을 따라 내려온 북방계 목본과 따뜻한 해류의 영향으로 올라온 남방계 목본이 함께 공존한다. 잣나무, 정향나무 등은 북방에서 내려온 나무이며, 비목이나 감태나무 등은 남쪽에서 올라온 나무들이다.

숲길 주변은 소나무와 활엽수가 반분(半分)하고 있다. 참나무로는 굴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등이 우점하고 있다. 물푸레나무, 층층나무, 느티나무, 엄나무, 때죽나무, 쪽동백, 붉나무, 생강나무, 개옻나무, 헛개나무, 당단풍, 서어나무, 까치박달, 물박달, 고로쇠나무, 쇠물푸레, 팥배나무, 고광나무, 미역줄나무, 개벚나무, 굴피나무 등등이 울울창창한 터널을 만들고 있다. 그 중에 망개나무에 눈이 가는 것은 속리산과 주왕산 등 몇 곳에서만 관찰되는 천연기념물이기 때문이다.

연산폭포로 가는 돌길 옆으로 용가시나무가 하얀꽃을 피우고 있다. 찔레를 닮은 용가시나무는 바닷가에 자라는 돌가시나무와도 비슷하다. 바위나 절벽 또는 산골집 돌담에 기대어 옆으로 덩굴이 자란다. 잎은 찔레보다 작지만, 가시는 찔레보다 억세고 예리하다. 하얀 꽃은 향기가 강하다.
내연산 연산폭포

연산폭포는 청하골 열두폭포 가운데 30미터로 가장 높다. 구름다리는 몇 해 전 매미 태풍 때 끊어졌던 것을 다시 이었다. 연산폭포가 내뿜는 물보라가 얼굴에 와닿는다. 깎아지른 학소대 석벽엔 부처손이 곳곳에 군락을 이루며 붙어있다.

연산폭포 위로 은폭, 복호폭, 시명폭 등이 이어져 있으나, 길은 연산폭포에서 끊어져 있다. 위로 올라가자면 다시 관음폭포로 내려와 밧줄을 타고 비하대로 올라서야 한다. 다시 계곡을 따라 화전민들이 살던 시명리를 거쳐 향로봉으로 이어지지만, 이미 사역(寺域)을 멀리 벗어난 곳이다.
글 사진=김재일(사찰생태연구소장) |
2007-07-25 오후 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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