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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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에 떠도는 외로운 고혼
조선왕릉에서 불교를 읽다12-6대 단종 장릉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단종 1441년~1457년, 17세 졸
재위 3년 2개월 1452.5(12세)~1455.5(14세)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더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열일곱 살 소년을 철벽 요새 청령포에 유폐시키고 돌아오는 금부도사 왕방연의 시조다.

세월은 약이다. 역사는 멀리서 바라보는 드라마다. 당대 복잡한 현실은 접어두고 후대인들의 측은지심 반상 위에 오롯이 놓인 존재가 단종이다. 권력의 묘약이 무엇인지도 모를 나이에 왕위에 올라 항거할 근육도 없는 어린 나이에 이승을 하직했다. 민주주의란 개념이 씨앗조차 없던 시절, 세습 왕조의 희생물이다. 철부지로 맘껏 뛰놀 나이에 무거운 용포를 입고 딱딱한 용상에 앉아 있다가, 납치극의 주인공처럼 밤낮으로 와들와들 떨다가 죽었다.

“숙부! 수양 숙부! 날 살려주세요. 죽이지만 마세요.”
입 안 가득 모래알을 넣은 듯 절규마저 말라버렸다.
“전하! 신이 신명을 다해 전하를 지켜드리겠습니다.”
묵직하고 담대한 음성이 오히려 서늘하게 느껴진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은 이를 두고 이름인가.

단종의 국장 행렬
피지도 못하고 떨어진 동백꽃 송이, 험악한 권력 쟁투의 바다에 던져진 조각배, 그가 단종이다. 17년 짧은 생애를 요약해보자.
* 1441년(세종 23년) 아버지 향(후에 문종)과 어머니 권씨(후에 현덕왕후)의 1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남. 25세인 어머니는 난산으로 홍위(단종의 이름)를 낳고 3일 만에 죽음. 위로 동갑내기 친누이 경혜공주가 있고 아래로 이복누이 경숙공주가 있음.
* 3일 만에 어머니를 여윈 홍위는 할머니뻘인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에 의해 양육된다. 혜빈 양씨는 후덕한 여자였다. 세손이 될 홍위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자신의 둘째 아들(수춘군)을 품에서 떼어 유모에게 맡기기까지 했다.
* 8세. 1448년(세종 30년) 세손에 책봉됨. 할아버지 세종은 세손을 무척 아낌.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신숙주 등 집현전 소장학자들을 은밀히 불러 세손의 앞날을 부탁함. 세종 자신도 이미 병세가 악화된 상태이고 세자 향 역시 병약하여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예측하고 있었음. 죽음을 앞둔 노(老) 성군(聖君)은 어린 세손이 혈기왕성한 자신의 아들들 틈바구니에서 살아갈 일을 걱정함.
* 10세. 1450년 세종 승하. 문종 즉위. 홍위는 세손에서 세자로 책봉됨.
* 12세. 1452년 병석에만 있던 아버지 문종이 즉위 2년 3개월 만에 어린 세자를 부탁한다는 허약한 고명(임금이 신하에게 유언으로 뒷일을 부탁하는 일)을 남기고 승하.
* 12세. 1452년 부왕의 승하와 동시에 단종 즉위. 20세 미만 미성년인 왕이 즉위하면 궁중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후비가 수렴청정하는 것이 관례이나 당시 궁중 사정이 여의치 않음. 대왕대비는 물론 대비도 없고 심지어 왕비도 없는 상태임. 통치의 무중력 상태, 카오스 상태에 빠짐. 단종의 모후는 죽고 없고 문종의 후궁으로 귀인 홍씨, 사칙 양씨가 있었으나 세력이 없었음. 세종의 후궁 중에 단종을 키운 혜빈 양씨가 있었으나 늦게 입궁한 데다 후궁인 탓에 정치적 발언권이 없었음.
* 13세. 1453년(단종1년)10월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킴. 안평대군을 조종하여 종사를 위태롭게 한다는 명목으로 김종서, 황보인 등 대신들을 피살함. 안평대군 사사.
* 14세. 1454년 1월 송현수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임.
* 15세. 1455년 6월 수양대군이 금성대군 이하 여러 종친, 궁인, 신하들을 죄인으로 몰아 유배시키자 위험을 느낀 단종은 왕위를 내놓고 상왕으로 물러나 수강궁으로 거처를 옮김. 일각 여삼추 같은 3년 2개월의 재위에 막을 내림. 아직 비극이 끝나지 않음.
* 16세. 1456년 6월 상왕 복위사건 일어남. 성삼문, 박팽년 등 집현전 학사 출신과 성 승, 유응부 등 무신들 사형 당함.
* 17세.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됨.
* 17세. 1457년 9월 유배되었던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어 단종은 노산군에서 서인은 강봉됨.
* 17세. 1457년 10월 사사됨. 동강에 버려진 시신을 엄홍도가 거두어 동을지산 기슭에 암장하다.

반 천년이 지난 지금도 지켜보는 이의 손에 땀이 나고 숨이 막힌다. 권력에 연루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목숨과 치욕을 담보해야 쟁취할 수 있다. 세습제의 비극을 원 없이 보여준 인물이 단종이다. 이후 전개된 상황은 이렇다.
단종 죽안마를 태워 승천을 기원하다

암장된 60년 후 무덤을 겨우 찾았다. 그로부터 15년 후 그곳에 간단한 석물을 세웠다. 180년이 지난 1698년(숙종24년) 비로소 단종이란 묘호와 장릉이란 능호를 받고서 종묘에 들어갈 수 있었다. 2007년 4월 27일, 영월 일대와 장릉에는 이색적인 혹은 장엄한 행사가 열렸다. 단종의 국장(國葬)이 있었다. 갸륵한 민초 엄홍도가, 동강 바닥에 팽겨쳐진 시신을 목숨 걸고 암매장한 지 550년 만에 국장이자 천도재였다. 인산인해를 이룬 인파는 역사의 숙연함을 느끼기도 하고 한바탕 이벤트로 구경거리로 희희덕거리기도 했다.

청령포는 천혜의 요새다. 나룻배가 드나들 수 있는 나룻터를 제외하면 3면이 깎아지른 절벽이다. 입구만 막으면 출입이 불가능하다. 행글라이더로 탈출을 감행하면 가능할까. 기막힌 유배지다. 세조의 무서운 위력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쫓겨난 어린 왕이 걸터앉아 한숨으로 짧은 시간을 보냈다는 굽은 소나무에는 이미 그의 온기가 없다.

어린 왕의 육신을 찢어오는 만큼 권력을 차지한다고 믿었던 이들도 이제 모두 이름만 남긴 채 소멸했다. 교훈을 새기는 것은 남은 자, 역사의 거울을 보는 자의 몫이다. 사육신, 생육신, 한명회, 권람 등 계유정난의 공신들, 어린 단종의 짧은 생애에는 빛과 어둠으로 치장한 무수한 이름들이 덧칠되어 있다.

***장릉은***
사적 196호.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산 133-1번지 소재. 면적 1,057,304평. 서울에서 가장 먼 왕릉이 장릉이다. 도성에서 100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규정이 적용될 수 없는 단종의 운명 때문이다. 부인 송씨가 묻힌 사릉과는 300리 밖이다.
강지연 기자 | jygang@buddhapia.com
2007-07-01 오전 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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