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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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악산 현등사의 맑은 신록
문화는 자연조건의 소산이다. 석탑, 석등, 부도 등 우리의 석조문화가 뛰어난 것도 지질 환경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의 지질은 화강암과 화강암질 편마암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특히 풍부한 화강암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불교문화재를 만들어 놓았다.

우리 화강암은 형성된 시기에 따라 대보화강암과 불국사화강암 등 크게 둘로 나눈다. 설악산에서 북한산에 이르는 한북정맥의 암산들은 대보화강암대에 속한다. 현등사가 자리한 가평 운악산(935미터)도 그 산줄기에 자리하고 있다.

현등사의 창건은 <봉선사본말사지(奉先寺本末寺誌)> 등에 신라 법흥왕 때 인도의 마라하미 스님을 맞이하여 세운 절로 소개되어 있지만, 오히려 신라 말 도선국사가 개성 송악산을 비보하기 위해 지었다는 창건설이 더 비중 있게 다가온다.

현등사 가는 길은 청평을 지나 북한강의 지류인 100리 조종천과 함께 한다. 조종천 유역은 환경부와 환경단체들이 ‘이곳만은 살리자’며 1993년도에 자연생태계 보전지구로 지정해 놓은 곳이다.

현등사 입구인 조종천에는 쉬리, 배가사리, 참종개, 긴몰개, 돌마자, 미유기, 퉁가리 등은 우리 고유어종들이 살고 있다. 여름이 시작되면 행락객들에 의해 이들의 수난이 시작된다. 생태계 보전과 방생 차원에서 지역 시민단체와 불교계가 나서서 이들의 남획을 막을 수는 없을까?

영화로 유명세를 탄 쉬리는 몸의 길이가 10센티 남짓 작지만, 멋쟁이 물고기이다. 날씬한 몸통에 황금색 가로띠 위아래로 갖가지 색깔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쉬리는 자갈이 깔린 바닥을 좋아해서 현등사 입구인 석거리 운악교 주변에서도 관찰된다.
조종천은 물고기들만의 고향이 아니다. 철쭉꽃 필 무렵이면 물을 좋아하는 도요새류, 물떼새류, 할미새류가 돌아와서 모래밭과 자갈밭에다 알을 낳는다. 깝작도요 부부가 현등사로 건너가는 운악교 다리 아래 모래밭 갯버들 속에다 알을 낳아놓고 연방 들락거린다.

운악산은 가평군과 포천군에 속해 있다. 면적으로는 포천군 쪽이 넓지만, 명찰 현등사는 가평군 하면 하판리에 속해 있다. 이번 탐방은 조종천-운악교-현등사-절고개 구간에서 이루어졌다.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에 이르면 주변에 잣나무들이 많다. 지금 있는 잣나무들은 모두 식재된 것이지만, 원래 가평 운악산 지역에는 잣나무가 많았다고 전한다.

일주문에서 현등사까지는 흙길과 돌길이 반반인 1.5킬로미터 숲길이다. 제비꽃 종류를 비롯하여 각시붓꽃, 세잎양지꽃, 앵초, 산괴불주머니, 큰앵초. 노랑제비꽃, 민들레, 개별꽃, 알록제비꽃, 현호색, 꽃다지, 양지꽃, 황새냉이, 애기나리 등이 나보란 듯이 숲 가장자리와 길가에 피어 있다.

전국에 흔한 각시붓꽃은 4월경 자주색 꽃이 피는 키 작은 붓꽃이다. 가끔 5월경 피는 귀한 솔붓꽃과 헷갈리기도 한다. 각시붓꽃은 꽃잎에 흰색의 무늬가 많고, 솔붓꽃은 적다. 흔히 ‘뱀딸기’라고 부르는 세잎양지꽃은 비교적 이른 봄에 햇볕이 좋은 산자락에서 볼 수 있다.

운악산의 조류는 매우 다양하다. 여름철새로는 현등사 경내에 둥지를 튼 흰배지빠귀를 비롯하여 호랑지빠귀, 큰유리새, 파랑새, 후투티, 찌르레기, 꾀꼬리, 검은등뻐꾸기, 뻐꾸기 등이 있다.
지빠귀 종류 가운데 호랑지빠귀, 흰배지빠귀, 되지빠귀 등이 여름철새이다. 지빠귀들은 아름답고 독특한 울음소리로 산을 더욱 적막케 해준다. 몸집이 큰 호랑지빠귀는 가슴에 초생달 모양의 얼룩무늬가 있다. 산 속의 외딴 곳을 좋아하는 토굴 납자(衲子) 같은 새이다.

화강암은 대체적으로 다른 암석에 비해 가볍고 풍화작용에 약하다. 풍화작용으로 푸석푸석해진 화강암을 ‘썩은 바위’ 또는 ‘석비례’라고 한다. 지질용어로는 ‘새프롤라이트(saprolite)’라고 한다. 이 새프롤라이트가 토양화한 것이 마사토이다. 운악산은 해발 300미터 정도에서 마사토가 나타난다.

마사토는 점성이 없어서 집중호우 등으로 산사태가 쉽게 일어난다. 아니나 다를까 계곡 쪽으로 산사태가 났다. 게다가 훼손한 곳을 제대로 복원하지 않고 그냥 방치해두고 있어서 산사태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눈을 올려다보면 운악산 능선들이 멀리 용의 등 갈기처럼 달리고 있다. 백록(白鹿)처럼 눈부신 운악산 화강암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중창주인 함허 선사가 산중에서 길을 잃었을 때 폐사된 현등사 옛 절터로 안내해 주었다는 흰사슴[白鹿] 전설이 떠오른다.
흰 사슴은 전설이나 지명에 단골로 등장하는 상서로운 동물이다. 그런데 흰 사슴은 상상의 동물이 아니라 실제 가끔 돌연변이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흰 점박이 꽃사슴에게서 10만분의 1 정도의 확률로 태어난다고 한다.

현등사까지는 계곡이 함께한다. 산길 왼쪽으로 정상인 만경대와 절 고개 골짜기에서 발원한 계곡이 청아한 물소리를 데리고 산을 내려오고 있다. 기암과 암벽들이 백년폭포와 무우폭포를 비롯해 크고 작은 폭포와 많은 소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버들치 가족들이 계곡을 따라 현등사 바로 아래까지 올라가 살고 있다.

이번 탐방에서 관찰된 나비로는 유리창나비, 뿔나비, 청띠신선나비, 호랑나비, 애호랑나비, 멧팔랑나비, 흰나비 등이 있다. 유리창나비는 앞 뒷날개 모두 주황갈색 바탕에 큰 검정무늬가 있다. 양쪽 앞날개 끝에 크고 작은 하얀 점 2개가 유리창이나 비닐처럼 투명하기 때문에 ‘유리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계곡 주변에 서식하며 나무의 즙이나 동물들의 배설물에 앉아 영양분을 찍어먹는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운악산엔 보호야생동물인 까치살모사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 파충류로는 아무르장지뱀과 도마뱀 등이 서식하고 있다.

운악산의 식생은 주능선을 중심으로 소나무군락, 신갈나무군락, 상수리나무군락 등이 보존된 자연식생을 보여주고 있다. 현등사 아래 구간에서는 대상식생(substitute vegetation)으로서 리기다소나무식재림, 일본잎갈나무식재림, 잣나무식재림, 밤나무식재림, 아까시나무식재림 등이 보인다.

일주문을 지나 현등사에 이르는 구간에서는 참나무 종류와 귀룽나무, 물푸레나무, 생강나무, 쪽동백, 때죽나무, 당단풍, 개옻나무, 당단풍, 쇠물푸레, 마가목, 고로쇠, 왕버들 등이 있었다.

계곡 주변으로 몸집 좋은 귀룽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귀룽나무는 줄기가 용처럼 휘어서 ‘구룡목(九龍木)’이라고도 한다. 깊은 산에 자라는 낙엽활엽수 교목으로, 나무 높이 15미터에 이른다. 나무껍질은 흑갈색이고 세로로 갈라진다. 초여름이면 새로 돋은 가지 끝에서 하얀 꽃이 핀다.

산의 경사지에 앉은 산중사찰은 어딜 가나 높고 낮은 석축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등사 석축만큼 고풍스럽고 소담스런 석축도 흔하지 않다. 석축은 눈맛 좋은 수문이 자리한 하단, 장방형 댓돌로 여섯 켜를 쌓은 중단, 그리고 다시 층을 두고 두 켜를 올린 상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등사 문화유산으로는 진신사리가 나온 3층석탑과 풍수비보를 목적으로 쌓았다는 지진탑이 우선 손꼽힌다. 재질은 이 지역에서 나는 화강암이다. 운악산의 화강암은 연한 복숭아 색깔을 띤다.

극락전은 현등사 전각 가운데 가장 고색창연하다. 특히 제대로 다듬지 않은 울퉁불퉁한 자연목 기둥이 눈에 정겹게 들어온다. 이런 자연목 기둥이 우리 절집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근래의 불사들은 사람이 지은 집이 아니라 기계가 지은 집들이다.

보광전 기둥에 큰 목탁 하나가 빛이 바랜 채 걸려있는데, 언제부턴가 해마다 곤줄박이가 와서 목탁구멍 속에다 둥지를 튼다고 한다. 올 봄에도 언론의 렌즈에 담길 것이다.

극락전 뒤로 노송들이 눈맛 좋게 서 있다. 노송 너머 멀리 운악의 화강암 영봉들이 마치 일월오악병(日月五嶽屛)처럼 자리하고 있다. 경내에 다양한 조경수들을 심었지만, 인공조경은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자연이 빚은 조경에 따라올 수 없다.

경내에 심은 조경수로는 지장전 담장 바깥에 심은 네그루 일본목련이 그나마 눈길을 끈다. 현등사의 일본목련은 우리나라 사찰에 심어진 일본목련 가운데 최고(最高)의 몸집과 수령으로 짐작된다.
현등사 앞으로 절고개로 오르는 산길이 나 있다. 현등사 중창주인 함허(涵虛) 선사 부도와 석등이 그 산길 초입에 있다. 함허 선사가 지었다는 선시 한 수를 읊으며 운악산에 저무는 저녁시간을 마무리한다.

靜廳溪流嚮幽谷 깊은 골에 울리는 저 개울 소리
回看明月掛西峰 뒤돌아보니 달은 서쪽봉에 걸렸네
時中無限好消息 이때의 무한한 이 소식이여
却恨傍無可與通 더불어 이야기할 사람 곁에 없구나.
사찰생태연구소 김재일 | temple-e@hanmail.net
2007-07-03 오후 4: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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