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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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어 올라오면 십리벚꽃 꽃망울이 '톡'
지리산 쌍계사의 봄

지리산은 해발 1915미터로 남한에서 가장 높다. 하지만, ‘높은 산’이라기 보다는 ‘큰 산’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경남과 전라남북 3개도에 걸쳐있는 주능선은 무려 45킬로미터, 백리가 넘는다. 노고단에서 정상인 천왕봉에 이르는 주능선 구간에 1500미터급 봉우리만도 10여 개나 솟아 있다. 그 봉우리 사이에서 발원한 골짜기들이 낙동강, 섬진강, 영산강 등의 유수한 강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섬진강의 한 지류인 화개천은 지리산의 아고산대 주능선이 만드는 남사면의 여러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반백리를 흘러 섬진강에 합류된다. 화개천은 일찍이 ‘지리산 12동천’ 가운데 으뜸으로 손꼽혀온 곳으로, 신라고찰 쌍계사가 그 중류에 자리하고 있다.

쌍계사가 화개천이 내려다보이는 삼신봉 자락에 터를 잡은 것은 신라 성덕왕 때인 723년이다. 의상대사의 제자인 삼법(三法)대사가 옥천사(玉泉寺)라는 이름으로 초창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 절이 제대로 면모를 갖춘 것은 신라말 문성왕 때 진감선사 시절이다.

지리산의 봄은 이 화개골에서 시작한다. 해마다 청명을 전후해 화개에서 쌍계사까지 십리벚꽃이 숨 넘어가게 핀다. 이곳에 왕벚꽃을 처음 심은 것은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대 초, 더러는 늙거나 병들어 죽고, 해마다 보식을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시커먼 등걸엔 저마다 세월의 주름이 깊이 패였지만, 백옥같은 꽃다발을 가지마다 내걸었다.

화개천에 봄물이 내리면 황어가 춘정을 풀기 위해 바다로부터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와 화개에 이른다. 벚꽃을 피우는 것은 봄바람이 아니다. 황어가 올라와야 비로소 십리벚꽃이 꽃망울을 연다.

황어는 바다에서 살 때는 황백색을 띄지만, 산란을 위해 강으로 올라오면 붉은 혼인색을 띤다. 그 색깔이 마치 스님들의 가사 색깔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옛 글에서는 ''가사어(袈裟魚)''라고 했다. 황어는 일찍이 보릿고개가 힘겨웠던 이곳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준 은혜로운 고기였다.

지난 2003년도에 방류한 참게들도 이 화개천의 식솔이다. 참게는 게 종류 가운데는 유일한 회귀성 게로 알려져 있다. 십리벚꽃이 필 즈음이면 왕거미만큼 자란 치게가 바닷물이 드나드는 하동포구에서 섬진강으로 돌아온다. 그러다가 서리가 내릴 즈음이면 하구로 내려간다.


벚꽃그늘을 밟고 쌍계사로 달리다보면 좌우 산기슭에 차밭이 다락논처럼 자리하고 있다. 차밭은 기름진 문전옥답에도 있고, 개간한 비탈밭에도 이국적 정취를 자아내며 흩어져 있다. 더러는 저들끼리 야생으로 무리를 이루며 자란 곳도 있다.

화개의 차는 초의선사도 <동다송>에서 으뜸으로 쳤던 명차이다. 이곳 사람들은 벚꽃이 지고 나면 곧바로 차잎을 따기 시작한다. 특히 곡우 이전에 채취한 ''우전차''(雨前茶)를 으뜸으로 친다.

화개천에 걸쳐진 다리를 건너면 쌍계석문이다. 쌍계석문을 지나면 차나무 시배지가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흥덕왕 때인 828년에 대렴(大簾)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에 처음 심었다는 내용이 전한다.

차 시배지 주변의 대나무숲은 되새의 월동지로 가끔 언론에 오르내린다. 수천 마리의 되새들이 일정한 주기 없이 몇 년에 한번씩 나타난다. 되새는 집단으로 모여서 잠을 자는 습성이 있어서 해질 무렵이면 각기 흩어졌던 수천 마리의 되새들이 다시 화개골 대나무 숲으로 모여든다. 되새는 참새만한 크기로 암갈색 무늬도 참새와 비슷하다.

키 큰 활엽수와 소나무가 혼재된 숲길 끝에 일주문이 서 있다. 쌍계사는 이름 그대로 크고 작은 2개의 골짜기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골짜기를 둘이나 거느리고 있지만, 형국상 큰 절터로는 모자람이 있다.

숲길 가장자리와 경내 양지 바른 곳에 금창초, 현호색, 양지꽃, 광대나물, 개불알풀, 개별꽃, 마위꽃, 애기똥풀, 냉이꽃, 봄맞이꽃, 제비꽃 등등 갖가지 초본들이 서둘러 꽃을 피우고 있다. 이들은 신록이 우거져 숲 그늘이 드리워지기 전에 얼른 꽃을 피워 종자를 맺어야 하기 때문에 쌀쌀한 날씨에도 서둘러 꽃을 피운다.

금창초는 들판이나 산기슭, 그리고 마을 길가나 돌담 가장자리 등 전국 어디에서나 잘 자라기 때문에 흔히 잡초로 여기는 여러해살이 풀꽃이다. 풀 전체에 곱슬곱슬한 털이 많이 돋아나 있고, 줄기는 곧게 서지 않고 땅에 기듯이 뻗는다. 봄에 푸른색이 감도는 자주색 꽃을 피운다.

팔영루는 중국으로부터 불교음악을 배워온 진감선사가 귀국 후 우리 정서에 맞는 범패(梵唄)를 만들고 후학을 가르친 곳으로 전해진다. 범패를 ‘어산(魚山)’이라고 한 것은 진감선사가 섬진강에 뛰노는 물고기들을 보고 팔음률로써 작곡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국보 제47호인 진감선사대공탑비는 화강암으로 된 귀부와 이수, 그리고 점판암으로 된 비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점판암은 변성암으로 분류되지만, 초기에 형성될 때는 퇴적작용으로 만들어진다. 점판암은 입자가 미세하여 섬세한 글짜를 새기기에 적합하여 통일신라 하대부터 석비의 비신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첨성각 담장은 눈맛이 좋다. 쓸모 없는 폐기와와 황토를 재료로 하여 투박하고 다양한 기하학적 무늬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담장에 마삭줄의 한 종류인 백화등이 강건한 생명력을 과시하며 달라붙어 있다. 백화등은 우리나라 남부지방에만 분포하는 상록덩굴식물이다.

쌍계사의 가람 영역은 크게 둘로 나누어져 있다. 일주문에서 대웅전에 이르는 영역과 작은 계류 건너에 남향한 금당 영역이 그것이다. 금당 영역이 쌍계사의 전신인 옥천사가 처음 자리했던 옛터라고 한다.


영모전 앞에 2개의 샘이 있는데, 이름이 옥천이다. 쌍계사의 전신인 옥천사라는 절 이름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오른쪽 샘은 수온이 찬 양수, 왼쪽 샘은 수온이 덜 찬 음수이다.

쌍계사 경내는 여러 종류의 동백과 겹벚꽃을 비롯하여 명자꽃, 불두화, 살구나무, 앵두나무, 치자나무, 배롱나무, 삼지닥나무, 별목련 등 꽃이 아름다운 나무로 조경되어 있다.

금당 계류를 건너 방장실 주변에 있는 삼지닥나무는 중국 원산으로, 사람 키 높이로 자라는 관목이다. 처음에는 종이 원료로 들여왔으나, 그 후 관상용으로 많이 심어졌다. 가지가 셋으로 갈라지는데, 봄이면 그 끝에 잎보다 노란 꽃이 핀다.


방장실 뒷켠에 있는 별목련 역시 중국 원산으로, 봄이면 작은 가지 끝에 흰색 꽃이 잎보다 먼저 핀다. 일반 목련꽃은 6~9개의 꽃잎으로 이루어 있는데 비해 별목련은 꽃잎이 좀 작은 대신 15개 안팎의 꽃잎으로 이루어져 있다.

쌍계사에는 여러 종류의 동백들이 심어져 있다. 우리 동백은 홑동백인데 비해 일본에서 들여온 동백은 겹동백이다. 겹동백은 꽃잎도 여러 겹이고 색상도 여러 종류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꽃무릇을 경내 곳곳에 잔디 덮듯이 심은 것이다. 이것 또한 생태적인 폭력이다.

벚꽃과 진달래가 필 무렵이면 곤충들도 서서히 날개짓을 하며 나타난다. 뿔나비, 청띠신선나비, 네발나비 등은 성충으로 겨울을 난 것들이며, 애호랑나비와 멧팔랑나비 등은 겨울에 번데기로 있다가 봄에 일찍 우화한 나비들이다.

쌍계사 주변 숲은 활엽수가 많은 탓으로 새들의 도솔천이 되었다. 인파가 몰려드는 관광철에도 이력이 났는지, 새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나타난다.사람들의 발걸음이 가장 잦은 대웅전 앞에는 직박구리가 둥지를 틀어놓고 연상 들락거리고 있다. 개체수로는 박새, 쇠박새, 곤줄박이, 산솔새, 동고비, 직박구리, 어치, 붉은머리오목눈이 등이 많다.

지리산은 생태적으로도 큰 산이다. 온대에서 한대에 이르기까지 1200여종의 식물들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지리산 식물대는 수직분포상 해발 1300미터까지는 온대림식물, 그 이상은 한대림식물로 나누어진다.

들머리인 쌍계석문을 지나 쌍계사를 거쳐 국사암에 이르는 구간의 표고는 500미터 이하이다. 이 구간에는 우리나라 기본 수종인 소나무와 온대남부활엽수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의 우점종인 참나무류로는 졸참나무, 갈졸참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등이 있다. 온대남부수종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느릅나무과 나무로는 팽나무, 검팽나무, 느티나무, 느릅나무 등이 있다. 그 밖에 개서어나무, 서어나무, 굴피나무, 다릅나무, 덜꿩나무, 나도밤나무, 합다리나무, 사람주나무, 비목나무, 노각나무 등이 모두 온대남부수종이다.

국사암 일주문 앞에 진감선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에서 싹이 나 자랐다는 느릅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다. 가지가 사방 네 갈래로 뻗은 거목으로, 일명 사천왕수(四天王樹)라고도 불린다. 느티나무와 비슷한 외모를 지녔으나, 나무 껍질이 세로로 길게 갈라지는 특징이 있다.

같은 느릅나무과 나무인 검팽나무는 전국에 걸쳐 산기슭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낙엽활엽수이다. 팽나무와 비슷하나 열매가 검고, 잎끝이 꼬리처럼 갑자기 길어지는 점이 다르다.

쌍계사에서 삼신봉에 이르는 구간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등산로를 비켜서 두더지, 너구리, 족제비, 담비, 오소리, 멧돼지, 노루, 고라니, 멧토끼, 청설모, 다람쥐, 등줄쥐, 흰넓적다리붉은쥐, 삵 등의 포유류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리고, 당국에서 방사한 반달가슴곰이 가끔 나타난다. 등산로 몇 곳에 반달가슴곰에 대한 주의사항을 적은 안내판이 보인다. 그러나, 반달가슴곰의 야생복원에 대한 성공 여부는 아직 미지수이다.

쌍계사에서 칠불사까지는 30리길이다. 신흥마을 못 미친 곳에서 큰 골이 둘로 나눠지는데, 오른쪽으로는 세석전으로 가는 대성골, 왼쪽으로는 칠불사로 가는 범왕골이 나누어진다. 모두가 화개천 상류지역으로, 수달도 이 지역에 서식하고 있다.


가야 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득도했다는 칠불사는 해발 800미터에 위치한 탓으로 물이 귀하다. 그래서 2개의 연못을 다목적으로 조성해놓았다. 주차장 아래에 있는 둥근 영지(影池)는 허 왕후와 출가한 일곱 아들들의 애틋한 전설을 담고 있다. 숲속의 연못은 생태적 가치가 매우 높다. 곤충이며, 양서류며, 조류며, 포유류며 무릇 생명있는 것들은 모두 거기에다 목을 메고 있다.
사찰생태연구소 김재일 | temple-e@hanmail.net
2007-04-24 오후 3: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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