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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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 구불 범종각 기둥 자연미 극치
서산 상왕산 개심사의 따스한 겨울
개심사 범종각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북으로 올라온 정맥이 안성 칠장산에 이르러 두 줄기로 갈라진다. 북진한 한남정맥은 경기도의 기맥이 되고, 서진한 금북정맥은 충남의 기맥이 되었다. 충남의 기맥 가운데 해발 677.6미터의 가야산이 내포 땅에 우뚝하다.

상왕산(象王山)은 가야산의 산줄기가 석문봉을 지나 몇 걸음 북진해 솟아오른 해발 307미터의 지봉이다. 인도의 가야산 형세가 코끼리 머리를 닮았다 하여 ‘상두산(象頭山)’이라 하였으니, 이곳의 상왕산의 이름도 거기서 연유했을 것이다.

서산 개심사는 <사적기>에 따르면, 백제 의자왕 때인 654년에 혜감국사(慧鑑國師)가 ‘개원사(開元寺)’라는 이름으로 초창한 것으로 나와 있으나, 대웅전 기단의 옛 돌 말고는 옛적 일을 알려줄 물증은 남아있지 않다. 근대불교사에서는 경허선사를 비롯한 선승들이 오랫동안 가부좌를 틀었다.

개심사 들머리의 목장은 군사독재시절 당시의 권력자가 울울창창하던 상왕산 자락 6백여만 평을 배코를 쳐서 만든 것이다. 신창저수지는 삼화목장이 조성된 후 1978년도에 개심사 계곡을 막아서 만든 인공저수지이다. 이 저수지 물은 해미면 일대의 논 뜰을 적신 후 천수만 간월호로 들어간다. 해마다 겨울이면 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가 날아와 겨울을 난다.

주차장에서 일주문을 지나 보현선원까지 호젓한 산길이 좋다. 이 구간은 소나무가 우점한 가운데 계류 주변에는 조릿대, 복분자, 갯버들, 단풍나무, 때죽나무, 쪽동백나무, 산초나무 등 관목과 아교목이 자리하고, 그 주변으로 다시 참나무류와 느티나무와 굴피나무 같은 활엽수들이 띠숲을 이루고 있다.

산초나무 줄기
산초나무는 키가 3미터 가량인 낙엽성 나무이다. 잎과 향기가 독특하지만, 겨울에는 나무줄기에 돋은 가시를 보고 알아낸다. 가시가 있어서 예전에는 집 앞에 벽사용으로 심기도 했다.

세심동 동구에는 ‘洗心洞’ ‘開心寺 入口’라 음각된 허름한 자연석 두 개가 선돌처럼 서 있다. 마음을 씻는 곳, 마음이 열리는 절이라…. 사람들은 그 앞에 서서 저마다 알음알이를 굴린다.
아무렇게나 다듬은 장대석으로 쌓은 계단길이 절까지 나있다. 더러 덧니처럼 삐져나온 돌도 있지만, 너무나 천연덕스러워서 그게 본래 면목인 듯이 눈 맛이 감칠 나다. 무겁고 모난 돌계단인데도, 비탈길을 구비 도는 멋이 그렇게 유연하고 부드러울 수 없다.

주위를 돌아보면 마치 심산유곡에 들어온 듯 울창한 노송숲이다. 누군가 절이 산을 파먹었다고 했지만, 절이 산과 숲을 지켜온 산막이라는 사실을 이 노송숲이 대변해주고 있다. 개심사가 아니었더라면 이 울창한 숲도 배코를 당해 민둥산 목장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개심사 연못 그림자

돌계단 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나는 것이 연못이다. 자연석으로 약 60센티미터의 깊이를 만들었다. 네모꼴을 하고 있어서 사찰 전통연못이라기보다 조선 사대부집 연못을 많이 닮았다.

연못의 이름이 ‘경지(鏡池)’인 것을 보면, 기능상으로는 영지(影池)에 더 가깝다. 실제로 연못 위에는 범종각과 안양루의 그림자가 아름다이 비치고, 주위의 아름드리나무들이 갖가지 형상으로 물속에 잠겨 있어서 선경(仙境)을 연출하고 있다.

대개 사찰의 개울은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의 경계를 나타낸다. 이 명당수 개울을 건너야 비로소 절의 영역이다. 개심사는 이름만 세심동(洗心洞)일 뿐 이렇다 할 명당수가 없다. 그래서 이 연못을 두었다.

이 연못은 개심사 주변의 생태계 비오톱(biotop)으로 손색이 없다. 연못 속의 수서생물과 주변의 식물들은 물론, 곤충과 새들도 이 연못에 기대어 살고 있다.

실제로 이 연못 주위에는 느티나무, 서어나무, 굴참나무, 오리나무, 말채나무 등 절로 자란 나무들이 많다. 그리고 전나무, 은행나무, 모과나무, 배롱나무, 단풍나무, 편백나무, 벚나무 등 식재한 나무들도 노거수로 자라서 멋진 생태경관을 만들어주고 있다.
조류와 곤충들도 개심사의 어느 지역보다도 많이 관찰되고 있다. 박새, 진박새, 쇠박새, 곤줄박이, 동고비, 노랑턱멧새, 붉은오목눈이, 직박구리, 물떼까치, 어치, 큰오색딱다구리, 오색딱다구리, 청딱다구리, 쇠딱다구리, 멧비둘기 등등.

그러나 이 연못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입수량(入水量)이 적기 때문에 물이 줄곧 정체상태에 있어서 좋은 수질을 기대할 수 없다. 비가 올 때는 주변 토사가 빗물과 함께 연못으로 들어오고, 낙엽들이 물속에 가라앉아 수질의 부영양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관리를 게을리 하면 물이 썩어 냄새가 날 정도다.

이 연못을 생태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가장자리에 갈대나 부들 같은 정수식물을 심고, 연못에는 개구리밥이나 생이가래 또는 물옥잠 등과 같은 부유식물(浮游植物)을 띄우는 것이 좋다. 미꾸라지나 붕어 또는 우렁이를 방생해서 수질정화를 도모하는 것이 좋다.

개심사 전경

서산지역은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겨울이 짧고 따뜻한 편이다. 연못 주변 양지쪽엔 벌써 개불알풀, 개쑥갓, 광대나물 등이 봉오리를 터뜨렸다. 이들은 생명력이 강해서 한겨울에도 꽃을 피운다. 꽃들이 작고 볼품이 없지만, 꽃이 귀한 겨울철에는 어디서 만나도 반갑다.

연못을 지나면 돌계단을 통해 범종각 영역으로 이어진다. 돌계단 좌우에 공작단풍이 납죽 엎드려 있다. 일본서 들여온 공작단풍은 전통사찰에는 어울리지 않는데도 요즘 사찰 조경수로 무분별하게 심고 있다.

범종각의 지붕을 이고 있는 네 기둥들이 모두가 하나같이 휘어지고 비틀려져 있다. 모두가 불구의 몸이지만, 저리도 아름답고 멋진 종각을 만들어 놓았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어울림(자연)에서 나온다. 부처의 세계에는 불구가 따로 없다. 부처의 화엄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해우소 뒤편으로 이대숲이 울창하다. 남해안과 서해안이 가까운 사찰에 분포하는 이대들은 전쟁에 쓸 화살들을 생산하기 위해 인공으로 심어졌을 개연성이 높다. 겨울이면 해마다 이 이대숲으로 물떼까치들이 무리 지어 날아든다.

개심사 법당 물고기 그림

500여 년 전 성종 때 충청절도사가 사냥을 하기 위해 상왕산에 불을 놓는 바람에 개심사와 주변 숲을 잿더미로 만든 적이 있다. 훗날 대웅전을 복원하면서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 대들보에다 물을 상징하는 물고기 그림을 그려 놓았다.

묵서명을 통해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밝혀진 심검당은 가구(架構)들이 모두가 하나같이 휘어지고 굽은 나무들이어서 더욱 명물이다. 이 천연덕스러운 미학 뒤에는 수행자들의 숲사랑 정신이 깃들어 있다. 울창한 숲속에 반듯한 재목감이 어찌 없었으리오, 하지만 수행자들이 굳이 휘고 굽은 나무들로 집을 지은 것은 숲과 나무의 소중함을 안 까닭이다.

전통적으로 수행자들은 불사에 쓸 나무들을 그 사찰 주변의 숲에서 구해왔다. 그래야 숲의 소중함을 깨닫고, 숲을 잘 가꿀 수 있다. 그리고 그 기후와 풍토에 맞는 나무들을 써야만 건축물의 수명이 오래 간다. 심검당의 수백 년 수명이 오늘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나무로 지은 사찰의 옛 건축물들을 일컬어 ''자연의 일부''라고 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네발나비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자 네발나비, 뿔나비 등이 곳곳에서 관찰된다. 이 밖에 성충으로 겨울을 난 나비들로는 청띠신선나비, 공작나비, 멧노랑나비, 신선나비, 멋쟁이나비, 쐐기풀나비, 산네발나비 등이 있다.

산신각 앞 능선은 개심사의 내청룡이다. 그 내청룡에 추사 김정희의 조상인 김양수(金良秀)와 그의 부인, 그리고 후손들의 묘역이 있다. 그들의 묘소가 개심사역에 들어오게 된 것은 김양수의 부인인 상산황씨(尙山黃氏)가 개심사의 큰보살이였기 때문으로 전한다. 명당답게 묘역 주변은 청장년의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잘 자라고 있다.

산신각을 뒤로 하고 솔숲 사이로 난 등산로를 30분 올라가면 가야산과 상왕산을 잇는 능선을 만난다. 왼쪽으로는 상왕산 정상으로 이어지는데, 그 능선 너머에 서산마애삼존불과 의상대사의 화엄10찰 가운데 하나였던 보원사 옛터가 자리하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일락산-석문봉-가야산으로 능선이 이어져 있다.

최근 한국전력이 이 일대에 송전철탑공사를 강행해 자연을 크게 훼손하고 있어서 불교계와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음식물쓰레기 광역처리장까지 상왕산 계곡에 들어서서 이래저래 골치를 앓고 있다. 하산하는 발걸음이 무거운 것도 그런 까닭이다.
김재일 사찰생태연구소장 | temple-e@hanmail.net
2007-02-22 오후 2: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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