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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죽은 자의 입은 닫혀있지만 산자의 입은 왕성하다. 민가에서 맞는 혈육의 죽음은 곡진한 슬픔마저 태부족이지만 왕의 죽음은 삼엄한 권력이동과 동의어다. 선거는 제로섬 게임이다. 이긴 자는 모든 것을 갖고 진 자는 빈 깡통 뿐이다. 국상은 대선과 같다. 장지 선정, 장례 절차에서 입김이 통하면 출세요, 후왕의 의중을 잘못 파악하면 죽음마저 감수해야 한다. 조정 대신들에게 사활을 건 암투의 계절이 국장이다. 수천 명 민초들에겐 무보수 자원봉사, 피땀 어린 부역의 계절이다.
현직 대통령이 죽으면 국가비상사태다. 계엄령이 선포된다. 10·26때 그런 체험을 했다. 왕의 승하 직전에 계령 즉 계엄령이 선포된다. 왕의 죽음, 국장은 동시대 최고의 국책사업이다. 새로 뽑힌 대통령은 화려한 취임식과 장밋빛 정책 구상을 펼치지만 새로 등극한 왕이 맡는 첫 국사는 국상이다.
계령이 발동되면 병조(국방부)는 군사를 동원하여 왕궁을 겹겹이 에워싼다. 승하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왕세자, 대군 이하의 친자, 왕비와 내명부, 외명부의 공주 등은 모두 관과 웃옷을 벗고 머리를 풀며, 금, 은, 옥, 비취, 노리개 등을 제거한다. 겉으로는 지극한 슬픔 보이기 경연을 하지만 속으로는 손익계산에 숨이 가쁘다.
예조에서 의정부에 보고하고 중앙과 지방에 공문을 보내 도성과 지방 관청으로 하여금 계령을 철저히 지키게 한다. 5일간 장이 열리지 못한다. 왕이 승하한 후 3개월이 지난 뒤 졸곡(죽은 지 석 달 후 지내는 제사)을 한다. 졸곡 전까지 혼인, 돼지, 소 등의 도살이 금지된다. 국상이 나면 당분간 백성은 혼인도 못하고 고기 구경도 못한다.
국상이 나면 장례위원회가 설치된다. 빈전도감, 국장도감, 산릉도감이 그것이다. 빈전도감의 제조(지휘 감독관)가 세 명이고 그 중 예조판서가 당연직이다. 빈전도감의 업무는 세 기관 중 비교적 간단하다. 소렴과 대렴에 입을 옷, 빈전(일반 백성은 빈소라 한다), 찬궁(관을 설치하는 일), 성복(상복을 입는 일) 등을 맡는다. 국장도감은 호조판서, 예조판서가 제조를 맡고 집기류, 악기류, 대여(관을 싣는 큰 가마), 지석, 제기, 책보 등을 만드는 일을 맡는다.
산릉도감이 가장 힘들고 조심스런 업무를 맡는다. 능을 조성하는 일을 총 지휘하며 공조판서(건교부장관)와 선공감정이 제조로 임명되고 당하관이 10명이다. 광중(무덤)을 파고 정자각, 현궁, 비각, 수복방, 제실 등을 짓는다. 얼얼한 국책 사업이 시작된다. 한성부 판윤(서울시장)은 장지까지 가는 다리, 길을 수리하고 설치한다.
3도감의 도제조(총책임자)는 좌의정이 맡는다. 3도감 총호사라 불리고 장례의 모든 일을 총괄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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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국장제도는 태조 이성계가 죽자 처음 국장을 맞은 3대 태종이 송나라의 제도를 도입해 확립했다. 고려의 국장은 1개월 이내였고 두 달을 넘긴 예가 드물다. 조선은 신생 왕국의 위엄을 보이려 왕과 왕비는 국장기간이 5개월, 정4품 이상 사대부는 3개월, 그 아래 관직은 1개월로 장례기간을 국법으로 정했다. 장례가 겹치면 상복 입고 1년 내내 보내기도 한다. 죽은 자는 빨리 흙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더운 날에 죽은 왕은? 시신이 썩는 것은 어떻게?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서빙고동은 얼음 저장고가 있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동빙고는 왕실 장례, 제사 전용, 서빙고는 왕실의 주방용과 여름철에 문무백관에게 하사하기 위해 얼음을 저장했던 곳이다. 모두 목빙고였다. 그래서 현재 남아있지 않다. 경주 석빙고 등 재질이 돌인 것은 오늘날 여러 곳에 남아 있다.
겨울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한다. 두께 12㎝ 이상, 큰 덩어리는 한 정 즉 사방 6자(1.8m)의 얼음을 빙부들이 떴다. 물론 오염되지 않은 청정 지역을 택해서.
왕의 시신이 썩지 않도록 공조에서 빙반을 만든다. 길이 3m, 넓이 1.6m, 깊이 90㎝다. 냉동보관소가 없던 조선시대 냉동 영안실이다. 빙반을 바닥에 놓은 다음 그 위에 대나무로 만든 평상을 설치한다. 평상 위에 시신을 올려놓는다. 그 위에 다시 빙반을 설치한다. 습기를 흡수하기 위해 마른 미역을 사방에 쌓아놓고 계속 갈아댄다. 이것을 ‘국장미역’이라 한다.
조선왕조는 왕궁 중심 80리 안에 왕릉을 택지시켰다. 당시 10리는 5.2㎞, 80리×5.2㎞=41.6㎞, 마라톤 코스 거리와 비슷하다. 능제를 지낼 왕이 서둘러 출발하여 하루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능역 공사는 대략 3~5개월 걸린다. 동원된 인원은 6000~9000명이다. 택지는 상지관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하고, 왕이 친히 현장에 가서 지세를 살피기도 했다.
22대 정조는 수원읍치 화산에다가 왕릉을 택지하려 했다. 아버지인 사도세자 왕릉이다. 수원은 궁궐에서 88 리다. 대신들이 반대했다. 왕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제부터 수원까지 거리를 80리로 명하노라.’ 절대왕조 시대이니 왕명은 법이다. 지금도 수원 토박이들은 수원80리를 고집한다. 매년 능제가 거행된다. 능제 땐 소를 잡아도 된다. 능제음식으로 인해 왕릉갈비가 생겼고 오늘날 수원갈비다. 태릉갈비, 홍릉갈비 모두 마찬가지다.
왕릉은 천하의 명당이다. 내노라하는 풍수들이 모두 동원된다. 왕릉으로 택지되는 지역은 가문의 영광일까? 천만에! 가문의 불행이다. 무자비한 철거가 시작된다. 왕릉이 들어서면 주변에 산재한 무덤은 강제 이장이다. 주변 마을도 철거다. 철거 이주민 마을이 오늘 날 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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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아래 용인이 있다. 그 아래쪽에 진천이 있다. 살아 진천, 죽어 용인이라고? 용인은 수원 80리를 벗어난 안전지대다. 양반 문중에서 마음 놓고 선산을 쓸 수 있는 곳이다. 용인 땅이 포화상태에 이르면? 진천이 제2 후보지가 된다. 세도가들의 선산이 밀려오면 진천 사람들은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용인은 음택(무덤터)의 명당이고 진천은 양택(집터)의 명당이라고 열심히 홍보했다.
‘여인천하’라는 인기 드라마가 있었다. 신라 이후 여왕이 등극한 예는 없지만 왕실 여인들의 역할이 만만치 않다. 왕권 창출, 권력 이동과 세습, 외척의 득세와 몰락은 여인들과 연루되어 있다. 장희빈, 문정왕후, 명성황후 등 여느 왕 못지않게 굵직한 이름으로 새겨진 이들이 많다. 여인들의 품계를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다.(도표 참조)
벼슬을 전혀 못한 무지랭이 필부필부가 죽으면, 지방을 쓸 때 필부(匹夫)는 학생(學生), 필부(匹婦)는 유인(孺人)이라고 쓴다. 죽으면 말석 벼슬을 추서하는 셈이다.
매장·화장 논의가 분분하다. 불가(佛家)에서는 일치감치 화장을 시행하여 이런 논란으로부터 자유롭다. 최근 화장률이 매장률보다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삼천리 구석구석 봉분이 자욱하다. 왕릉은 매장 시효가 없다. 그 자체가 역사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은 죽지 못한다. 고통스런 삶을 역사와 함께 짊어지고 가야한다. 태조 이성계의 무덤부터 찾아가자.
글=이우상(소설가)·사진 =최진연(사진작가)
왕실 여인들의 품계
내명부(內命婦) : 대궐 안에 머물면서 작위를 받은 여인들을 일컫는다. 내명부의 우두머리는 중전이다.
후궁들은 1품에서 4품 벼슬을 받고 궁녀들은 5품에서 9품의 벼슬을 받는다.
내명부 세자궁
정1품 빈
종1품 귀인
정2품 소의
종2품 숙의 양제
정3품 소용
종3품 숙용 양원
정4품 소원
종4품 숙원 승휘
정5품 상궁, 상의
종5품 상복, 상식 소훈
정6품 상침, 상공
종6품 상정, 상기 수규,수칙
정7품 전빈, 전의, 전선
종7품 전설, 전제, 전언 장찬,장정
정8품 전찬, 전식, 전약
종8품 전등, 전채, 전정 장서,장봉
정9품 주궁, 주상, 주각
종9품 주변치, 주치 장장,
장식,장의
주우, 주변궁
외명부(外命婦) : 궁궐 바깥에 머물면서 작위를 받은 여인들을 일컫는다.
공주·옹주·군주·현주를 비롯한 왕과 세자의 딸들, 국왕 친척의 부인, 관리의 부인들이 모두 해당된다.
왕의 왕비 임금 세자
유모 의모 의딸 의딸
공주
(적녀)
옹주
(서녀)
정1품 부부인
종1품 봉보부인
정2품 군주
(적녀)
정3품 현주
당상관 (서녀)
종친의 처 문무관의 처
정1품 부부인(대군의 정경부인
아내), 군부인
종1품 군부인 정경부인
정2품 현부인 정부인
종2품 현부인 정부인
정3품(상) 신부인 숙부인
정3품(하) 신인 숙인
종3품 신인 숙인
정4품 혜인 영인
종4품 혜인 영인
정5품 온인 공인
종5품 온인 공인
정6품 순인 의인
종6품 의인
정7품 안인
종7품 안인
정8품 단인
종8품 단인
정9품 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