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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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방이야기]눌산訥山, 눌인訥人
조계산 산자락을 끌어다 한 폭의 산수화에 그려 넣는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소나무는 그려 넣기 쉬워도 높고 낮음에 두드러짐이 없는 조계산 산자락을 그리려 한다면 붓은 떨리고 이마엔 땀방울이 맺힐 것이다. 산을 오르나 그 숨소리가 유연하여 막힘이 없어야 하고, 가끔 독야청청한 소나무의 굵은 선을 선명히 드러낼 만큼 부드러워야 한다면, 차라리 산등성이에 올라 마음 놓고 깊은 한 숨 화선지에 쏟아 버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송광사는 그러하다. 너무도 잔잔하여 애달픈 생각마저 불러일으키는 계곡과 속세에서 올라 온 이 빠진 이무기가 예까지 마중 나온 청룡을 만나는 ‘청량각’까지……. 한치의 비틀림도 없이 자란 편백나무 숲이 비라도 오면 질퍽질퍽해지는 울퉁불퉁한 흙길을 끼고 돌아가는 것 또한 그러하고, 화려하게 장엄된 일주문 아래 두 손으로 들어 올리면 품에 안길 것 같이 작은 원숭이상 또한 그러하다.

용맹스러운 신심으로 똘똘 뭉쳐져 한치의 빈틈도 없어야 될 것 같은 절집에서 마주치는 모양이 어딘가 덜 채워진 듯하고 어눌한 듯한 모양이 송광사의 얼굴이려니 생각하면, 오히려 도량의 풀 한 포기조차 의미심장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한창 화단에 핀 접시꽃 또한 기와조각으로 엉성히 잇댄 울타리 덕분에 그 소박함이 돌담 너머 여염집의 아낙네와 같이 느껴지는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일까? 그렇게 눈여겨본다면 끝이 없을 것 같아 강당의 큰방으로 쓰는 정혜사의 처마 밑에 잠시 머물러 어눌한 산자락 아래 어눌한 스님들의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한다.
아침으로는 선선했던 초여름이었다. 이때는 벌들이 새 집을 찾아 강산을 해매는 때였는데 막 오전 간경을 끝내고 몇몇 스님들이 모여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도 살려고 찾아 왔는데 억지로 쫓아낸다는 것이 좀 그렇잖아요?”
“아니에요, 공양 때마다 붕붕거리며 방안을 날아다닐 생각을 해봐요. 움직일 수도 없고…….”
“그도 그렇네요. 쫓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벌들은 순식간에 강당을 뒤덮었고 어서 여왕벌이 자리 잡기를 바라는 듯 더욱 큰소리로 붕붕거렸다. 그 와중에도 우리 스님들은 다른 한 쪽에서 10분 동안이나 ‘쫓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를 가지고 벌떼처럼 논의가 진행 중이었다.

마침 농사일에 잔뼈가 굵은 스님 한 분이 두 팔을 휘저으며 빨리 쫓아내야 한다며 모든 격론을 중지시킨 이유는, 그 벌들이 쏘이면 치명적이라는 ‘한봉’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벌들은 소용돌이 모양의 춤을 추며 처마 밑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그때서야 사다리가 동원되고 그 스님은 빗자루를 들고 올라갔다.

“그래가지고 되려 쏘이겠수. 쑥 연기로 쫓아내보오.”
누군가 걱정된다는 듯 말을 건넸다. 옆에 서 있던 나는 급한 김에 채공간에서 쓰는 알루미늄 채에 쑥차를 털어 넣고 성냥불로 불씨를 만든 다음, ‘불아, 붙어라!’ 후후 불고 있는데, 갑자기 내 모양을 보고 한 스님이 박장대소를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벌집 밑에서 후후 불어대는 내 모습도 그러했지만, 그것을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스님들의 모습이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고 하였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석 달이 지나갔어도 벌에 쏘였다는 스님은 없다는 것이다.

“전생에 저 여왕벌이 총림의 방장 스님이 아니었을까요?”
“내년 봄엔 처마 밑으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것 아니에요?”
옛 기운이 그대로 살아있는 관음전, 계단의 난간에 이가 서너 개나 빠진 채 위엄 있게(?) 서있는 돌사자와 그 처마 아래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용 두 마리가 함께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며칠 전, 예비군 훈련을 갔을 때의 일이다. 부대가 순천에 있어 송광사 포교당인 대승사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도심인지라 옛 정취를 찾아 볼 수 없었지만, 대략 3, 40년은 족히 됨직한 은행나무가 절 마당에 있었다. 구산 스님께서 손수 심으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그늘 아래 세워진 공덕비에서 시주자였던 어느 보살님의 이름도 마음에 담아보고 다시 은행나무의 높이도 가늠해 보았다. 한 때는 순천시의 피난처로 쓰였다는 대승사. 한 그루의 은행나무에서 시작된 작은 의구심이 지나칠 뻔했던 6󈽕 전쟁 당시의 역사까지 듣게 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송광사에도 그런 것이 많지 않은가? 모후산이 건너다 보이는 감로탑비가 그렇고, 눈 부릅뜨고 말없이 구산 스님의 ‘네거리 위 돌사자’라는 화두를 한 평생 잊지 않을 것 같은, 대웅보전 앞의 해태상 또한 그렇지 아니한가?

작게는 분명히 교체해야 할 때가 지났지만, 기어코 쓰러질 때까지 쓰실 요량이신지 탁상보를 씌워 여태까지 쓰고 있는 삼일암 응진전의 낡고 낡은 탁상 하나와, 새로 상좌를 맞이하신 화엄전 노스님께서 처음으로 정성스레 내 주신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 두 통까지…….

눈에 띄지 않아 그냥 넘겨버리면 영원히 못 볼 것이요, 보았다면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푸르름이 있는 송광사. 오히려 더듬거리며 건네는 말이 더욱 진실해 보이는 것처럼 더듬더듬 조심스레 산을 오르는 모양이 너무나도 진지한 듯한 이런 모습이 눌산訥山 아래 눌인訥人들이 모여 사는 조계산 송광사 스님들에 대한 최고의 극찬이 아닐까? 조심스레 자랑해본다.

효산 스님 |
2007-01-25 오전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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