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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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사찰생태기행]나주 덕룡산 불회사
깊지도 높지도 않으나 생태적 느낌 좋은 도량
“저 넓은/법계 속 불회(佛會)에 나아가/감로법우(法雨) 내리기를 비나이다/무명토(無明土)에 깊이 묻혀/번뇌열에 달구어져/선아(善芽)가 말라붙은/중생의 밭들을 적시소서!/아,/보리(菩提) 열매 영그는 날/깨달음의 달 밝아라!”

균여대사의 향가집에 실린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의 ‘청전법륜가(請轉法輪歌)’이다.
전남 나주 덕룡산 기슭에 자리한 불회사(佛會寺)의 사명(寺名)에는 보살이 부처님 전에 나아가 법을 설해주기를 발원하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다. 기록상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여러 문헌이나 사료 등을 종합해볼 때 불회사 창건주는 인도스님인 마라난타 존자가 확실해 보인다. 마라난타 이후 고려 말에 원진국사가 사세를 크게 일으켰다. 본래 사명 ‘불호사(佛護寺)’는 조선 순조 때 지금의 이름으로 바뀐 듯하다.
불회사 뒷 숲

불회사 일주문에서 큰 절까지는 5백 미터 가량. 새로 지은 일주문 부근에 도암선사 부도가 있어서 사역을 짐작케 해준다.
일주문 안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덕룡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계류가 흐르고 있다. 계류 건너편엔 논밭들이 자리하고, 민가 주위로는 대숲이 둘러있고, 산능선까지는 소나무가 우점하는 혼효림이다.

일주문 왼편으로는 편백숲이 천왕문까지 쭈욱 이어져 있다. 주민의 이야기로는 조성한 지 60년이 넘었다지만, 육안으로 보기에는 30년생 안팎이다. 그 사이에 베어내고 다시 심었는지는 모르겠다.

1구간에서 관찰된 초본으로는 여뀌류를 비롯해 물봉선, 층층잔대, 까실쑥부쟁이, 흰고마리, 참취, 쑥부쟁이, 미역취, 털며느리밥풀, 눈괴불주머니, 용담 등이 관찰되었다.
느티나무와 고로쇠나무 연리목

용담은 비교적 늦가을까지 남도지역에서 꽃을 볼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키는 50센티 남짓하고, 종자는 꽃이 진 다음에 익는다. 꽃이 아름답기 때문에 사찰에서 관상용으로 심어도 좋다. 식용도 하고, 고미 배당체인 겐치오피크린 등이 함유되어 있어서 약용으로도 쓰인다. 특이 구간에서 특기할 만한 나무로는 이목(異木)끼리 연리(連理)를 이루고 있는 두 그루의 보호수이다. 수령 6백년의 느티나무와 고뢰쇠나무가 몸을 섞은 부부수(夫婦樹)이다. 덩치 큰 남편 느티나무 뿌리가 수컷의 거시기처럼 부인 고로쇠나무 뿌리 속으로 깊숙이 박혀 있다.

이 구간에는 노부부 돌장승도 큰 볼꺼리이다. 중요 민속자료 11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노장승들 역시 임진왜란 후 민간신앙의 불교습합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웃한 운흥사 장승과 마찬가지로 사찰의 수문장으로 존재한다.

사적비 뒤로 불회사의 중창주인 원진국사의 부도가 있다. 사람들이 탁본을 한답시고 탑신에 먹물을 시커멓게 묻혀 놓고 갔다. 돌 속에 스며든 먹물은 비가 와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 저 상태로 몇 십년 몇 백년이 갈 수도 있다. 식자(識者)들의 이기적 몰상식이 개탄스럽다.
불회사 원진국사 부도

부도 주변 숲에 배풍등(排風藤)이 빨간 열매를 앙징맞게 매달았다. 배풍등은 고추와 사촌인 여러해살이 덩굴식물이다. 주로 기후가 따뜻한 남부지방에 산지에 서식하고 있다. 열매를 따다가 봄에 파종해두면 그 다음해부터 꽃과 열매를 볼 수 있다. 새들이 열매를 좋아해서 겨울에 즐겨 모인다.

진여문 홍예다리 아래 계류는 물이 말라서 갈겨니와 버들치들이 군데군데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계류의 물이 마른 것은 가뭄 탓도 있지만, 절에서 위쪽의 지하수를 생활용수로 끌어다 쓰기 때문에 서식환경이 더 나빠진 것이니 절에서 물고기의 생태환경을 수시로 살펴볼 일이다.

근래 불회사는 불사를 하여 가람배치를 쇄신하였다. 대양루의 계단을 오르면 덕룡산을 배경으로 팔작지붕을 한 대웅전이 우아한 자태를 드러낸다. 용머리와 내부 천장에 나타난 물고기는 백제 불교의 바다 전래설을 암시해주기도 하지만, 환경측면에서는 사찰 화재의 벽사물로 이해된다.

대웅전 뒤로는 인공으로 조성한 숲들이 수종을 달리하며 내화띠[耐火樹林帶]를 이루고 있다. 천왕문과 시운당(요사채) 중간 쯤에 서서 대웅전 뒷숲을 보면 숲의 빛깔만으로도 내화수림대가 확연히 구분된다. 아래쪽에서 위로 올라가며 잔디, 차나무, 동백나무, 비자나무, 대나무, 소나무 혼효림이 자리하고 있다. 바라볼수록 멋진 숲이다.
붉나무 열매

겨울을 성충으로 월동하는 네발나비, 뿔나비, 노랑나비, 청띠신선나비 등이 보인다. 늦가을에 보이는 나비들은 거의가 어른으로 겨울을 난다. 하지만, 오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온 나비들은 영하의 겨울이 눈앞에 닥쳐도 요란을 떨지 않는다. 인간과는 달리, 은둔할 곳을 미리 허둥지둥 찾아다니며 점찍어두는 일도 없다. 눈과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바위나 나무 틈은 어디든 있다. 가서 죽은 듯이 날개 접고 참고 견디는 것이다.

불회사 해우소는 수세식이다. 들어갈 때 슬리퍼로 갈아 신도록 되어 있다. 신발을 신은 채로 들어가는 것과 슬리퍼로 갈아신고 들어가는 것은 이용자의 마음자세를 달리 해준다. 슬리퍼를 신으면 해우소라도 ‘실내’라는 느낌을 준다. 다른 해우소보다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도 그런 마음의 자세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명부전 옆으로 좁은 산길이 나 있다. 스님들만의 포행길이다. 포행길은 대웅전 뒤 내화수림대를 휘돌아 계곡의 저수지[洑]로 내려오는 코스이다. 포행길은 울울창창한 숲길이다. 차나무, 동백나무, 비자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포행숲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비자나무와 동백나무이다. 불회사 비자나무는 어림으로 2천3백 그루나 된다고 한다. 높이가 10미터, 가슴높이 지름이 평균 40센티에 이른다. 이 정도 크기라면 수령이 2백년은 조이 넘는다. 동백숲은 대웅전 뒤로 활처럼 휘어져 조성되어 있다.
청띠신선나비

이 포행숲에 가끔 너구리들이 나타난다. 배설한 지 몇 시간 안 되는 너구리 배설물이 말랑말랑한 형태로 숲길에서 발견되었다. 고양이과 동물들은 배설물을 흙으로 덮어 보이지 않게 하지만, 너구리와 같은 개과는 그냥 놔둔다.

불회사가 앉은 덕룡산은 해발 376미터에 불과하지만, 산역이 넓고 촌락과 많이 떨어져 있어서 서식하는 포유류의 종이 다양하다. 불회사 삼거리인 하평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겨울이면 멧토끼, 고라니, 멧돼지를 비롯해 삵까지 일주문 아래까지 나타난다고 한다.

비로헌 주위로 몇 마리의 직박구리가 이리저리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불회사 조류로는 박새, 쇠박새, 진박새, 곤줄박이, 쇠딱다구리, 오색딱다구리, 청딱다구리, 직박구리, 어치, 까치, 꿩 등이 관찰되었다. 시기상 여름철새들은 떠나고 겨울산새들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불회사에는 원진국사의 신작(神鵲) 전설이 있다. 당시 국사가 큰 절 건너편 남암(南庵)에 머물고 있었는데, 아침이면 흰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잣나무에 앉아 쉬다가 해가 저물면 숲으로 돌아갔다. 대중들이 신작이라고 이름지어주었다. 어느 해 신작이 홀연히 사라졌다가 3년 후에야 검은 새가 되어 나타났다. 발에 묶인 편지 안에는 불회사를 떠나도 만년토록 도와주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국사가 기특하게 여겨 그 나무 이름을 흑작수(黑鵲樹)라 하였다. 시간에 쫓겨 현장을 확인해보지는 못 했지만, 지금 남암 옛 터에는 전설 속의 흑작수가 남아있다고 한다.
불회사 내화수림대

비로헌을 지나 계곡으로 내려서면 저수지 형태의 계곡보가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숲의 모습이 좀 다르다. 인간의 간섭이 절제되어 자연성이 두드러진다. 하층식생도 다르고, 숲을 이루고 있는 수종들의 모습도 크게 다르다. 소나무에서 활엽수로 천이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목본으로는 장년의 소나무가 우점하는 가운데 개옻나무, 붉나무, 팽나무, 검양옻나무, 누리장나무, 가새뽕나무, 왕버들, 비목, 단풍나무, 느티나무, 와 같은 활엽수가 혼재하는 모습이다.

개옻나무는 전국에 자라는 낙엽활엽수 소교목으로, 높이가 7미터 안팎으로 자란다. 나무 껍질은 회갈색로, 새로줄이 있다. 잎은 긴 타원형으로 어긋나기로 달린다. 암수가 다른 나무로 봄에 연노란 꽃이 피고, 가을에는 홍갈색 열매가 익는다. 가을날 진홍색 단풍이 아름답다.

붉나무는 개옻나무와 비슷하지만, 잎자루 좌우에 좁다란 날개가 붙어있어서 구별하기 쉽다. 자잘한 꽃이 지고 난 뒤 열매는 하얀 물질로 얇게 덮히는데, 손가락으로 찍어보면 짠맛이 난다. 먼 옛날 스님들은 붉나무 열매를 물에 넣고 주물러 소금물을 얻었다고 한다.

이 구간의 관목으로는 차나무가 으뜸이다. 불회사의 야생차는 인도 마라난타 스님이 불회사를 창건할 때 중국 강남으로부터 가져와 심은 것이 퍼져서 야생화되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다도면(茶道面)’이라는 지명도 거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비자나무 숲 아래 넓게 자리한 불회사 차밭은 우리나라 사찰 차밭 가운데 가장 넓다고 한다. 스님들이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면서 야생차를 돌보고 있다. 불회사가 자랑하는 비로다(榧露茶)가 바로 이 차밭에서 나온 것이다. 비로황다(榧露黃茶)는 비로다를 반쯤 발효시킨 후에 덖은 차라고 한다.

이 지역의 초본은 비자나무 숲이 하늘을 가려서 빈약하다. 천남성, 맥문동, 이삭여뀌, 쇠뜨기, 소리쟁이, 꽃향유, 삿갓나물, 미국자리공 등이 보인다.

천남성은 산 속의 습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여러해살이 초본이다. 키는 30센티 안팎이며, 여름에 통 같은 꽃이 핀다. 통 안에 커다란 꽃술이 한 개 들어 있는데, 챙으로 비를 가리우고 있다. 가을이면 빨갛게 익은 열매가 옥수수자루처럼 달린다. 열매에 독성이 있으나, 한약재에 쓰인다.

등산객 출입도 없는 이 골짜기에 외래식물인 미국자리공이 들어와 있는 것은 저수지 공사 때문이다. 공사하는 과정에서 기계와 외래인들이 여러 날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외래종들은 자연환경이 파괴된 곳을 희안하게도 잘 찾아서 들어온다.
덕룡산은 깊지도 높지도 않지만, 생태적으로 느낌이 좋은 산사이다.
글 사진=김재일 | 사찰생태연구소(cafe.daum.net/templeeco)
2007-01-02 오전 10: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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