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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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방이야기]삭발 이야기
2003년 1월 1일. 새해의 첫날 아침부터 삭발 준비로 분주하게 시작됐다. 송광사로 입산한 후, 출가 수행자라면 누구나 거쳐 가는 첫 관문인 삭발식을 치루었던 날. ‘부처님의 법 안에서 내 삶의 이정표를 찾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그 날. 바로 그 날도 두해 전의 새해 첫날 아침이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삭발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2001년 1월 1일, 송광사 행자실. 먼저 입방한 상행자님들의 참회진언 정진 속에 길게 자란 머리는 사각사각 한켠씩 한켠씩 정리되어 갔다. 무엇이 그리도 서러웠는지…… 울컥 하더니만 이내 눈앞이 흐려지고 말았다. 한웅큼씩 잘려나간 무명초에, 따가운 비눗물에, 연신 그칠 줄 모르는 눈물에, 이어지는 참회진언까지…… 모든 것들이 온통 뒤섞여 범벅이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행자시절의 삭목일[삭발목욕일]은 짬 내서 삭발도 하고 삭발떡도 만들어서 전 사중에 나누느라고 무척 바빴다.
그렇게 분주했던 행자시절을 마치고 스님이 되어서 맞이했던 삭목일. 기대와는 달리 또 다른 긴장의 연속이었다. 강원 학인 스님들 전체가 참여하는 대중행사일 뿐만 아니라, 삭발 염의한 출가 수행자들만의 고유하고도 엄숙한 날이기 때문에 이 날의 실수는 참회로 직결되었다. 신경을 써서 한다고는 하지만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다보니 종종 실수를 했다. 그럴 때마다 다양한 사연으로 참회가 떨어지곤 했는데 최근의 경우를 보면 이렇다. 가을산철 마지막 삭목일에는 뜨거운 물이 부족해서 수두 소임자 스님들이 참회를 받았고, 동안거 첫 삭목일은 큰방 스님들이 바닥 비닐을 잘못 깔아서 참회를 받았다.
연속되는 참회의 아픔을 겪으면서 동안거 두 번째 삭목일이 다가왔다. 전날부터 쏟아지는 윗반 스님들의 격려와, 이번에는 참회 없이 보내겠다는 다짐으로 시작부터 일은 순탄하게 잘 진행되었다. 따뜻한 물도 충분했고, 비닐도 길쭉하게 펼쳐져 있었으며, 그 밖의 세세한 부분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마침내 삭발이 시작되었다. 대교반 스님들의 삭발이 무사히 끝났고, 사교반 스님들의 삭발도 무사히 끝났다.
이제 사집반 스님들만 마치면 우리 치문반은 문제될 게 없었다. 별 문제 없어 보였기에 우리는 서서히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수두 스님! 사집반 스님들 모셔 오세요.”
“네!”
가볍게 오가는 대화였다.
이윽고 사집반 지대방 앞에 다다른 수두 스님.
똑! 똑! 똑!
“치문반 수두입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다음은 정해진 대로 ‘삭발 준비 다 됐습니다. 삭발하러 오십시요’라고 보고하면 되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무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는데, 결정타를 날린 그 스님의 다음 말은 이랬다.
“사집반 스님들! 머리칠 준비 다 됐습니다. 머리치러 나오십시요.”
아뿔싸! 머리를 치다니? 여기를 동네 미장원으로 알았나? 우리는 이번에도 싸늘한 삭목일을 보낼 수밖에 없었고, 그날 밤 공사 시간에 고개 떨구고 있던 그 스님의 모습은 왜 그리 가련했던지…….
비록 이처럼 아픈 사연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삭발 후 환해진 스님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를 수고한 보람이 있어서 좋다. 보름이면 어김없이 다가오는 삭목일마다 첫 삭발식 때의 다짐을 되새겨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긴장감 속에서 삭목일을 준비해야 하는 치문반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동안 나의 어설픈 삭발솜씨에 상처 입었던 여러 스님들께 머리 조아려 사죄를 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옴 살바못쟈 모지 사다야 사바하’
도갑 스님 |
2006-11-28 오후 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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