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자라면 누구나 도량석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나 또한 입방한 지 채 한 달도 안 되어서 기회가 주어졌다. 첫날밤은 일어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어서 12시가 넘도록 잠을 설치다가 겨우 잠들었는데 눈을 떠 보니 2시였다. 30분 정도 여유가 있었지만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어 그냥 앉았다가 대충 씻고 가사 장삼을 수하고 대웅전으로 가 불을 켜고, 문을 열고, 촛불을 켜는 등 분주함 속에서 첫날 도량석을 마쳤다.
둘째 날은 첫날의 피로 때문인지 곧바로 잠이 들었다. 중간에 한 번 깨어나 시간을 확인하고 또 다시 확인하고 잠들었다가 자명종 소리에 일어났다가 깜박 졸아 다른 자명종 소리에 일어났다. 2시 45분이었다. 부랴부랴 서둘러 그런 대로 마쳤다.
마지막 날. 이틀을 사고 없이 보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자명종을 확인하지도 않고 잤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깨어 보니 3시 5분이었다. ‘야단났다’ 하고 후다닥 지대방문을 여니 “아니, 누가 도량석을 돌고 있잖아요? 지금 목탁소리가 들리는데 빨리 나가 봐요”라고 말하는 스님이 계셨다. 재빨리 가사 장삼을 수하고 가보니 대웅전은 어둠 속에 묻혀 있고 노전 스님께서 도량석을 돌고 계셨다. 예불을 마치고 와서 자명종을 확인해 보니 하나는 눌러져 있었고 다른 하나는 아예 맞춰 놓지 않았던 것이다.
아침공양 시간에 도성당 노스님을 모시러 갔더니 스님께서 “오늘 누가 도량석을 돌았느냐”고 물어 보시길래, 내가 돌아야 했는데 늦잠 자서 돌지 못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가만히 웃으시면서 시계가 없느냐고 하셨다. 내가 도량석을 돌지 않은 것을 치문반 스님들은 모두 알고, 사집반 스님 몇 분도 알고 있었다.
오전에 노전 스님께 참회 드리러 갔는데 문에는 열쇠가 채워졌고 스님은 계시지 않았다. 오후에 다시 가려고 생각했는데 사시공양 진지할 때 천수를 돌리다가 발우 밖으로 물을 쏟은 곳이 하필 노전 스님 자리였다. 일진이 너무나도 사나웠다. 찾아뵈려고 했던 생각이 싹 달아나 버렸다. 약석 때에 대중 스님들은 죽비에 맞춰 발우를 펴고 있는데, 나 혼자서 벌떡 일어나 진지 하러 가지 않나,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루 종일 어떤 참회가 내려질지 조마조마 했는데, 드디어 소공사 시간이 되었다. 찰중 스님께서 아무 말씀이 없어서 스스로 대중 스님께 도량석을 돌지 않은 사실을 알리고 일주일 1,080배 참회하겠다고 하였더니, 찰중 스님께서 다시 참회를 내리겠다고 하였다.
삼경 이후에 가사 장삼 챙겨 사자루로 가서 절을 하는데 온 몸이 땀으로 젖고 입에서는 단내가 풀풀 나고……. 이렇게 천배를 하고 나니 조금은 개운해졌다. 이날부터 나에겐 별명이 하나 붙었는데 바로 ‘참회제일’이었다. 내게 내려진 참회는 일주일간 천팔십 배와 도량석이었다. 절은 두 시부터 네 시까지 하라고 하였다. 도반들은 내가 한 번만 도량석을 돌지 않으면 앞으로 한 달은 도량석 돌 걱정 없겠다고 놀려댔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3일간은 잘 하였는데 4일째 되는 날 똑같은 실수를 또 저지르고 말았다. 내가 너무나 안쓰러웠는지 도반들이 찰중 스님께 건의해서, 그날로 도량석은 그만 돌게 되었고, 참회만 하게 되었다. 놀려댈 때는 그렇게 미울 수 없었는데, 그래도 도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이런 맛에 송광사 강원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