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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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방이야기]불로不老 덕우
삼십대 중반에 출가한 나는 과연 나이에 대해서 초연한가?
몇 년 전 행자생활을 했던 절의 주지 스님은 나를 처음 봤을 때 ‘저 놈은 분명히 중이 될 놈인데 어디서 무엇 하다가 이제 들어왔나. 어차피 될 거면 빨리 들어오지’ 하셨다지만 출가도 때가 있는 법인데, 그전에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주지 스님 말씀대로 빨리 출가 못한 한심스러움은 가끔 대중생활에서 나타난다.
그날은 결제 이틀 전 풀 뽑는 울력을 하던 중이었는데, 거의 울력이 끝날 무렵에 탑전에서 율주 스님과 현 방장이신 범일 보성 스님께서 한 손에 호미를 들고 우리 쪽으로 오고 계셨다.
불현듯 행자 교육원에서 발우공양을 하던 중 허리가 바르지 못하다고 죽비 경책을 받은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졸립던 눈에서는 어느새 빛이 나고 있었다. 율주 스님께서는 어느새 곁으로 오시더니 “이거 봐라, 늙은이야! 이리 와서 이것도 좀 뽑아래이” 하셨다. 늙은이라 부르셔서 나 말고 다른 스님인 줄 알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둘러보는 너 말이다.”
율주 스님은 호미로 나를 가리키고 계셨다. 순간 얼굴은 붉어졌고, 나란히 풀을 뽑던 도반 스님은 내 얼굴색이 심각하게 변해져 가는 걸 보고는,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 왔지만 귓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도반 스님이 자기가 대신해서 말씀드려도 되겠느냐고 물어 왔고, 난 무심결에 “그렇게 하세요” 하고 고개를 드는 순간, 사투리가 심한 도반 스님은 벌떡 일어서더니 곁에서 풀을 뽑는 율주 스님께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스님, 실례되는 말씀인데예. 한 말씀 드리겠습니더. 저기 있는 스님의 법명은 덕우라고 하는데예. 조금 전에 스님께서 늙은이라고 하셨다고 상당히 심각하게 생각하는 모양입니더.”
난 고개만 숙이고 있었고 이어지는 율주 스님의 말씀은 숙인 고개를 땅에 닿게 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랬었나. 아! 그럼 내가 사과하지. 자네의 이마가 벗겨져서 눈이 나쁜 내가 잘못 본 모양이다. 앞으로 자네를 늙지 않는 불로不老라고 불러주마”라고 하신 후 큰절 쪽으로 가셨다. 그때서야 옆에서 같이 울력하던 스님들도 조금씩 웃기 시작했고 그 도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열심히 풀을 뽑았다.
그리고 결제일 방장 스님의 법문이 끝나고 오후에 해청당 큰방에서 용상방을 다 쓰신 율주 스님께서는 옆에서 종이를 자르고 있던 나에게 커다란 붓글씨로 ‘불로不老 덕우’라고 크게 쓰시고 난 뒤 낙관까지 찍어 주셨다.
‘불로不老 덕우라…….’
그날 밤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덕우 스님 |
2006-10-09 오후 4: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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