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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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방이야기]도성당 시봉기
수계한 지 꼭 일년 만에 사제를 받아 도성당에 계시는 은사 스님 시봉을 물려주고 나니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다. 도성당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보름씩 돌아가며 맡게 되는 노스님 시봉 차례가 되어 앞서 시봉했던 장행자를 따라 도성당에 갔다.

노스님께 인사 말씀을 여쭙자마자 노스님이 코를 쥐시고 노발대발하시는데, 뭐라고 하시는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중간 중간에 ‘멍청이, 멍청이’라고 하실 때마다 장행자는 허리를 굽실거리며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하는 것으로 보아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모양이었다.
첫날부터 된통 진땀을 빼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장행자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전날 아궁이에 군불을 땠는데 다 때고 나서 무심결에 불구멍을 막고 오는 바람에 불이 꺼져서 밤새 냉방에서 주무셨다고 그러시는 거라고 했다. 코를 막고 하신 말씀은 ‘너는 콧구멍을 막으면 살 수 있냐’는 뜻이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노스님 말씀을 다 알아듣는지 신기할 뿐이었다.

처음부터 긴장한 덕분인지 일주일 동안은 가끔 실수를 해서 ‘멍청이, 멍청이’ 소리를 듣긴 했지만 별 탈 없이 지나갔다. 그날은 사시 공양 후에 감자 캐는 울력을 하고 ‘행자폭포’라고 부르는 불일폭포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데, 장행자가 “강행자님, 시간됐어요, 얼른 도성당에 가 봐요!”
해서 헐레벌떡 뛰어나와 시계를 보니 시봉 시간인 3시 30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고무신에서 타이어 타는 냄새가 나게 뛰어갔지만, 5분쯤 늦어서 벌써 노스님이 손수 가마솥을 닦고 계셨다.
“스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행주를 맡으려 하자 손을 뿌리치시며 “저리 가! 내가 할껴……” 하시며 떼미시는 것이었다. 노스님은 막무가내로 당신께서 솥을 닦으시고, 물을 붓고 불을 때시고는 청소까지 다 하셨다. 나는 스님 옆에 멀거니 서 있다가 돌아오고 말았다.

다음날은 10분쯤 먼저 도성당에 갔더니 노스님께서 마당에 난 풀을 매고 계셨다. “스님,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얼른 호미를 받으려니까 “가! 오지 말라니까 왜 와……” 하시며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마루 밑을 살펴보니 호미 한 자루가 보여서 시골 출신의 장기를 살려 호미질 하는 손이 안 보이게 풀을 매 나갔더니, 어느새 노스님께서 옆으로 오셔서 “햐! 잘 맨다. 햐! 잘 맨다. 행자, 고향이 어디여?”라고 물으셨다. 이때부터 겨우 화가 풀리셔서 보름간의 노스님 시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지난 해 9월 강원에 입방해서 곧 도성당에 계시는 은사이신 유나維那 스님을 시봉하게 되었다. 사형 스님께서 청소하고 군불 때는 것 등 시봉하는 법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셨지만, 왠지 은사 스님 앞에만 가면 온 몸이 굳어져서 비질도 잘 되지 않았다. 본래 속가에서 막내로 자라서 형 누나들이 하는 것만 보았지, 걸레 한 번 제대로 잡아보지 않고 자란 터라 더욱 어색했을 것이다.
시봉한 지 한 달쯤 지나서 스님방 청소를 하다가 문갑 위에 앉은 먼지를 턴다는 게 그만 자그마한 불상을 쳐 방바닥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두 동강을 내고 말았다. 인도에서 모셔 온 부처님이라고 은사 스님이 무척 아끼는 불상이었는데 머리 한 쪽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때마침 스님이 안 계셔서 엉겁결에 불상을 들고 시자 행자실로 달려가 접착제로 붙이니 감쪽같아서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는 잘 표시가 나지 않았다. 다시 제자리에 모셔 놓으려고 달려가니 스님께서 방안을 여기저기 살피고 계시다가 “보원아, 너 불상 못 봤니?” 하고 물으셨다. “스님, 죄송합니다. 사실은 제가……” 하고 불상을 드렸더니 받아 보시고는 “괜찮구나. 이 정도면 괜찮다” 하시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셨다. 이때부터 더욱 긴장이 되어 도성당에만 들어서면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그날은 난화분에 물을 주려고 방안에서 들고 나오는데 소매가 문고리에 걸리면서 난화분이 마루바닥에 나가떨어졌다. 얼굴이 벌개져서 마사토를 주워 담고 있는데, 방안에 계시던 스님께서 나오셔서 “다치지 않았어? 괜찮아, 그 화분 오천원이면 산다” 하시고는 바닥의 마사토를 주워 담으시고, 접착제로 화분 조각을 붙이시는 것이었다. 이때 하필 보경화 노보살님과 사평 보살님이 와서 달아오른 얼굴에 모닥불을 뒤집어 쓴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부산에 사는 보살님이 도자기 세트를 사오셨는데, 그 중에 크고 넓적한 청자가 하나 끼어 있었다. 그동안 퇴수그릇으로 써오던 목발우가 틈이 벌어져 물이 샌 적이 있던 터라, 스님은 마침 잘 되었다며 그 도자기로 바꾸시는 것이었다.
이 청자 대접이 고급스러워 보일 뿐 아니라 미끌미끌해서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어찌나 조심스럽게 되는지 퇴수를 비우고 새로 물을 떠올 때마다 끌어안고 다니다시피 했다.
하룻밤은 그 청자를 깨먹고 엉엉 우는 꿈을 꾸다 놀라 깨어나 쓴 웃음을 짓다가 잠든 적도 있었다. 예불 때마다 ‘부처님, 사고 좀 그만 치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한 가피가 있었던지 이번에 말짱한 퇴수 그릇을 사제에게 물려줄 수 있었다.

사소한 일로 아랫반 스님을 나무라는 나 자신을 보며 흠칫 놀랄 때가 있다. 은사 스님은 당신께서 가장 아끼시는 물건을 두 번씩이나 깨뜨린 나를 ‘다치지 않았어? 괜찮아’하시며 오히려 위로해 주셨는데, 내가 어떻게 별 것도 아닌 일로 다른 사람을 꾸짖을 수 있단 말인가.
보원 스님 | <지대방이야기> 중에서
2006-09-19 오후 2: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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