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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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숲길, 아늑한 불보살 품
[108사찰 생태기행]오대산 월정사
◇자장 스님이 문수보살 친견

신라 자장이 이 땅에 불보살이 상주하고 있다는 불국토(佛國土) 신앙을 세운 것은 선덕여왕 무렵이었다. 왕족 출신이었던 그는 중국 오대산에서의 신앙경험과 국태민안의 기원을 안고 귀국해 오대산을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곳으로 설정하였다.

자장이 굳이 오대산을 성지화한 것은 오대산이 고구려와의 접경지였기 때문이었다. 자장은 이곳을 성지화함으로써 어렵게 얻은 이 지역의 민심을 다독여 어렵사리 얻은 땅을 유지코자 했을 것이다. 지금 월정사의 자리는 자장이 문수보살 친견을 기도하며 머물렀던 모옥(茅屋)의 옛 자리로 전한다.

월정사로 가는 전나무 숲길


월정사 주변의 자연생태를 돌아보는 일은 일주문에서 시작하는 것이 통상이다. 활엽수를 수하에 거느린 전나무 숲길이 일주문부터 시작된다. 높이 30미터 안팎의 청장년 전나무들이 큰 절까지 숲터널을 만들고 있다.

월정사 주변의 전나무 숲은 역사의 숲이다. 일본강점기에는 동양척식회사가 반강제적으로 월정사 사찰림 일부를 매입해 벌채를 했고, 한국 전쟁 중에는 월정사와 함께 전화(戰火)에 휩싸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7억 평방미터에 달했던 월정사 주변의 산림축적이 일제 강점기 동안 2억 평방미터로 줄었다고 한다. 전쟁 중에 월정사는 칠불보전을 비롯해 17동 건물이 모두 잿더미가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숲도 많이 사라졌다. 숲길 여기저기 눈에 띄는 노거수들은 그때 용케 살아남은 나무들이다.

긴점박이올빼미 사진=이기섭 촬영


이 숲길 구간은 국립공원측에서 정기적으로 식생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구간이다. 이 구간의 주요 활엽수들로는 갈참나무, 말채나무, 고로쇠나무, 층층나무, 함박꽃나무, 물푸레나무, 신나무, 단풍나무, 딱총나무, 쉬땅나무, 난티나무, 붉은병꽃나무 등이 있는데, 쉬땅나무는 환경부에서 지정한 식물구계학적 특정종(3급)이다.

숲은 소리와 함께 숲이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이 모두가 숲속에 사는 신령들이다. 전나무 숲을 돌아 흐르는 월정천은 비로봉(1,563미터)과 두로봉(1,422미터) 사이의 여러 계곡에서 발원한 남한강의 상류이다.

월정천의 기반암은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이다. 반야교에서 금강연(金剛淵)을 지나 일주문에 이르는 구간은 이들이 부숴진 자갈과 바위가 있어 계류성 어종들이 사식하기 좋은 조건을 보이고 있다. 옛 기록에 금강연에 열목어가 서식하고 있다고 했지만, 근래 보고된 바는 없다.

금강모치


이 수역에서 관찰되는 민물고기로는 우리나라 고유종인 금강모치, 참종개, 새코미꾸리, 꺽지, 퉁가리 등을 비롯해 돌고기, 새미, 미꾸라지, 대륙종개 등이 있다.

금강모치는 이 가운데 우점종으로, 월정사 주변이 금강모치의 국내 주요 서식처임을 보여준다. 금강모치는 강원도의 한강 수계와 금강 상류에만 서식한다. 용존산소량이 많은 산간 계류의 자갈과 바위가 있는 곳에 서식하면서 수서곤충이나 작은 갑각류를 먹고 산다.

월정천에 3급수 어종인 미꾸라지가 나타나는 것은 무분별한 방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미꾸라지는 이끼조차 끼지 않는 1급수 월정천에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모나지 않은 자연지형 배려한 가람

월정사가 앉은 자리는 동대 만월산 정기가 내려와 월정천 앞에서 모인 자리이다. 그 자리에 적광전(寂光殿)을 본전으로 앉히고 좌우로 전각들을 펼쳤다. 이런 가람배치는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를 중심축으로 하는 전통배치와는 조금 다르다. 자연지형을 우선한 배려이다. 월정사의 분위기가 모나지 않고 둥근 느낌을 주는 것도 그런 데서 비롯된다.

적광전은 한국전쟁 후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외부기둥들은 주로 소나무로, 내부기둥은 주로 전나무로 썼다. 전나무를 내부기둥으로 쓴 것은 소나무보다 재질이 좀 무른 까닭이다.

누룩뱀


적광전 토방에는 구름 무늬가 있는 운문전(雲紋塼)이 깔려 있다. 그렇게 해놓으니 적광전은 자연적으로 ‘구름 위의 집’ 즉, 천상의 보궁이 되었다.

화마(火魔)는 목조건축물의 최대의 환경재앙이다. 화마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적광전 용마루 좌우에는 치미를 올려놓고, 별당 용마루 좌우에는 취두를 올려놓았다.

근래에 적광전 앞에 팔각구층석탑 주위에다 국화과 식물인 벌개미취를 심었다. 탑이나 석등과 같은 석조물 주위에 화단을 조성하는 것은 일본식 조경법이다.

경내에 세열단풍나무(공작단풍), 금송, 일본목련, 노란해당화 등 원예종 조경수를 심은 것도 그렇거니와 나무들마다 가위질을 해서 인공적 모형을 만든 것도 상투적인 일본식 조경이다.

전각 뒤 만월산 자락은 붉은 수피가 인상적인 육송들이 자리하고 있다. 산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전각과의 사이에 머리 깎듯 내화수림대를 조성했다.

용금루를 나오면 그윽한 전나무숲을 또 만난다. 오로지 전나무로만 이루어진 단순림이다. 1929년 조선불교 중앙교무원에서 낸 <조선사찰 31본산> 사진첩 ‘월정사’ 편에는 이 전나무 숲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월정사 전나무숲의 역사를 단정짓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월정사 부도전은 월정사에서 상원사 가는 길로 5백미터 가량 떨어진, 아늑한 전나무 숲속에 자리잡고 있다. 부도전 입구에 멸가치 군락이 융단처럼 깔려있다. 얼핏 보아 머위를 닮은 멸가치는 습하고 그늘진 곳을 좋아하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산중 절집에서는 봄에 어린 순을 캐서 나물로 먹거나 삶아서 묵나물로 만들어두었다가 가을이나 겨울에 무쳐 먹었다.

속새


부도전 주변은 전나무 군락이 몇 그루의 소나무와 함께 병풍숲을 이루고 있다. 전나무의 수관은 소나무와는 달리 지형이나 토양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어딜 가나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수관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런 전설도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먼 옛날 오대산에 소나무와 전나무가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 고려말 어느 때 북대암에 머물고 있던 나옹선사는 매일같이 콩비지를 월정사 부처님 전에 공양 올렸다. 어느 날 비지를 들고 숲을 지나는데 소나무 가지에 얹혀있던 눈이 떨어져 콩비지를 덮어버렸다. 나옹이 소나무에게 ‘부처님 은혜로 이 산중에 살거늘 이 무슨 무례한 짓꺼리냐 !’며 호통을 쳤다. 그 후로 소나무는 스스로 오대산을 떠나고 전나무만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부도전 앞으로 446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있다. 1960년대 군작전도로로 개설된 이 길은 상원사 앞을 지나 홍천군 내면 명개계곡으로, 오대산을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다. 그러나, 비탈이 가파르고 험난하여 개통 후 거의 방치되다시피 버려져 현재 효용가치가 전혀 없는 상태이다. 이에 환경단체들은 방치된 도로가 오대산 환경을 훼손 오염시키므로 폐쇄하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 비구니 선방 자리

오대산의 오대신앙은 자장 이후 이 산을 찾은 보천과 효명 두 수도자에 의해 전파되었다. 월정천을 사이에 두고 부도전 건너편에 남대 지장암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열린 비구니 선방이 이곳에 있다. 지장암은 전나무 대신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있다.

지장암 들머리에는 스님들이 인공식재한 것으로 보이는 속새가 밭을 이루고 있다. 속새는 고생대 데본기에 전 지구를 뒤덮었던 원시식물로, 오대산의 습하고 기름진 토양에서 자주 관찰되는 식물이다. 줄기는 속이 비어 있으며, 마디와 능선이 있다.

지장암 마당엔 자갈이 깔려있다. 자갈마당은 일본 막부시대 쇼군의 집에 닌자가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깔면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자갈을 깔아두면 발자국소리가 요란해서 침입자를 쉽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대산엔 다양한 파충류들이 살고 있는데, 누룩뱀도 그 중 하나이다. 뱀들은 먹이를 사냥한 후 배가 부르면 따뜻한 곳을 찾아 몸을 데운다. 그래야 소화가 잘 되기 때문이다. 지장암 자갈마당에 뱀들이 자주 출몰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월정천 금강연


누룩뱀은 길이가 1미터 남짓한 중형 파충류이다. 지역에 따라 크기와 무늬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지만, 황갈색 몸통에 불규칙한 검은색 가로띠가 여러 개 나있다. 머리는 비교적 크고 긴 편이며, 주둥이는 폭이 넓고 둔하다. 독성은 약하지만 주의를 해야한다.

다시 길을 건너오면 동대 관음암까지 숲길이 나 있다. 등산객도 관광객도 찾지 않는 호젓하고 그윽한 숲 속에 자동차 길이라니.... 이 길은 원래 한 두 사람 겨우 비켜지나갈 좁은 오솔길이었으나, 관음암에서 나무 대신 기름과 같은 화학연료로 에너지원을 바꾸면서 그것을 실어나르기 위해 부득이 자동차길을 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1.5킬로미터의 숲길은 포장과 비포장길이 반반이다. 경사진 곳에만 선택적으로 포장되어 있다. 숲속의 포장이 반환경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 또한 비탈길의 토양유실을 막기 위한 고육책의 하나로 부득이 선택된 것이다.


◇멸종위기 긴점박이올빼미 관찰

관음암으로 가는 숲길 주변은 활엽수 바다 가운데 우람한 전나무들이 돛대마냥 듬성듬성 서 있는 형태이다. 여우버들도 관음골 식솔 가운데 하나이다. 여우는 사라지고 여우버들만 오대산에 남았다.

여우버들은 주로 한강 이북의 높은 산 계곡 주변 암석지대에 서식하는 버드나무이다. 키는 3미터 안팎이며, 작은 가지는 녹색을 띤다. 잎은 가지에 어긋나는데, 길이가 5센티 안팎의 타원형이다. 다른 버드나무 잎에 비해 폭이 넓고 두꺼운 편이다. 잎 표면은 녹색이지만, 뒷면은 흰빛을 띤다.

숲바닥에는 관중들이 곳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관음골은 생태가 비교적 튼실해서 관중의 키가 80센티에 이른다. 새의 깃털처럼 생긴 잎은 밝은 초록색을 띠고 있지만, 만져보면 딱딱한 가죽질이다. 내한성이 강해서 절집의 조경에 유용하게 쓰일만도 하건만, 아직은 별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오대산은 자연생태계가 비교적 튼실하여 35종이나 되는 다양한 조류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이번 조사에서 월정사 주변에 서식하고 있는 조류는 모두 28종으로 파악되었다. 환경부 지정종으로는 오색딱다구리, 매사촌, 검은등뻐꾸기, 벙어리뻐꾸기 등이 확인되었고, 관음암에서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2급인 긴점박이올빼미가 관찰되었다.

긴점박이올빼미는 몸 길이가 50센티를 넘는 중대형 올빼미이다. 올빼미보다 훨씬 몸집이 좋고, 밝은 가슴과 배에 세로줄 무늬가 있어서 긴점박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둥근 얼굴은 회백색이며, 이마는 진한 갈색이다. 주로 밤에 사냥을 하지만, 간혹 흐린 날에도 사냥에 나서 들쥐, 작은 조류 등을 잡기도 한다. 주로 백두산, 설악산 등의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보기 드문 텃새이다.
김재일 | 사찰생태연구소장
2006-07-03 오후 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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