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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는 설 자리 잃어가고…
[108사찰생태기행](58) 강화 정족산 전등사
강화는 속리산에서 올라온 한남정맥이 서해를 건너 방울 튄 섬이다. 그 섬의 동남쪽에 자리한 정족산(鼎足山)은 해발 222m로, 마니산의 한 줄기가 북동쪽으로 뻗어 내려 솟구친 세 봉우리의 산이다. 산 이름은 산의 모양새가 발이 셋 달린 가마솥[鼎]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었다고 했다.

정족산 품안에 자리한 전등사(傳燈寺)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81년 아도화상이 진종사(眞宗寺)라는 이름으로 초창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일부에서는 후대의 윤색이라고 하지만, 아도가 신라 땅인 선산 모레네집에 기숙하면서 불법을 전하고 도리사를 창건한 것을 보면 이해가 간다.

전등사 전경


전등사는 산문이 따로 없다. 정족산 능선을 이은 삼랑산성(三郞山城)의 성문들이 산문 역할을 해주고 있다. 산 이름을 따서 정족산성이라고도 하는 삼랑산성의 둘레는 총 2,914m로, 4개의 성문이 전등사를 가운데 두고 동서남북에 나있다.

동문으로 가는 차도 주변에는 키 큰 소나무들이 잡목숲에 우뚝우뚝 자리해 있고, 그 아래로 진달래가 때맞춰 만발이다. 관목인 진달래는 소나무와 궁합이 잘 맞아 정족산 곳곳에서 소나무와 함께 군락을 이루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내걸어둔 화사한 연등과 썩 잘 어울린다.

외국인들 가운데는 우리나라 꽃으로 무궁화보다 진달래를 더 쉽게 떠올리는 이들이 있다. 놀랍게도 진달래의 영어이름이 ‘Korean rosebay’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추위에 강하고, 싹이 잘 트고, 토질을 가리지 않는 것은 꼭 우리의 민족성을 닮아있다.

전등사 은행나무


동문길과 남문길이 만나는 곳에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수령이 각각 5,6백년 되는 이 나무들에 애틋한 전설이 있다.

조선 말, 관아에서 해마다 전등사에다 은행을 따다가 공출토록 했는데, 해가 갈 수록 공출을 요구하는 양이 늘어났다. 이에 추송대사가 은행이 열리지 않으면 공출의 고통도 없으리라 하고는 도술을 부려 은행이 열리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즉, 암나무를 숫나무로 바꿔놓은 것이다. 그 후부터 전등사에 대한 공출 탄압도 그쳤다고 한다.

암나무가 수나무로 변하는 일은 생물학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 이야기는 나무가 인간을 위해 도움을 베풀고, 또 인간은 그러한 나무를 귀중하게 보호해 온 우리의 전통을 잘 보여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은행나무들은 중국 양자강 하류 천목산(天目山)에서 자라던 야생의 나무를 가져다 심은 그 후손나무들이라고 한다. 은행나무는 맹아력이 높아서 늙은 나무의 뿌리 부근에서 움가지가 돋아나고 이것이 큰 나무로 되기도 한다. 전등사 은행나무도 움가지를 많이 키우고 있다.

일제강점시대 전등사 전경


대조루 앞에는 큼지막한 주엽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어른 키 높이에서 두 줄기로 갈라져서 높이가 10미터 가까이 자랐다. 주엽나무는 낙엽활엽수 교목으로, 줄기와 가지에 길고 예리한 가시가 나 있다. 전등사의 주엽나무는 가시가 성글어서 그렇게 위협적이지는 않다. 나무도 늙으면 남을 헤치는 가시를 떨구어내는 법이다. 주엽나무는 초여름에 황록색 꽃을 피우고, 가을에 한뼘 가량의 비틀린 꼬투리 열매를 맺는다. 한방에서는 가을에 가시와 열매를 따서 말려 풍을 막는 약으로 쓰는데, 전등사의 주엽나무도 스님들이 약재를 얻기 위해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전등사 모습은 <조선사찰 31본산 사진첩>(1929년)에 담겨진 옛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대웅전과 대조루 등 몇 동의 전각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새로 들어선 것들이다.

그러나 횡적인 가람배치 구조에는 변함이 없다. 전각들을 ‘좌우로 정렬’시켜서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였다. 오른쪽에서부터 대웅보전, 향로전, 약사전, 명부전이 같은 석단에 자리하고, 그 아랫 공간에는 적묵당, 종각, 종루, 대조루, 종무소, 요사채 등이 자리하고 있다.

개별꽃


대웅보전 네 군데 귀공포에는 나부(裸婦)의 상이 조각돼 있다. 이 나부상에는 대웅보전을 짓던 도편수와 마을 주모 사이에 얽힌 전설이 있지만, 그건 말 지어내기 좋아하는 이들의 우스개 소리일 것이다. 이 상은 길상과 벽사를 상징하는 원숭이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법주사 대웅보전 앞의 원숭이상, 선암사의 원숭이 석주, 강화 선원사 절터에서 발굴된 원숭이상 등등 절집에는 원숭이와 관련된 조각이 여러 곳에 남아있다.

대조루는 멀리 바닷물의 들고남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대조루에서 굽어보면 한강과 서해바다가 만나는 강화해협 염하(鹽河)가 멀리 내려다 보인다.

그러나, 좀더 불교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하루에도 팔만사천번씩 파고가 치는 변화무상한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스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전등사 소나무숲


대조루 옆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단풍나무로 추정되는 단풍나무가 있다. 관목처럼 줄기 아래쪽부터 부챗살처럼 줄기들이 뻗어나가서 마치 느티나무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몇 그루의 단풍나무가 한자리에 엉켜서 자란 것임을 알 수 있다.
종루 옆에 그늘이 좋은 느티나무가 있고, 나무 의자가 빙 둘러 있어서 탐방객들이 잠시 숨을 돌리기도 한다. 앉아서도 경내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절묘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자나무이다. 정자나무는 그늘을 만들어주는 넓은 수관(樹冠)을 갖고 있어야 하고, 벌레가 꾀지 않아야 하고, 수명이 길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절 안에도 느티나무가 많지만, 의자나 평상을 놓아두고 정자나무로 삼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전등사는 좋은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정족산은 산체가 작고, 주변의 산들과 이어지지 않은 독산이다. 그리고, 순례객들과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사철 끊어지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식생이 빈약하다.

4월 중순이면 아직 봄꽃이 이르긴 하지만, 꽃을 피운 정족산의 초본은 열 손가락 남짓하다. 제비꽃 종류와 개별꽃, 현호색 들이다.

우리나라의 제비꽃 무리는 모두 48종이나 되며, 모두 여러해살이 풀이다. 이들을 색깔로 나누면 흰색, 노란색, 보라색, 자주색 등이다. 줄기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도 나눈다. 전등사 주변에는 졸방제비꽃, 알록제비꽃, 털제비꽃, 남산제비꽃 등이 관찰되었다.

졸방제비꽃은 줄기가 있는 제비꽃이다. 주로 산등성이에서 자라며 전체에 흰색의 털이 약간 있다. 잎은 심장형이며, 잎끝이 뾰족하다. 꽃 색깔은 희거나 연한 자주색이라 청초한 느낌을 준다.
개별꽃은 꽃 모양이 마치 별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 인삼 뿌리를 닮은 작은 뿌리를 가진 여러해살이풀이다. 10센티 남짓한 줄기 끝에 1개의 흰색 꽃이 위를 향해 핀다. 다화개별꽃은 줄기 끝에 3~5송이의 꽃송이가 달리는 것이 다르다. 꽃은 작지만 무리지어 피기 때문에 아름답다.

전등사 느티나무


정족산은 늙은 소나무와 젊은 활엽수가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혼효림이다. 활엽수로는 참나무 종류를 비롯하여 비목, 서어나무, 느티나무, 고로쇠나무, 엄나무, 귀룽나무, 소사나무, 덜꿩나무, 산딸나무, 오리나무, 층층나무, 산초나무, 생강나무, 노린재나무, 단풍나무, 때죽나무, 붉나무, 산뽕나무, 병꽃나무, 작살나무, 쪽동백, 진달래, 싸리나무, 국수나무, 노간주나무, 개옻나무, 쥐똥나무, 수양버들, 아까시 등이 있다.

비목은 동문과 남문 사이의 숲에 작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비목은 녹나무과에 속하는 난대성 낙엽교목으로, 전등사 비목은 남한에서는 가장 북쪽에서 자라는 비목이다. 비목은 암수가 다른 나무로, 봄에 담황색의 꽃이 피고 가을에 붉은 열매가 익는다. 수피가 황백색에 가까워 ‘보얀목[白木]’이라고도 하며, 일본에서는 나무못으로 만들어 목조건축에 쓴다고 해서 ‘가나꾸기노끼(金釘木)’라고 부른다.

소사나무 종류 가운데 키가 크고 열매가 굵은 것을 왕소사나무라고 한다. 전국에 흔하지 않은 왕소사나무가 남문에서 서문 사이 구간의 숲에 자리하고 있다. 키가 무려 15미터나 되고, 가슴 높이 줄기 지름이 60센티에 가까운 노거수이다. 현재 수령이 160년으로 추정되며, 보호수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정족산의 소나무들은 재질이 우수하지는 않지만, 강화도의 역사적 풍상과 함께 해온 나무이다.

군락으로는 대웅보전 뒤편과 남문 밖 주차장께 솔숲이 인상적이다. 대웅보전 뒷숲을 수행의 숲이라고 한다면 남문 밖 솔숲은 탐방객들을 위한 휴식의 숲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족산 소나무는 전성시대가 지났다. 활엽수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동문에서 달맞이고개 구간에만 솔씨가 떨어져서 자란 어린 치수들이 보일 뿐, 거의 전역에서 자연발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대로 자연천이(遷移)에 맡겨 둘 것인지, 아니면 식재라도 해서 소나무 산으로 계속 가꾸어 갈 것인지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4월 중순의 전등사 숲에서는 아직 여름철새들이 관찰되지 않고 있다. 다만, 나그네새인 힝둥새가 남문 안쪽 연못가에서 관찰되었다. 힝둥새는 동남아에서 겨울을 보내다가 봄가을로 우리나라를 지나 북상하는 새로, 남쪽에서 해변을 따라 북상 하던 중에 잠시 전등사 숲에 들른 것으로 추측된다.

정족산의 포유류로는 탐문 결과 고라니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현재의 생태계로 보면 고라니가 정족산에서 살아남기란 참으로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남문 안쪽에 수양버들이 지키고 있는 큰 연못 하나가 있는데,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방치 상태에 놓여있다. 생태연못으로 다시 조성해서 정족산의 비오톱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글·사진=김재일(사찰생태연구소장)
http://cafe.daum.net/templeeco
글·사진=김재일 | 사찰생태연구소장
2006-04-21 오후 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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