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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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ㆍ나무 어우러져 신심 꽃피우는 자연도량
[108사찰 생태기행](56)제주 한라산 관음사
해발 1950m인 한라산은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한라산은 화산 폭발과 함께 단번에 오늘날의 모습을 이룬 것이 아니라 시기적으로 5단계의 과정을 거쳐서 오늘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제주도 지형의 특징인 곶자왈, 오름, 용암동굴 등도 오랜 풍화나 침식작용의 결과가 아니라 각기 시차를 둔 화산활동의 과정으로 생긴 것이다. 한라산 중산간지대에 분포한 곶자왈은 한라산만의 특수형 지형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 본사인 관음사(觀音寺)도 한라산 북사면 곶자왈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관음사는 한라산 곶자왈지대에 자리잡았다.


제주도 불교의 남방전래설은 여러 정황이 나오긴 하지만, 이를 고증할 만한 자료는 아직 없다. 제주 불교의 본사인 관음사의 창건사마저도 오리무중에 있다. 숙종 때 제주 목사였던 이형상(李衡祥)에 의해 훼철된 후 20세기 초에 이르러 비구니 안봉려관(安逢麗觀) 스님이 그 폐사지에다 법정암(法井庵)이라는 이름으로 관음사를 중창했다고 한다.

관음사는 제주에서 자동차로 불과 10여분 거리에 있다. 산천단(山川壇)은 관음사 가는 길목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산천단은 제주 목사가 하늘에 제를 올리던 제단으로, 주변에 천연기념물 제160호로 지정된 여덟그루의 곰솔이 자라고 있다. 수령 6백년에 높이가 30m 안팎, 둘레가 20m 안팎인 노거수들이다. 제주도에서는 가장 큰 나무들로 알려져 있다.

관음사는 산천단에서 불과 2km이다. 주차장에 내리면 일주문 너머 멀리 한라산의 흙붉은오름(1391m)과 사라오름(1338m)이 아슴슴 보인다. 경칩이 한참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능선들은 흰눈으로 망또를 쓰고 있다.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석단에 불상이 모셔져있다.


일주문에서 경내에 이르는 길 좌우로 편백과 삼나무가 숲을 이루고, 돌담의 석단에는 불보살상들이 도열해 있다.

화산섬인 제주도는 어딜 가나 돌이 많다. 관음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화산활동으로 생긴 크고 작은 현무암들이 경내외에 지천으로 깔려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도 모두가 현무암들이다.

그리고, 경내의 보도석, 담장, 계단, 석축, 전각의 주춧돌까지도 재료가 모두 현무암이다. 진입로에 도열된 수 많은 불상들을 비롯하여 근래 조성한 만불단과 벽사의 방사탑도 모두 현무암이다.

관음사를 세운 안봉려관 스님이 관음기도를 했다는 해월굴도 화산활동으로 생긴 현무암 암굴이다. 제주도에서는 화산활동으로 생긴 작은 암굴이나 함정 등을 ‘궤’라고 한다.

관음사 곶자왈


종무소 옆에 큼지막한 왕벚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관음사 주변에는 왕벚나무를 비롯하여 올벚나무와 산벚나무 등 벚나무 종류들이 많이 자생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것이 왕벚나무이다.

현재 관음사에서부터 해발 1000m에 이르는 구간은 어린 나무에서부터 200년생으로 추정되는 노거수 왕벚나무들이 자생하고 있어서 관음사 숲이 일찍이 세계적인 왕벚나무 원산지로 인정 받고 있다.

또 하나, 경내에서 눈길을 끄는 노거수로는 밤나무가 있다. 수령 1백년에 가까운 밤나무들이 경내 곳곳에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관음사 밤나무는 사찰에서 심어 가꾼 밤나무 가운데 가장 크고 나이가 많은 밤나무이다. 밤나무마다 갑옷처럼 두르고 있는 고착지의류(固着地衣類:Crustose lichenes)만으로도 연륜을 느끼게 한다.

관음사 왕벚나무


관음사는 중산간 곶자왈지대에 터를 잡고 있다. 곶자왈이란 제주도 방언으로, 크고 작은 나무와 돌들이 어지럽게 헝클러진 숲을 가리킨다. 그러나, 식생적인 의미보다는 지형적인 의미가 더 강해서 ‘숲덤불로 뒤덮힌 돌밭’으로 이해된다.

곶자왈은 용암이 크고 작은 돌과 바위로 쪼개지면서 돌밭을 이룬 곳으로, 본래 토양(흙) 한 줌 없는 척박한 지대였다. 이곳에 이끼류가 처음 들어와 수분을 저장하면서 초본들이 들어왔고,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초본들이 죽고 썩어서 얇은 부엽토층을 만들어 돌밭을 덮으면서 목본류들이 들어왔다. 그러기 때문에 곶자왈의 숲은 다른 지역의 숲에 비해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고서야 이루어진 소중한 숲이다.

관음사 주변과 국립공원 관음사지구 탐방로 일대는 한라산 북사면의 곶자왈지대이다. 관음사를 둘러싼 드넓은 활엽수림이 모두 곶자왈이다. 관음사는 바로 그 곶자왈 돌밭을 터 닦아 세운 절이다.

관음사 송악줄기


한라산 식생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수직분포대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해발 600m에서 1500m까지 중산간지대는 온대림이 자리한다. 관음사 주변과 이어진 국립공원 탐방로 일대도 난대림보다는 낙엽지는 온대활엽수가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경내외에서 관찰되는 난대상록수로는 송악, 사스레피나무, 굴거리나무, 동백나무, 꽝꽝나무 등 몇 종에 불과하고 그나마 개체수도 적다.

송악은 다른 나무들이 낙엽을 떨구기 시작하는 가을녘에 꽃을 피우고 겨우내 열매를 만들어 새들에게 보시를 해준다. 그러나, 덩굴식물인 까닭에 나무를 칭칭감아 고사시키기도 한다.

특이한 난대식물로는 희귀종인 천량금이 관음사 외곽 숲에서 관찰되었다. 키가 작아서 마치 초본처럼 보이는 천량금은 2003년 제주도에서 처음 발견된 마에사속(Maesa屬)의 아열대성 목본류이다. 학계에서는 제주도가 천량금 분포의 북방한계선으로 추정하고 있다. 봄이 무르익을 즈음이면 황백색 꽃이 앙증맞게 핀다.

먼지버섯


이 밖에 온대 활엽수로는 서어나무를 비롯해 개서어나무, 졸참나무, 굴피나무, 덜꿩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산수국, 생강나무, 가막살나무, 단풍나무, 박쥐나무, 비목나무, 보리수나무, 윤노리나무, 청미래덩굴 등이 극상의 숲을 이루고 있다. 바닥에는 제주조릿대가 우점으로 나타난다.

대웅전과 나한전 지역 사이에 우람한 몸집을 자랑하는 곰솔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씨를 받아두어도 좋을 만큼 탐이 나는 곰솔이다.

한라산의 소나무는 적송과 곰솔로 크게 나누어진다. 곰솔은 대개 800m 이하에서 나타나고, 적송은 주로 해발 1,400m 이하의 능선부에서 자라고 있다. 얼마 전, 금강송에 버금가는 질 좋은 소나무 숲이 한라산 정상에서 관음사 방향으로 2km 가량 떨어진 해발 1200m 주변 에서 발견되어 주목 받은 적이 있다. 수령 40~50년생인 이 소나무들은 우리나라 소나무의 남방한계선에서 자랄 뿐만 아니라 자연적 성장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유전적 보존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복수초


관음사 주변과 국립공원 탐방로 일대에는 야생화들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복수초를 비롯해 현호색, 개별꽃, 족도리풀, 봄까치꽃, 노루귀, 만주바람꽃, 개구리발톱꽃, 긴잎제비꽃, 노란제비꽃, 족도리꽃, 남산제비꽃, 냉이꽃, 꽃마리, 자주괴불주머니 등이 매년 3월을 전후하여 꽃봉오리를 터뜨린다.

복수초는 천왕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군락을 이루며 황금 융단을 깔고 있다. 복수초는 봄이 오기도 전에 눈 속에서 가장 먼저 핀다 하여 원일초(元日草) 또는 설연(雪蓮)이라고도 한다. 꽃은 윤기가 나는 노란색이며, 늦봄까지 연이어 핀다. 번식력도 강하고, 반음지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사찰 경내외 노지에 심어두면 조경적 가치도 있다.

따뜻한 해양성 기후에 영향을 받아 양치류와 난초과 식물들이 죽지 않고 파랗게 겨울을 난다. 비비추난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경내를 벗어난 숲속에서 이따금 관찰되는 비비추난은 여러해살이로, 잎이 비비추를 닮았다. 일엽초처럼 한 뿌리에 잎이 한 장씩만 돋는데, 봄이 좀더 무르익으면 거기서 꽃대 하나가 10개가 넘는 작은 꽃들을 조롱조롱 피운다.

비비추난


관음사와 국립공원 관음사지구 탐방로 숲에선 버섯들도 다양하게 관찰되고 있다. 먼지버섯도 관음사 생태계의 한 식솔이다. 식용은 못하지만, 겨울인데도 꽃같은 자태로 눈길을 끈다. 크기는 3센티 안팎이며, 회갈색을 하고 있다. 처음엔 공 모양으로 땅 속에 반쯤 묻혀 있다가 자라면서 두껍고 단단한 외피를 뚫고 몸체가 나온다. 몸체 속에는 포자가 가득 차 있는데, 주머니 같은 공이 터지면서 먼지 같은 포자가 폴폴 나와서 바람에 흩날린다.

아직 때가 일러 여름철새는 보이지 않고, 관음사 경내외에서 관찰되는 조류로는 방울새를 비롯한 텃새들이 주류를 이룬다. 방울새는 몸 길이가 15cm 가량되는 되새과의 조류이다. 몸색깔은 전반적으로 암갈색을 띄고, 날개 안쪽은 노란색, 꼬리는 검은 색이다. 큰 씨앗을 깨뜨리고 쉽게 부리가 짧고 뭉툭하게 생겼다. 동요에 나오는 바로 그 새이다.

관음사와 국립공원 관음사지구 탐방로 숲에서 노루의 발자국이나 배설물을 찾아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뿐만 아니라 가끔 노루들이 나타나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

한라산 노루는 주로 해발 1,600m 이상 지역에 서식해 왔으나, 당국의 노루 보호정책으로 해가 갈 수록 개체수가 늘어나 근래에 와서는 중산간지대에서도 쉽게 눈에 띈다. 현재 대략 3000마리 정도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매년 자동차에 치어 죽는 노루 숫자만도 50마리를 웃돈다고 한다.

곶자왈 지대는 토양층이 극히 얕고 지하에 크고 작은 돌들이 두껍게 쌓여 있기 때문에 지하수 함수량이 매우 낮다. 비가 와도 스펀지 같은 지하로 빠져버리기 때문에 육지에서 흔히 보는 약수터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관음사에는 경내에 물을 담은 영지(影池)가 널찍하니 조성되어 있다. 인공으로 조성한 이 영지는 네모난 방지(方池)로, 분수가 끊임없이 물줄기를 쏘아올리고 있다.

관음사의 성역화사업은 일개 단위사찰의 불사가 아니라 제주도민이 함께 하는 국사(國事)이다. 처처소소에서 삽질을 하기 전에 한번더 심사숙고하는 친환경적 불사가 되기를 기대한다.

http://cafe.daum.net/templeeco
글·사진=김재일 | 사찰생태연구소장
2006-03-15 오전 1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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