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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해남은 봄이 바다에서 올라와 첫발을 올려놓는 남도땅이다. 두륜산은 호남정맥에서 갈려져 나온 한 지봉이다. 대흥사는 바로 그 두륜산 기슭에 자리잡은 고찰이다.
대흥사 창건연기(創建緣起)가 몇몇 문헌에 단편적으로 실려 있으나, 내용에 있어서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공통분모는 신라가 통일하기 전에 신라 스님들이 내려와 대흥사를 창건했다는 점이다. 창건 후 대흥사가 역사에 우뚝 선 것은 선조 때 서산대사가 이곳을 삼재가 미치지 않는 곳이라 하여 자신의 의발(衣鉢)을 남기고부터이다.
대흥사의 들머리는 구림리(九林里)이다. 이름 그대로 예전엔 산첩첩 물첩첩 했던 동네다. 구림리 매표소에서 대흥사까지는 2.5㎞, 장춘골(長春) 개울을 따라 호젓한 숲길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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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장춘골은 구림리를 벗어나면서 삼산천이라는 이름으로 서해바다로 흘러든다. 길이는 짧지만 오염원이 없어서 갈겨니, 검정망둑, 꺽지, 돌고기, 점줄종개, 자가사리 등등 다양한 어종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장춘골 숲길을 걷다보면 곳곳에서 편백나무숲, 삼나무숲, 동백나무숲을 지나게 된다. 편백과 삼나무는 일본에서 건너왔지만, 우리 나무들과 천연덕스럽게 잘 어울려 있다.
대흥사 동백숲은 선운사와 백련사 동백의 유명세에 가려서 알아주는 이는 적지만, 아름드리 동백들이 하늘이 보이지 않게 울울창창하다. 지난 겨울 잦은 폭설로 인해 가지가 찢어진 나무들이 곳곳에 눈이 아프게 들어온다. 그런 가운데서도 몇 송이씩 꽃을 피워내고 있어서 가상하고도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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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교를 지나 경내까지는 비포장 흙길이라 걷는 즐거움이 있다. 부도전 주변에 남아있는 몇 그루의 노송은 두륜산 소나무의 마지막 세대들이다. 한때 두륜산에도 소나무 전성시대가 있었다. 두륜산의 소나무는 적송과 곰솔 두 종류인데, 특히 10여년 전 솔껍질 깍지벌레에 의해 회생불가의 피해를 입고, 졸지에 두륜산의 희귀종이 되었다.
운학교를 건너면 길옆 왼쪽 동백숲 속에 큼지막한 웅덩이가 있다. 산개구리들이 벌써 깨어나 알들을 낳아놓았다. 산개구리는 양서류 가운데 맨먼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대흥사의 가람배치는 금당천을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다. 북쪽에는 대웅전과 응진전과 침계루 등이 있고, 남쪽에 천불전과 용화당과 표충사와 박물관이 있다.
금당천에 걸려 있는 심진교를 건너면 침계루이다. 얼마 전에 개와(改瓦)를 했는데, 쓸만한 옛 기와를 일일이 골라서 다시 지붕 위로 올렸다. 새 기와와 헌 기와가 천연덕스럽게 잘 어울린다.
무염지 조경은 겉멋이 들어가서 자연스러움이 덜하다. 연못가에 세우고 눕혀놓은 바위들과 연못 가운데 박아놓은 분수 등이 모두 겉멋이다. 이는 주로 대도시의 졸부와 관공서 정원 연못의 정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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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는 임진왜란을 당해 분연히 일어난 서산대사의 위국충정을 기리는 사당이다. 그런데, 이 반왜(反倭)의 성지에 영산홍류를 심은 것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영산홍은 일본인들이 오랫동안 개량하고 육종한 일본철쭉이다. 우리 진달래나 철쭉에 비해 꽃이 현란하고 자극적이다.
표충사 앞을 지나면 산행로가 세 갈래로 나누어진다. 진불암-상원암-남미륵암을 거쳐 두륜봉으로 가는 길, 천년수와 만일암터를 지나 만일재로 넘어가는 길, 북미륵암을 지나 오심재에서 고계봉으로 가는 길이 그것이다.
일지암 가는 길에 어디선가 멋쟁이새 몇 마리가 나타나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일지암을 안내하고 있다. 멋쟁이새는 참새보다 조금 크고, 부리는 뭉툭하고 튼튼하다. 분홍색과 오렌지색 등등 다양한 색으로 화장을 하고, 상록수 덤불이나 관목 사이에 살면서 아름다운 휘파람 소리를 낸다. 이름 그대로 집에서 기르는 애완조만큼 아름답다.
동백숲을 좋아하는 동박새들도 두륜산의 조류 가족이다. 참새보다 작은 동박새는 보호색인 초록색으로 치장되어 있다. 주로 상록활엽수림에서 살면서 곤충이나 거미 등 작은 동물을 잡아먹고 산다. 동백꽃이 피기 전까지는 가끔 절 주변으로 내려와 헌식대에 놓인 음식을 시식하고 간다.
일지암(一枝庵)이라는 이름은 선사가 ‘뱁새는 항상 한 마음으로 살기 때문에 나뭇가지 하나만 있어도 평안하다(巢於深林不過一枝)’는 한산시(寒山詩)에서 따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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뱁새로 불리는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생태적으로 나뭇가지보다는 관목이나 덤불을 좋아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일지암은 산중에 있어서 붉은머리오목눈이를 보기 어렵다. 뱁새 대신 앞가슴이 붉은 곤줄박이 몇 마리가 암자 주변을 포르륵 날아다니고 있다.
일지암에 와서는 유천(乳泉)의 물맛을 보고가야 한다. 유천은 뒷숲에서 나와 대나무 대롱을 타고 3개의 돌그릇에 차례로 담겨져 흐른다. 다인들은 품천에 따라 물을 여덟 종류로 나누었는데, 유천은 옛부터 다인들이 칭송해 마지 않았던 물이다.
물을 만드는 것은 숲이다. 숲이 변하면 물맛이 변할 수 밖에 없다. 선사 당시의 소나무 숲이 활엽수 중심으로 바뀌었으니 물의 과학적 성분이 조금은 변했을 것이다.
일지암에서 삼거리로 도로 내려오면 북암으로 오르는 그윽한 숲길이 열려있다. 두륜산은 산의 높이나 산체의 크기에 비해 다양한 식생을 보여주고 있다. 남도에서는 지리산과 함께 종의 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산이다. 전국의 사찰림 가운데서도 단연 으뜸이다.
두륜산의 식생은 제주도에서 이어지는 난대성 상록수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온 온대성 낙엽활엽수로 크게 나누어진다. 두륜산의 자랑인 난대상록활엽수로는 붉가시나무, 황칠나무, 동백나무, 굴거리나무, 비파나무, 생달나무, 후박나무, 참식나무, 자금우, 마삭줄, 보리장나무, 송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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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상부 및 능선부에는 소사나무와 신갈나무 등이 우점하고, 중복에는 동백과 붉가시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아래쪽은 서어나무와 참나무류가 2차림을 형성하고 있다.
북미륵암에는 앞서 말한 마애불과 동서쪽에 삼층석탑 2기가 서 있다. 석탑 중 동탑은 망탑(望塔)처럼 절벽의 자연석 위에 서 있는데, 탑의 기단을 지대석의 울퉁불퉁한 곡면에 따라 그랭이질을 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자연합일이 달리 없다.
북미륵암을 지나면 헬기장이 있는 오심재에 이른다. 오른쪽으로는 두륜산 정상인 가련봉(703m)이, 왼쪽으로는 고계봉(638m)이 자리하고 있다. 케이블카 전망대가 있는 고계봉 일대는 소사나무 군락이 숲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 육지의 소사나무 군락으로는 국내 최대의 규모이다. 천연기념물로 추천하여 보호해야할 가치가 충분하다.
몇 해 전에 해남군에서 구림리 시설지구에서 고계봉까지 국내 최장(1.6㎞) 케이블카를 놓았다. 그 바람에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들이 고계봉의 소사나무 군락을 휘젓고 다녀 적잖이 훼손되었다. 당분간 등산로를 폐쇄시키고, 휴식년제를 두어 소사나무 군락을 지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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