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지리산을 비롯해 ‘방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들이 많다. 경남 사천의 봉명산도 ‘방장산’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지리산에서 갈라진 낙남정맥의 한 지봉인 방장산 기슭에 다솔사(多率寺)가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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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솔사는 연기(緣起) 조사가 개창한 이래 도선국사, 나옹화상 등 고승대덕들이 수학했고, 한말에는 만해 한용운과 효당 최범술이 머물렀다. 김동리는 젊은이들을 모아 야학을 열며 소설 <등신불>을 남겼다.
다솔사는 일찍이 소나무가 아름다운 절로 소문이 나 있다. 그러나 주차장에 내리면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여기저기 무리 지어 있는 20~30년생 편백과 삼나무들이다. 주차장 상가 뒤쪽으로도 편백과 삼나무숲이 호젓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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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숲을 지나 삼거리에 이르면 수령 70~80년에 이르는 노송 숲이 시작된다. 다솔사를 처음 찾는 이들로하여금 이 숲을 보고 절 이름을 지었을 것으로 즐거운 착각을 하게 만드는 소나무숲이다. 다솔사는 일주문도 천왕문도 없는 무문의 절집이다. 이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이 바로 다솔사의 삼문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미풍이 불어 솔가지를 흔들며 지나간다. 한때 다솔사의 어른이었던 효당은 찻물 끓는 소리를 이 솔바람소리에다 비유했다. 사람의 귀를 긴장시키지 않는, 차를 끓이기에 딱 알맞은 온도의 물 끓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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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숲의 소나무는 줄기가 붉은 주홍빛을 띤 전형적인 적송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수피가 얇고 붉은 줄기의 유연한 꿈틀거림은 하늘로 오르는 적룡(赤龍)의 모습이다.
숲길 오른쪽 길섶에 붉은 글씨로 ‘御禁穴對表(어금혈대표)’라고 새긴 큰 화강암 바위가 있다. 고종 때인 광무 연간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이 표석은 금송(禁松)을 위해 세운 다른 지역의 금표(禁標)와는 내용이 좀 다르다. 전하는 바로는 인근 10리가 다솔사의 땅임을 알리는 표석이라고 하지만, 요즘의 그린벨트를 지키기 위한 ‘입산금지’ 표지석 쯤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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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해우소는 예전에 다솔사의 볼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해우정(解憂亭)’이라는 별명을 가진 옛 해우소를 허물고 몇 해 전에 새 해우소를 다시 지었다. 외형은 옛 것을 닮았으나, 처리 시스템은 분뇨차가 파이프를 변조에 넣어서 분뇨를 퍼가는 식이다.
대양루(大陽樓)는 다솔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749년에 중건하면서 <다솔사대양루사왕문중건기>를 남겼다. 그 중건기에, 방장산의 형국이 대장군(大將軍)처럼 ‘많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있다[多率]’고 해서 절 이름을 다솔사라 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렇다면 그 옛날 울울창창했을 아름드리 소나무를 두고 ‘많은 군사’라 하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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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보궁 사리탑 뒤 언덕 아래 ‘萬德山…’ 운운하는 비석이 서 있다. 이 비석은 들머리 소나무숲 속에 있던 ‘御禁穴對表(어금혈대표)’와 필연 무슨 연관이 있어 보인다.
마침 대중선방 중창불사가 한창이다. 요즘 불사들은 편의를 추구한 나머지 외형만 전통양식일 뿐, 내부구조는 거의가 ‘짝퉁’이거나 퓨전건물이다. 그런데, 이곳 대중선원은 아궁이와 구들을 둔 온돌 구조이다. 자재들도 모두 흙과 돌과 나무 등 자연소재들이다. 대나무로 외(畏)를 엮고 황토로 벽체를 조성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옛 건물에서 나온 자재(나무)들도 말끔히 대패질을 해서 재활용을 하고 있어서 생태건축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적멸보궁 뒤로 넓은 비탈에 차밭이 조성되어 있다. 이 차밭은 효당이 인근에 자생하던 차나무 씨를 받아 일군 것이라 한다. 다솔사 차밭은 산불이 절까지 내려와 번지는 것을 막아주는 내화수림대 기능까지 갖고 있다. 다솔사는 다인들 사이에 ‘다솔사(茶率寺)’ 또는 ‘다사(茶寺)’로 불린다. 효당이 있고, 야생차가 자라고, 반야로(般若露 : 죽향차) 다향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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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산의 활엽수들은 다솔사에서 봉일암에 이르는 구간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수령 50년 이상의 굴참나무 노거수들이 많이 보인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60~70년대, 굶주린 사람들이 산에 올라와 몰래 굴참나무 껍질(굴피)을 벗겨 내다팔아 연명했다. 그때 굴피를 벗긴 자국들이 나무마다 상채기로 남아있다. 다행히 굴피는 다시 돋아나 스스로 아픈 상처를 덮어주고 있다.
다솔사는 바다가 그리 멀지 않은 절이다. 그러나, 해양성 또는 난대성 상록식물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봉의꼬리고사리를 비롯해 몇 종류의 양치류만 겨우 푸른빛을 띠고 있을 뿐이다. 다솔사 주변의 조류상은 종의 다양성 측면이나 개체수에서 다른 절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그것은 소나무, 삼나무, 편백과 같은 상록수가 활엽수에 비해 분포 면적이 월등히 높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봉명산 군립공원인 방장산은 지자체에서 나무계단 몇 곳과 전망대 하나 세워둔 것이 고작이다. 봉일암을 내려오면 나무 계단이 산 위로 나 있다. 나무 계단부터는 활엽수림이 끝나고 온통 소나무 단순림이다. 분서(分棲)현상이 뚜렷하다. 소나무 숲은 솎아주기를 하지 않아서 30년 안팎의 소나무들이 난발(亂髮)처럼 어지럽다.
당국이 ‘공원’이라는 체면을 생각해서 햇볕도 안 드는 솔밭에다 야생화 화단을 조성해 놓았다. 그것도 원추리, 옥잠화, 하늘매발톱, 꽃잔디, 패랭이, 돌단풍 등 햇볕 없이는 못사는 것들만 심어놓았다. 우리 공무원들의 생태맹(生態盲)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다.
방장산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계곡이나 개울이 발달하지 않아 물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건산(乾山)이라는 점이다. 큰절에서 보안암까지 가는 물을 담은 계곡도 개울도 하나 없다.
방장산은 부드러운 육산이다. 방장산의 바위들은 빙하기 때 풍화작용으로 붕괴되어 ‘너덜’이라고 불리는 테일러스(Talus)로 변했다. 자연은 문화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이 너덜은 우리의 산간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특히 산중 암자나 토굴은 너덜환경의 소산이다. 수행자들은 너덜로 석축과 담벽을 쌓고, 돌길과 돌계단을 놓았다. 이 너덜이 아니면 가파른 경사지에 건축은 불가능하다.
다솔사의 산내암자인 보안암도 예외가 아니다. 부처님을 모신 석굴과 4미터가 가까운 가파른 석축도 모두 너덜로 쌓은 것이다. 적석총(赤石冢)이나 석실 고분을 연상케 하는 보안암 석굴도 너덜의 소산이다. 토함산 석굴암을 닮은 감실도 너덜로 쌓여져 있다.
보안암 주변에는 이끼가 많다. 겨울인데도 너덜과 석축에 이끼가 파랗게 끼었다. 보안암에서 이끼를 가져가지 말라는 경고장을 붙여 놓은 걸 보등산객들이 가끔 이끼를 벗겨 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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