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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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 소나무들 '백제역사' 전하는듯
108사찰생태기행-(51) 부소산 고란사

백화정은 화강암과 편마암이 대종을 이룬 암맥단 위에 앉은 정자다.

높이 106m의 부소산은 부여의 진산으로, 백제의 궁성(宮城)이 자리했던 산이다. 고란사는 바로 산성의 북쪽 기슭에 자리한 고찰이다.

부소산성의 정문인 사비문을 들어서면 소나무 숲이 눈 맛 그윽하게 펼쳐져 있다. 소나무는 활엽수를 제치고 부소산의 우점종으로 군림하고 있다. ‘부소(扶蘇)’라는 옛 지명도 ‘소나무’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부소산은 예나 지금이나 ‘소나무산’이다.

탐방로 삼거리 왼쪽으로는 서복사 옛터를 지나 사자루로 가는 길이 나 있고, 오른쪽으로는 삼충사를 지나 사자루로 가는 길이 나 있다. 그 삼거리 주변의 이대 군락은 자생한 것인지 군용(軍用)으로 식재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부소산성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탐방로 옆에 부도탑 모양을 한 식수대가 있다. 부도는 통일신라말에 나타난 선불교(禪佛敎) 문화이기 때문에 사비백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식수대 디자인을 바꾸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부소산 탐방로는 보도블럭이 깔려있다. 환경친화적인 소재는 아니지만, 관광객들의 출입이 많은 곳에선 차선책으로 선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숲의 빽빽한 정도를 나타내는 상대밀도를 보면 부소산의 나무들은 소나무, 상수리나무, 벚나무, 때죽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리기다소나무 순이다. 그러나 관목층에서 소나무들이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부소산에서 소나무의 세력은 점차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고란초는 산의 그늘진 바위틈이나 절벽에 붙어 자라는 양치식물이다.

부소산은 토양이 비교적 척박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마을주민들이 땔감으로 낙엽을 긁어내다보니 낙엽이 썩어 부엽토가 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환경오염으로 인한 산성비와 관광객들의 무제한 출입 등으로 인해 토양이 많이 산성화됐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석회 등 토양개량제를 전 지역에 살포하여 생명의 숲으로 되살리려고 애를 쓰고 있다.

토성 주변으로 수천년을 살아온 우리 소나무들이 우뚝우뚝 자라 숲을 이루고 있다. 우리 소나무는 군창터 주변에도 흩어져 있고, 영일루와 반월루 주변으로도 그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금강송처럼 강직한 맛은 없으나, 유려한 곡선미는 일품이다. ‘백제송(百濟松)’이라 이름 붙여도 결코 억지스럽지 않다. 언젠가 산림청이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한 바 있다.

사자루 아래 안부(鞍部)에서 궁녀사로 내려가는 길은 찾는 이가 드물어 호젓하기까지 하다. 궁녀사 지역은 부소산에서 가장 습윤(濕潤)한 지역이다. 몇 종류 습지식물을 비롯해 갯버들, 왕버들, 물오리나무 등등 물을 좋아하는 목본들이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다.

궁녀사 담벽에 낙우송(落羽松)이 우뚝하다. 새의 깃털처럼 생긴 잎이 가을이면 붉게 단풍 들면서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일제강점기 때 처음 북미에서 수입되어 조경목으로 심어졌으나, 일조량이 많고 습윤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산중사찰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활엽수림은 소나무 단순림보다 곤충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서식하고 있다. 따라서 조류들도 이 지역에서 많이 살고 있다. 청딱다구리는 전체적으로 회색을 띤 녹색이다. 주로 활엽수 숲에서 혼자 생활하는데, 이따금 지상에 내려앉아 개미를 잡아먹기도 하고, 겨울철에는 과일도 파먹는다.

낙화암과 고란사가 자리한 부소산의 북사면은 경사가 급해서 계단길 오른쪽으로 여기저기 암맥이 드러나 있다. 부소산 지질은 화강암과 편마암이 대종을 이룬다. 그 암맥은 백마강에 접해서 천길 낭떠러지 단애로 끊어진다. 백화정은 바로 그 암맥단애 위에 앉은 정자이다.

고란사는 거대한 바위 위에 앉은 절이다.

낙화암 백화정과 고란사 일대는 경사가 급해서 유효토심이 거의 없고, 토양도 척박해서 식생이 빈약하다. 간신히 뿌리내린 소나무들도 뿌리가 앙상하게 땅 위로 드러나 발뿌리에 채인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백화정 늙은 소나무는 오늘도 건재하다. 척박한 토양 탓에 키는 높이 자라지 못했지만, 줄기가 굵고 가지가 무성해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더욱이 나뭇가지를 정자 쪽으로 드리워 백화정 주변을 한 폭의 산수화로 만들어 주는 공덕이 가상하다.

백화정에서 고란사까지는 200m 돌계단이다. 이 구간의 경관보호목으로는 소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팽나무 등이 있고, 주변에 때죽나무들이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고란사는 백제 아신왕 때 혜인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고려 때 들어와 백제 망국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원찰로 자리매김을 했을 것이다. 발굴 유물들도 모두가 그 무렵의 것이다.

고란사는 금북정맥의 거대한 바위 위에 앉은 절이다. 절벽단애 아래 가파른 경사지에다 높은 석축을 쌓고 법당과 요사채를 앉혔다. 그러나, 좌향이 북방이라 햇볕이 들지 않아 전체적으로 어둡고 칙칙하다. 일조량이 적은 관계로 주변의 식생도 빈약하고, 연간 100만명에 이르는 관광객의 출입으로 고즈넉한 산사의 맛도 기대하기 어렵다.

낙우송은 새의 깃털처럼 생긴 잎이 가을이면 붉게 단풍 들면서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고란사의 법당 건물은 백마강 건너 은산면에 있던 숭각사(崇覺寺) 건물을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숭각사의 폐사와 관련해 이런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부여 내산면 녹산마을에 수령이 8백년 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숭각사 주지스님이 불사를 하기 위해 그 은행나무의 가지 하나를 잘랐다가 벼락을 맞아 죽었다고 한다. 그 후 주인을 잃은 숭각사는 폐사되고, 남아있던 건물 일부가 고란사로 옮겨져 지금의 법당이 되었다고 한다.

그 법당 앞마당에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는데, 녹산마을 은행나무의 후손인지는 알 바 없다. 그러나, 시멘트로 마당을 덮는 바람에 은행나무의 생육환경이 좋지 못한 편이다. 은행나무에 대한 대접이 아쉽다.

법당 뒤로 돌아가면 유명한 고란초가 있다. 고란초는 산의 그늘진 바위틈이나 절벽에 붙어 자라는 양치식물이다. 뿌리줄기가 옆으로 길게 뻗으면서 마디마디에서 길쭉한 잎이 달린다. 잎은 한 장 짜리 홑잎으로 진한 초록색을 띤다. 가죽처럼 빳빳하고 광택이 있는 잎에는 양쪽에 좁쌀만한 돌기가 돋아있다.

아쉽게도 고란사에서 고란초가 자취를 감춘 지는 꽤 오래된다. 현재 유리곽 안에다 인공적으로 몇 포기 고란초를 키우고 있는데, 관광객들은 그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선다.

고란초가 사라지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고란초가 뿌리박고 있는 바위들이 오랜 세월의 비바람에 조금씩 부스러져 떨어져 나가면서 고란초도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간접적인 원인으로는, 과거에 비해 크게 나빠진 대기와 수질과 토양의 산성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백마강 주변의 주장산, 천정대, 맞바위, 파진산, 성흥산 암벽에 고란초가 자라고 있는만큼, 고란사와 당국은 고란사 고란초에 대한 식생복원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절벽에는 구실사리 군락이 솜이불처럼 두툼하게 바위를 뒤덮고 있다. 구실사리는 분류학상 부처손속(―屬 Sellaginella)에 속하는 상록성 양치류 식물이다. 철사처럼 단단한 원줄기가 절벽에 붙어서 뻗고, 줄기에서 곁가지들이 번져서 방석 또는 솜이불 모양을 이룬다.
김재일 | 사찰생태연구소장
2005-12-09 오후 7: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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