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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강물, 솔바람소리 옛 풍취는 어디에
108사찰생태기행 48 -봉미산 신륵사

봉미산은 예전부터 소나무로 유명한 산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륵사 주변에만 소나무가 있다.


여느 절처럼 신륵사 입구도 상가와 숙박시설이 즐비하고, 근래에는 도자기 축제장까지 들어서 어수선하다. 강가에는 수상스키장을 조성하고 황포돛배를 띄워 넣고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주5일제 이후 여주군은 신륵사 일대를 관광지구로 만들기 위해 난개발을 서슴지 않고 있어서 신륵사 강마을 어디에도 이제는 더 이상 고즈넉하고 예스러움을 찾아보기 어렵다.

강변에는 버드나무들이 풍광 좋게 드리워져 있다. 은백양(銀白楊)에서부터 수양버들에 이르기까지 흔히 ‘버드나무’로 통칭되는 모든 종류의 버드나무들이 민주공화국을 이루고 있다.

강변 초지에는 박주가리, 갈퀴나물, 부처꽃, 마타리, 고들빼기, 씀바귀, 개맥문동, 고마리, 괭이밥, 쥐손이풀, 꼬리조팝, 질경이, 새팥, 석잠풀 등등의 꽃들이 가을로 넘어 들어와 피어있다.
신륵사 지역의 남한강은 수심이 깊고 강폭이 넓다. 신륵사 주변엔 낚시꾼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낚시꾼들이 삼삼오오 강 숲에 모여서 잉어, 붕어, 누치 등을 낚아 올린다.

누치는 남한강의 어종 가운데 비교적 대형에 속한다. 등은 암갈색이고, 배는 은백색이다. 모래나 자갈이 깔린 바닥층에서 먹이를 구하다보니 잉어처럼 입이 주둥이 밑에 달려 있고 모양도 말굽꼴을 하고 있다. 게다가 뻐끔거리는 입놀림이 느리고 더듬거려서 '눌어(訥魚)'라는 별명이 붙었다.

남한강 자락에 위치한 강월헌.


얼마 전에 신륵사를 비롯해 여주지역의 종교시민단체가 남한강 살리기에 나섰다. 수질과 어류의 다양성에 영향을 주는 골재채취 문제 등 당면 문제를 놓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요즘 여주군의 행정도 ‘잘 사는 여주’에서 ‘살기 좋은 여주’로 군정의 목표를 바꾸어가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제법 넓은 공간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맨땅이거나 풀밭이어서 다소 삭막하다는 느낌을 주었는데, 근래 절에서 소나무, 왕벚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당단풍, 연산홍 등등 갖가지 화목을 심어서 분위기를 일신하였다.

황오색나비가 왕벚나무 줄기에 붙어 진을 빨아먹고 있다. 황오색나비 애벌레는 버드나무 종류의 잎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봄부터 가을까지 신륵사 주변에 가장 많이 나타난다. 날개를 달고 난 다음에는 참나무나 벚나무 종류의 수액을 즐겨 빨아먹는다.

후투티는 전세계에 1종 밖에 없는 여름철새다.


두 그루의 시무나무는 가시가 있는 느릅나무란 뜻으로 ‘자유(刺楡)’라고도 한다. 오리나무와 함께 옛날 이정표로 쓰였다. 시무나무는 습기를 좋아해서 계곡이나 하천 주변에서 주로 관찰된다. 5월경에 꽃을 피우고, 10월경에 날개가 달린 시과로 익는다.

신륵사를 가리키는 말 가운데 ‘벽절’이라는 별명이 있다. 이는 은행나무 뒤쪽 동대(東臺)에 우뚝 솟은 다층전탑에서 비롯되었다. 동대는 여강의 거센 물살로부터 신륵사를 지켜주고 있는 수구막이 암벽이다.

현전탑은 이 거대한 동대의 암벽을 지키고자 하는 비원의 결과물이다. 비유컨대, 해마다 홍수해로 백성을 불안케 하는 황룡(여강)을 다스리기 위해 재갈을 물린 비보탑이 아니겠는가.

벽돌에 새겨진 당초(唐草)는 실재하는 식물이 아니라, 포도나 인동 같은 덩굴식물을 두루 일컫는 말이다. 원래 이집트에서 발원하여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들어와 우리나라로 전수된 문양이다.
신륵사 주변의 조류상은 개체수도 적고 다양성에서도 크게 떨어진다. 하천을 좋아하는 백로류와 참새나 까치 같은 텃새 정도이다. 굳이 지표가 될 만한 조류를 꼽는다면 후투티 정도가 될 것이다.
봄이면 날아드는 후투티는 지난해(2004년) 전탑 앞 나무 구멍에다 보금자리를 틀고 새끼를 키워냈는데, 올해는 전탑 보수공사로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후투티는 전 세계에 1종 밖에 없는 여름철새이다. 인디언 추장의 깃털 장식 같은 긴 우관(羽冠)을 머리에 쓰고 있어서 한눈에 알아보기 쉽다. 시야가 막힌 산중 절보다는 신륵사 같은 농경지 평지절에서 많이 관찰된다.

누치는 남한강의 어종 가운데 비교적 대형에 속한다.


신륵사의 가람배치는 다층석탑을 중심으로 극락보전, 적묵당, 심검당, 구룡루가 네모난 중정(中庭)을 만들고 있다. 중정을 둔 가람배치는 조선시대의 전통 형식이다. 명부전, 조사당, 칠성각, 봉향각 등은 중정 외곽에 배치되어 있다.

형국은 그리 넓지 않지만, 극락보전이 앉은 자리는 좌청룡과 우백호가 완연한, 봉미산의 중출맥이 내려온 자리이다. 극락보전 어전에 서면 마주한 구룡루 팔작건물 좌우로 여강의 모습이 보인다. 구룡루가 세워지기 전에는 여강이 모두 부처님 품 안이었을 것이다.

경내에는 개맥문동과 월악초 등 몇 종류의 화초들이 눈에 띈다. 때마침 화사하게 꽃을 피운 개맥문동은 절로 난 것으로, 보통 맥문동보다 크기도 작고 꽃 색깔도 좀 옅다. 맥문동은 음지쪽에 잘 자라는 데 비해 개맥문동은 햇볕을 좋아하는 편이다.

경내 몇 곳에 심어놓은 월악초는 긴 타원형 연녹색잎 가장자리가 흰색으로 둘러쳐 있어서 완상 가치가 있다. 그러나 미국 원산의 원예종 초본으로, 잎에 독성물질이 있어서 피부에 알레르기 발진을 일으키기 때문에 사찰조경에는 부적당한 꽃이다.

조사당 옆으로 보제존자 나옹대사 부도탑으로 가는 돌계단이 나 있다. 부도탑 뒤로 소나무들이 울울창창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가 약골이다. 유전적인 요인이 아니라, 관리를 해주지 않아서 저네들끼리 아웅 다웅 다투다가 약골이 된 것이다. 소나무는 양지식물이라서 햇볕을 제대로 못 받으면 아프리카의 빈민국 아이들처럼 영양실조로 피골이 상접해 말라죽는다. 이럴 때는 부득이 인위적인 간섭(임학적 관리)이 필요하다.

봉미산은 예전부터 소나무로 유명한 산이었다. 그래서 지명도 천송리이다. 그러나 천송리 마을이 개발되면서 소나무 숲은 신륵사 주변 밖에 남아있지 않다. 잘만 관리하면 이 숲에서 옛 선사들이 즐겼다는 송뢰(松策)를 맞을 수도 있을 터이다. 신륵사 사중에서 관심이 한층 더 필요한 대목이다.

정상에서 오솔길을 따라 인적 없는 강변으로 가면 귀화식물인 가시박이 칡을 대신하여 숲을 뒤덮고 있다. 가시박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봉미산이 환경파괴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증거이다. 왜냐하면 쓰레기로 인해 토양에 무기양분이 증가되었을 때 가시박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김재일 사찰생태연구소장 |
2005-11-07 오전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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