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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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천 졸졸졸… 선운사 동백숲엔 붉은 봄'
【108사찰 생태기행】선운산 선운사
모양이 제각각인 만세루 서까래들.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때 검단선사가 이 곳에 살던 도적들에게 제염법(製鹽法)을 가르쳐 제도한 뒤에 창건했다고 한다. 선운사에서 바다까지는 불과 십리길, 선사가 갯벌을 간척하여 염전을 만들고, 절 땅을 마련해 선운사를 세웠을 것이라는 유추는 우선 지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매표소 왼쪽 도솔천 개울가에 송악이 바위 절벽을 타고 올라가고 있다. 굵은 줄기는 둘레가 80cm에 이르고, 높이도 무려 15m에 이르는 노거수이다. 해양성 난대식물인 송악은 바닷바람을 좋아해서 내륙에서는 보기 드물다. 내륙에서는 선운사 송악이 가장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일주문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부도와 탑비들을 둘러싸고 편백, 삼나무, 전나무 등이 그윽한 숲을 만들고 있다. 모두 줄기가 곧아서 일심(一心)으로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일주문 공간에 잘 맞아떨어지는 나무들이다. 그리고 피톤치드와 타르펜 방출량이 다른 나무에 비해서 많은 까닭에 고도의 정신수행을 하는 스님들에게 매우 유익하다.

선운사 동백.


일주문에서 절까지는 물 맑은 도솔천이 이어진다. 선운사 창건설화에, 아랫마을에 눈병이 나돌자 검단선사가 위쪽 연못에다 숯을 묻어서 눈병을 낫게 해주었다는 전설이 깃든 도솔천이다. 도솔천 바닥은 검은 빛을 띠고 있다. 이는 수질이 오염되어서가 아니라 참나무류의 낙엽들이 함유하고 있는 타닌산이 침전되어 바위와 자갈들이 그렇게 보일 뿐이다.

개울가엔 늙은 나무들이 총림의 노장들처럼 온화하게 나와 서 있다. 선운사는 이 노장숲만으로도 고찰이다. 그러나 눈을 씻고 자세히 보면, 열악한 생육환경 탓으로 어린 시절 못 먹고 못 자라서 나무의 모양새들이 울퉁불퉁 천태만상이다. 게다가 그 오랜 세월동안 풍수해를 겪다보니 줄기마다 큼지막한 상채기들이 나있다.


활짝 핀 선운사 산수유.


선운사 만세루는 기둥이며 대들보며 하나도 온전한 게 없다. 저마다 휘어지고, 뒤틀리고, 꺾여져서 모두가 병신나무들이다. 그런데도 저네들끼리 모여 저리도 멋진 집을 세웠다. 인간의 눈에는 불구가 있을지 모르나, 자연의 경계에는 모든 게 불이(不二)요, 원융회통(圓融會通)이다.

때마침 담장 앞에 꽃 피운 산수유는 매화나 동백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겨울꽃이다. 열매 또한 영하 10도에도 끄떡없는 내공(內攻)의 나무이다. 그래서 산수유는 더욱 수행자들의 벗이 될만한 나무이다.


선운사 차밭.


대웅전 뒤쪽으로 동백숲이 자리하고 있다. 어린 후계목들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면서 풋풋하게 자라고 있다. 숲은 이와 같이 어린 후계목들이 어미 무릎에서 잘 커주어야만 대를 이을 수 있다. 후계목이 자라지 않는 숲은 아무리 울창해도 이미 죽은 숲이다.
옛 사람들은 추운 겨울에도 정답게 만날 수 있다고 해서 세한지우(歲寒之友)라고 했지만, 선운사 동백은 다른 동백이 다 지고 난 다음에야 피기 때문에 춘백(春栢)이라고 불러야 옳다.

선운사는 다른 관광사찰에 비해 비교적 생태적 경관이 좋다. 주변 식생들도 튼실하고 다양하며, 석조물들이 만들어내는 조경도 특별히 눈에 밟히는 것이 없다. 흉물스러운 물탱크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돌벽으로 둘러쌓고 전각처럼 기와를 올려 능청을 부렸다.

경내를 돌아보면 그 절에 사는 사중의 관심과 정서를 안다. 선운사 전각들은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맞배 건물들이 주류를 이룬다. 선운사가 담장을 낮추고, 다양한 꽃과 나무를 심은 것도 맞배지붕이 주는 팽팽한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함이다.
영산전 앞에 서서 명부전의 지붕을 바라보면 지붕의 선이 건너편 산의 능선과 모양새가 똑 같다. 자연과 인공의 절묘한 어울림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게다가 주위의 개나리와 수선화까지 신부의 부케처럼 화사해서 죽음의 전당이라는 명부전의 칙칙한 분위기를 바꾸어놓고 있다.

명부전 박공에 난 구멍으로 곤줄박이 부부가 뻔질나게 드나들며 신방을 꾸미고 있다. 주로 낙엽활엽수의 구멍에다 둥지를 트는 곤줄박이는 가끔 딱따구리가 파놓은 구멍에다 이렇게 전세들어 살기도 한다. 5월경이면 신방에다 대여섯개의 알을 낳는다.
산내암자로 가는 길들은 주변의 숲도 좋거니와 포장되지 않아서 걷고 싶은 숲길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누군가가 ‘인간세상에서 하늘로 가는’ 길이라고 예찬했다는 도솔암 가는 길은 주변으로는 야생화들이 많다. 보춘화, 금붓꽃, 족도리꽃, 산자고, 금창초, 현호색, 주름꽃, 산괴불주머니, 광대나물, 피나물, 개별꽃, 구슬봉이, 냉이, 꽃다지, 양지꽃 등이 저마다 새 옷을 갈아입고 꽃망울을 열고 있다.

보춘화(報春化)는 말 그대로 ‘봄을 알려주는 꽃’이다. 흔히 ‘춘란’이라고도 하며, 봄이면 서울 거리에서도 만날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자생난이다.

도솔암으로 가는 숲그늘 곳곳에 상사화의 일종인 꽃무릇이 청초한 자태를 드러내며 군락을 이루고 있다.

동백이 선운사의 봄꽃이라면 꽃무릇은 선운사의 가을꽃이라 할 것이다. 근래 이 꽃이 유명세를 타자 공무원들이 아예 선운사 골짜기를 꽃무릇 천지로 만들어버렸다. 주차장에서 도솔암에 이르는 십리길 주변이 모두 꽃무릇 일색이다.

그 바람에 다른 야생화들이 많이 죽어나갔다. 꽃무릇이 아무리 아름답기로서니 마치 잔디처럼 산과 골짜기를 뒤덮어서야 쓰겠는가. 이것은 자연성과 다양성을 훼손한 또 다른 폭력이다.


어느 방향으로 바라봐도 일품인 선운산 운무.


진흥굴 앞에 천연기념물인 장사송(長沙松)이 있다. 장사송이라는 이름은 이곳의 옛 지명 ‘장사현’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가슴 높이에서 8개의 가지가 부채살처럼 펼쳐져 있다. 반송이나 만지송과 같은 종류들은 유전성으로 내림하는 형질을 갖고 있다. 6백년이라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숲길 왼쪽으로는 활엽수가 자리하고, 오른쪽 8부 능선 위로는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선운산 일대는 식물 분포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난대상록식물인 동백과 송악이 자생하고 있으며, 남부지방에 현존하는 극상림(갈참나무와 서어나무 군락) 가운데 보존이 비교적 잘 돼 있는 곳이다.

선운산은 극상림을 이루고 있어서 소나무는 주로 능선이나 바위가 많은 계곡 쪽에 분포되어 있다. 들머리 집단시설지구 주변으로 소나무들이 단순림을 이루고 있다. 아직 재선충에 대한 피해보고는 없지만, 여러 해동안 솔껍질 깍지벌레에 의한 피해가 있어서 항공방제를 해왔다.
글·사진=김재일(사찰생태연구소장) | http://cafe.daum.net/templeeco
2005-04-26 오전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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