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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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솔숲 재선충 북상에 위기"
[108사찰 생태기행]의성 고운사


고운사 숲길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생명의 숲길 가운데 하나이다.


경북 의성 고운사는 천상 구름의 절집이다. 등지고 앉은 산 이름(騰雲山)이 그렇고, 그 산자락에 앉은 절 이름(孤雲寺)이 그렇고, 그 계곡에 걸터앉은 누각의 이름들(駕雲樓, 雨花樓) 또한 그렇다. 그리고 시끌벅적한 사하촌을 떨쳐버린 고고한 은적(隱迹)이 구름의 절집답다.

주차장에 내리면 절까지는 약 500m. 절로 가는 길은 전통적으로 그윽하고 호젓한 숲길이었다. 그러나 개발시대에 들어서면서 ‘편의와 속도’를 끊임없이 요구받아 그 오랜 숲길들이 거의 초토화되어 버렸다.

부드럽게 굽이돌던 숲길은 직선화되고, 오솔길처럼 호젓하던 숲길은 넓어지고, 부드럽던 흙길은 아스콘이나 시멘트로 뒤덮였다. 생명의 길이 기계의 길로 바뀐 것이다. 이런 가운데 고운사 숲길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생명의 숲길 가운데 하나이다.

한 가지 유감인 것은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라 자동차가 지날 때마다 흙먼지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그 바람에 길섶의 나무와 풀들이 흙먼지를 뿌옇게 뒤집어 쓴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고운사 소나무는 30~40년생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 그늘 아래에 어린 소나무들도 송송 올라오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숲길 주변의 식생은 소나무와 활엽수들이 주종을 이룬다. 활엽수로는 굴참나무, 느티나무, 말채나무 등이 주류를 이루고, 더러 고사목도 눈에 띤다. 지난 겨울 눈을 못이겨 가지가 부러진 설해목과 개울가에 서 있는 늙은 왕버들도 눈에 들어온다.

왕버들은 물을 좋아해서 ‘하류(河柳)’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왕버들은 대개 개울 쪽으로 비스듬히 자라는데, 그것은 햇볕을 더 많이 받기 위한 자구책이다. 밑둥치 지름이 1m까지 자라기 때문에 개울가에 심어두면 조경 가치도 있고, 수해로부터 개울을 지켜주기도 한다.

개울가에는 시루떡을 잘라서 쌓아놓은 듯한 크고 작은 퇴적층들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다. 이 퇴적층은 의성지방 일대가 거대한 호수였던 지질시대의 흔적이다. 의성군 일대 여러 곳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도 그 시대의 산물이다.

숲을 벗어나면 저만큼 일주문이 보이고 경내가 시야에 들어온다.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2백여년 뒤의 인물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과의 인연사가 더 깊다. 원래의 이름이었던 ‘高雲寺’가 ‘孤雲寺’로 바뀐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일주문 옆으로 계류를 막아서 만든 자그마한 저수지(孤雲池)가 있다. 이름만 저수지일 뿐, 연못 규모이다.
등운산은 계곡도 크게 발달하지 못했지만, 전국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강수량으로 해서 물이 부족해 건천화가 심하다. 게다가 표토(表土)가 얕아서 물을 많이 머금어주지 못해서 계류에 물이 부족하다.



고운사 지층.


목이 마르기는 야생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골짜기에 물이 없으니 야생동물들이 고운사 연못까지 물을 마시러 내려온다. 사람도 그렇듯이 찬 물을 마시면 생리적으로 배설을 하게 된다. 금방 응아를 하고 간 고라니의 배설물이 말랑말랑하다. 고라니 배설물은 까만 콩과 흡사하다.

고라니는 노루와 멧토끼의 중간 크기이다. 노루보다 훨씬 작고, 암수 모두 뿔이 없기 때문에 노루와 쉽게 구별이 된다. 겨울에 짝짓기를 끝내고 요즘 암컷들은 한창 태교 중이다. 녹음이 짙어지면 등운산 관목림 덤불 속에서 몸을 푼다.

주위에는 멧토끼 배설물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멧돼지도 등운산의 식솔들이다. 가끔 마을까지 내려와 고구마밭을 작살낸다고 구계마을에서 온 한 거사가 일러준다.

최치원이 세웠다는 가운루(駕雲樓)는 계류의 양쪽에 걸쳐 지은 큰 건물이다. 몸집을 받치고 있는 기둥(樓下柱)들의 길이가 제각각이다. 계곡 바닥의 높낮이에 맞추어 세웠기 때문이다. 그 기둥들이 구름 위에 지은 듯한 시각적인 리듬을 준다. 자연에 순응한 인공은 이미 인공이 아니다.

계류 건너 현재
고운사 조실채 기둥.
보수공사 중에 있는 우화루(羽化樓)는 이름만으로도 도가(道家)의 냄새가 짙다. 우화루 안에는 피안의 세계를 상징하는 ‘雨花樓’라는 불교 현판이 걸려있다. 이 우화루는 계류 서쪽의 허함을 비보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우화루의 호랑이 벽화는 살아있는 호랑이라고 소문이 나있다. 그것은 벽화 아래 지대가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서 보는 이의 눈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화공이 그것을 고려해 그린 것이다. 그 벽화 속에는 ‘늘 깨어 있으라’는 무언의 가르침이 깃들어 있다.

극락전과 연수전 뒤로는 숲이 황폐하다. 2003년 매미 태풍 때 큰 소나무들이 많이 쓰러졌기 때문이다. 등운산 일대는 표토가 얕아서 직근(直根)을 가진 소나무들도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하고 태풍만 불면 곧잘 넘어진다. 그때 쓰러진 나무들이 아직도 곳곳에 많이 보인다.

연수전을 지나면 명부전, 삼성각, 연지암, 약사전, 아거각, 객실 등이 일곽을 이루고 있는데, 그 가운데로 본디 계류가 흘렀다. 지금은 모두 복개하여 자갈을 깔아 마당으로 활용하고 있다. 복개된 계류의 입수구가 좁아서 큰물이 지면 수해를 입을 위험을 안고 있다.

나한전 옆 조실채 기둥의 나무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등천하는 용틀임이다. 나무는 죽어서도 사는 법을 알고 있다. 옆에 세워놓은 노스님의 지팡이가 대극적이다.

고운사 딱새는 요즘 짝짓기가 한창이다. 딱새는 어느 절에서나 쉽게 관찰되는 텃새이다. 크기는 암수 모두 참새만 하다. 수컷은 검은색과 붉은색이 많고, 날개에 흰점을 갖고 있어서 예쁘다. 요즘이 짝짓기철이다. 당우의 공포나 나무 밑에 이끼나 나무껍질 등으로 밥사발 모양의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나무 위에 앉아 붉은 꼬리를 파르르 떤다고 일명 무당새라고도 부른다.

등운산은 소나무가 우점종이다. 몸집 좋은 노송을 비롯해 30~40년생 청장년 소나무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 그늘 아래에 어린 소나무들도 송송 올라오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차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활엽수로는 느티나무, 굴참나무, 산벚나무, 물푸레나무, 고로쇠나무, 개암나무, 때죽나무, 산초나무, 단풍나무, 진달래, 철쭉, 다래 등등이 들머리 숲과 골짜기를 따라 길게 나 있지만, 세가 약하다. 당분간 등운산은 소나무 전성시대를 이룰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재선충이 포항-영천선까지 북상해 있기 때문에 고운사에서는 늘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 등운산 산줄기가 영천-포항으로 논스톱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고운사는 본사 치고는 도량도 좁고 이렇다할 생태적 특징도 없지만, 때묻지 않아 더욱 고즈넉하고 수더분한 산사의 맛을 지니고 있다.


글ㆍ사진=김재일(사찰생태연구소장) |
2005-03-23 오전 1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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