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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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숲 어울린 아홉 계곡 빼어난 공주 갑사
[108 사찰생태기행]공주 갑사



종각 옆에는 수령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큰 살구나무가 묵묵하게 서 있다.


가을보리씨를 봄에 심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겨울을 참고 견딘 보리만이 봄에 열매를 낼 수 있다. 어디 보리뿐이겠는가. 숲들도 시련의 겨울과 함께 숲이다. 절기의 징검다리를 딛고 계룡 갑사(甲寺)의 겨울 숲을 찾아 나선다.


갑사 들머리에 드넓은 계룡 저수지 위에 계룡산 문필봉, 연천봉, 삼불봉이 수석처럼 떠 있다. 계룡산 능선에 우뚝 솟은 암봉들이 모두 계룡의 닭볏이다. 이 닭볏들이 수식(水蝕)에 살아남아 높이 솟은 석영반암(石英班岩) 모나드노크(Monadnock)이다. 계룡산의 골기(骨氣)도 이런 지형에서 비롯된다.


갑사 숲은 예로부터 소문난 숲이다. 관광지로 개발되어 시설지구가 들어서는 바람에 숲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예전에는 저 아래쪽까지 숲 띠가 이어져 있었다고 노스님들은 말한다.


불교는 숲의 종교이다. 부처님의 일생이 숲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불교가 명상과 자비의 종교가 된 것도 숲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우뚝하게 서 있는 계룡산 문필봉.


1천6백년 한국불교도 숲을 떠나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명산대찰이 모두 숲과 함께하고 있는 사실이 그를 잘 증명해주고 있다. 절로 가는 길은 어디나 숲길이었다. 그 숲길은 번잡(煩雜)의 세계에서 명상의 세계를 이어주는 길이요, 세간(世間)에서 출세간(出世間)으로 가는 길이다.

갑사 숲은 각종 활엽수들이 이루는 화엄세계이다. 소나무도 간간이 보이지만, 거의가 활엽수들이다. 흔히 ‘춘마곡(春摩谷), 추갑사(秋甲寺)’ 할 때, 추갑사의 아름다운 단풍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이 바로 이 활엽수들이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후계목들이 임상에서 자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숲의 노령화가 이미 상당히 진척되어 앞으로 이 숲을 어떤 수종으로 어떻게 바꾸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그때 ‘추갑사’는 하나의 지표가 될 터이다.

이 숲의 화엄세계에서 노거수로는 말채나무가 가장 눈에 띈다. 겨울에는 나뭇잎이 없어서 나무의 껍질(樹皮)을 보고 나무이름을 알아내는데, 말채나무는 그물처럼 갈라터진 껍질이 특징이다. 가느다란 가지가 낭창낭창해서 말채찍으로 좋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로는 채찍에 쓰이지는 않는다. 원산지는 우리나라와 중국으로 소개되어 있지만, 중국에서 이 나무를 ‘조선송양(朝鮮松楊)’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고향인 것 같다. 생장은 더디지만, 사찰 조경에 잘 어울린다. 봄에 파종하여 묘목을 얻는다.

종각 옆으로 수령을 짐작할 수 없는 큰 살구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호수로 지정된 살구나무는 서울 은평구의 것이 유일하다. 갑사에서도 충청남도 보호수로 신청해서 보호해야 할 것이다.

살구나무를 ‘행림(杏林)’이라고 부르는 것은 중국 오나라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동봉(董奉)이라는 사람이 있어서 만년에 산속에 은둔하며 살구씨로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며 살았다는 고사가 있다. 의사를 행림이라고 부르게 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쇠박새는 스님들의 눈에 매우 익숙하다.


표충원은 임진왜란 때 구국에 나선 승장들의 사당이다. 주변에 이대 군락이 있다. 이대는 ‘신이대’ ‘시누대’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분류도감에 따르면 서로 다른 나무이다. 이대는 키가 2미터 이상 자라고, 신이대는 1미터 미만이다. 이대는 주로 한강 이남에서 자라지만, 조선시대에는 화살을 만들기 위해 전국 곳곳에 심었다. 이대는 표충원의 역사적 의미와 잘 어울리는 식물이다.
대웅전을 나와 대적전을 찾아가다보면 곡지지형을 따라 형성된 이 계류가 있다. 이 계류를 따라 갑사구곡(九曲)이 펼쳐져 있다. 계류 옆에 있는 공우탑은 절에서 부리던 소가 계류를 건너다 실족하여 금계암 아래쪽 소에 빠져 죽자 스님들이 소의 공덕을 가상히 여겨 세운 탑이라고 한다.

소의 실족은 갑사구곡의 지형과 관련이 있다. 갑사구곡에 있는 폭포와 절벽은 지질경계 부근에 발달한 상부 괴상암체(塊狀岩體)가 조폭층(fall maker)의 역할을 하여 하부에 절리와 층리가 발달되어 생긴 것이다.

절에는 어딜 가나 동(動)과 정(靜)이 함께 공존한다. 갑사에서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대웅전 영역이 동적 공간이라면, 별당처럼 따로 떨어져 호젓함이 머무는 대적전 공간은 정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정(靜)’은 ‘적(寂)’과 상통하는 데가 있다.

대적전에서 철당간지주를 지나 달문택 - 백룡강 - 이일천으로 이어지는 갑사구곡은 물과 숲이 어울어져 겨울에도 걷기 좋은 개울숲길이다. 굳이 비경이랄 것까지는 없으나, 풍광이 아기자기하고 생태적인 느낌이 있는 곳이다. 플라타너스로 불리는 양버즘나무 몇 그루도 느낌 있는 숲길을 만들어주는 생태적 요소이다.

이 지역은 햇볕이 비교적 좋아서 갑사 지역에서는 봄의 약동을 맨 먼저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풀과 나무들이 다양하고, 곤충과 물고기와 새들이 즐겨 모이는 곳이다. 여름이면 반딧불이가 날고, 밤이 깊어지면 너구리가 마실 다니는 곳이다.

주변에서 관찰되는 새들도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다. 흔치 않은 까막딱다구리까지 그 특유한 울음소리를 내며 드나든다. 조사기간 중에는 팔상전 뒤 활엽수림에서 관찰되었다.

쇠박새는 박새와 비슷하지만, 마치 베레모 모자를 쓴 것처럼 검은색이 뒷목까지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가슴과 배는 밝은 회색이다. 박새와는 달리 날개에 흰 줄이 없고, 가슴에 검은 선이 없다. 울음소리가 밝고 사람들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아서 스님들의 눈에 아주 익숙한 새이다.

갑사에서 대자암(大慈庵)까지는 걸어서 30분 거리이다. 갑사에서 대자암에 이르는 구간은 노송들이 조금 혼재된 활엽수림이다. 굴참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참회나무, 굴피나무, 서어나무, 다릅나무, 개옷나무, 때죽나무... 떨어진 낙엽들이 솜이불처럼 임상을 포근하게 덮어주고 있다.

흔히 낙엽을 인생무상, 삶의 회의, 조락(凋落)의 죽음 등등에 비유하지만, 낙엽에서 다시 생명이 시작된다는 생태적 사실을 사람들은 곧잘 잊어버린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거름이 된다’고 노래한 만해 선사가 아니더라도 낙엽이 가는 길은 영원한 죽음의 길이 아니라 재생(再生)의 길이다. 썩어서 나무의 거름이 되어 다시 나무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대자암 석축 아래 수령을 짐작도 할 수 없는 늙은 모과나무가 있다. 모과는 울퉁불퉁 제멋대로 생긴 외모에다 맛도 시금털털하지만, 향기 하나는 은은하니 매혹적이다. 원산지가 중국이라, 아마 신라나 고려 때 중국으로부터 스님들이 약용으로 들여온 것이 아니겠는가 싶다. 그래서 웬만한 절이면 모과나무 한두 그루씩은 다 있다. 대자암 모과나무는 높이가 10미터에 이르는 노거수다.
김재일 사찰생태연구소장 |
2005-01-28 오후 4: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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