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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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서운산 석남사와 청룡사의 생태
108사찰 생태기행

경기도 안성 서운산(瑞雲山)은 일제가 만들어낸 ‘산맥’개념으로 보면 차령산맥의 한 봉우리에 속한다. 하지만, 백두대간에서 마루금을 따라 속리산을 거치지 않고는 이 산에 이를 수가 없다. 이런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의 산맥개념이 허구임을 알 수 있다.

금북정맥의 첫 머리에
대웅전 기둥.
앉은 서운산은 노년기의 산이지만, 경기도와 충북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천안 광덕산이며, 청양 일월산이며, 예산 가야산이 모두 이 서운산의 아우들이다.

고산준령도 절이 없으면 명산 축에 들지 못한다. 해발 6백미터를 넘지 못하지만, 일찍이 명산 소리를 들어온 것은 역시 이 품속에 청룡사와 석남사가 화룡정점(畵龍點睛)으로 앉아있기 때문이다.

청룡사는 고려 공민왕 때 나옹화상이 지금의 이름으로 크게 중창했다고 전한다. 조선 중기에는 억울하게 죽은 영창대군의 넋을 보듬어 안았고, 조선말에는 갈 곳 없는 남사당패들을 안아주었다.

사적비가 있는 개울 건너 오른쪽 골짜기가 바로 남사당패들이 숨어살던 불당골이다. 남사당패들은 겨울이면 대처에서 돌아와 불당골에 머물며 절의 허드렛일을 거들며 밥을 얻어 먹었다.

청룡사 경내에 들어서면 늙은 층층나무 한 그루가 노란 단풍을 황금눈물처럼 떨어뜨리고 서 있다. 이토록 나이든 층층나무는 우리 절집에 따로 없을 것이다. 층층나무는 탑을 연상케 하는 나무이다. 줄기 중간 중간에 나무가지가 층층이 뻗어져
네발나비.
나간 모습이 탑을 많이 닮았다. 그러나, 이 층층나무는 너무 늙어서 젊은 날의 모습을 찾아볼 길이 없다.

대웅전의 소박한 자태는 곱게 늙어가는 공양주 노보살을 연상케 한다. 아무렇게나 휘어진 기둥들을 보고 어떤 이는 금강역사의 힘찬 팔뚝을 연상한다지만, 사진에 담아놓으니 노보살의 휘어진 등에 더 가깝다. 근래 새로 복원한 요사채의 기둥들도 무늬가 드러나는 자연목을 그대로 써서 옛 것과 새 것의 ‘어울림’이 예사롭지 않다.

청룡사 주변 숲에는 남생이무당벌레가 많다. 이름 그대로 동글납작하게 생긴 것이 기온이 떨어지면 햇볕 좋은 요사채로 슬슬 모여든다. 그리고는 따뜻한 마루틈이나 기둥틈을 찾아 몇 마리씩 모여서 겨울을 난다. 어떤 녀석은 방안에까지 기어들어와 능청스럽게 겨울을 나기도 한다.

청룡사에서 산내암자인 은적암까지는 등산로를 따라 한 시간 거리이다. 멀리 서운산의 부드러운 능선이 보였다가 사라지곤 한다. 능선 위에는 잎 떨군 참나무들이 거대한 목책처럼 울타리를 만들고 있어서 겨울산의 또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등산로 옆에 자리한 습지와 묵논은 양서류와 수서곤충에겐 극락이다. 이런 곳을 생태학에서는 ‘비오톱(Biotop)’이라고 부른다.

비오톱은 생명과 생물을 의미하는 ‘bios’와 공간을 의미하는 ‘topos’가 합성된 독일말이다. 비오톱은 보존가치가 있는 특별한 서식공간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몇몇 종으로만 구성된 농경지도 훌륭한 비오톱이 될 수 있다.

늦가을에 만나는 네발나비는
층층나무 노거수.
색깔이 유난히 진하다. 이것은 햇볕을 더 많이 받기 위함이다. 네발나비는 성충으로서 월동을 하므로 눈이 내리기 전에 좀더 많은 영양분을 몸속에 비축해야 한다. 눈바람이 닿지 않는 큰 바위나 고목나무의 갈라진 틈바구니에서 꼼짝도 않고 겨울을 난다.

서운산은 노령의 산이라 가파른 급경사도 없고, 험한 암봉도 없는 평범한 산이다. 은적암을 지나 정상에 이르는 숲길은 안성시민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등산 코스이다. 그러나,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환경은 상처를 더 받기 마련이다.

등산로 곳곳에 함부로 모아둔 쓰레기들이 눈에 밟힌다. 각자가 자기 쓰레기를 갖고 내려오는 시대도 이미 지났다. 이제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등산시대이다. 누구더러 치우라고 모아둔 쓰레기인가. 설마 독살이 하는 은적암 스님더러 치우라고 그렇게 염치 없이 모아둔 건 아닐 테지-

이 구간의 숲은 교목과 아교목과 관목과 임상 초본들이 한데 어울려 비교적 튼튼한 층위구조를 보여준다. 숲의 역사를 말해주는 늙은 갈참나무가 한 그루 넘어져 있다.
남생이무당벌레.
수백년을 뜬 눈으로 장좌불와 해온 갈참나무, 죽어 꺾여서야 비로소 육신을 지상에 뉘었다. 나무 속은 부후현상으로 터널처럼 텅 비었다. 나무도 열반이 가까우면 저렇게 속을 비우고 사는가 싶다.

은적암 아래는 조릿대가 넓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조릿대는 땅속뿌리[地下莖]를 갖고 밀생하기 때문에 산사태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다른 나무들이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조릿대가 넓게 퍼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은적암은 이름이 주는 느낌과는 달리 이 골짜기에서 가장 양명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객들이 중간 기착지가 되었다.

탕흉대로 가는 등산로 주변 여기저기에 밤나무가 흩어져 있다. 이는 이 산허리까지 예전에 사람이 밭갈아 먹고 살았음을 반증한다. 등산로는 소나무숲과 활엽수숲을 심심찮게 번갈아 지나게 되는데, 발 아래로 안성과 평택을 덮은 드넓은 안성평야와 아산만까지 펼쳐져 있다.

정상 부근에 상수리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은 흔치 않은 현상이다. 행여 정상 부근에 있는 서운산성에서 머물던 옛 백제 병사들이 군량(軍糧)으로 쓰기 위해 인위적으로 심은 것은 아닐까.

정상에서 서운산성을 돌아 석남사까지는 2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이다. 날이 저물어 부득이 석남사 탐방은 훗날을 기약하고 서둘러 하산을 한다.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 안성 서운산 석남사로 가는 마둔저수지엔 눈발 대신 마침 겨울철새들이 물위로 내리고 있다.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홍머리오리, 흰죽지, 논병아리 등등이 눈에 띈다.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리면
석남사까지는 걸어서 30분 가량이다. 개울을 따라 인적 없어 더욱 호젓한 길이 나 있다. 석남사가 가까워질 수록 물빛이 붉은 것은 철분이 많은 토양 때문이다.

개울가에 잘 자란 은사시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청룡사 뒷골짜기를 비롯해 서운산 자락에는 곳곳에 우람한 몸집의 은사시나무들이 관찰된다. 은사시나무는 은백양과 수원사시나무가 자연교배하여 만들어낸 잡종이다. 봄에 나무에서 솜털이 날아서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소문이 나서 미움을 먹고 있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석남사 절 앞 감나무에 큰오색딱다구리 한 마리가 붙어서 나무줄기를 사정없이 두드리고 있다. 딱다구리는 드럼리스트이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두드리는 것을 조류생태학에서는 'drumming'이라고 한다. 구멍을 파거나 나무 속에 숨은 벌레를 찾기 위해 두드리지만, 드러밍을 통해서 자기 세력권을 알리기도 하고, 짝을 찾거나 짝꿍에게 자기의 위치를 알리기도 한다.

석남사는 좌우를 둘러싼 산세도 그렇거니와 사하촌을 거느리지 않아 세속과 뚝 끊어진 산중절이다. 그래서 절맛이 남다르다. 산문이 따로 없는 석남사에서 산문 노릇을 하는 금광루를 들어서면 경내는 대각전(大覺殿), 영산전, 요사채 공간 등 세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고, 그 세 구역은 자연미가 베인 가파른 계단길로 연결되어 있다.

보물로 지정된 영산전은 해체수리 공사에 들어가 있다. 대각전은 석남사의 본전이다. 제멋대로 생긴 내부의 대들보는 자연미가 물씬 풍긴다. 이 산중에서 얻은 재목일 것이다.

대각전 뒤로 몸집 좋은 노송들이 노장처럼 버티고 있다. 노송들은 전형적인 중남부내륙형 소나무로, 조경적 가치도 상당히 지니고 있다. 그러나, 활엽수들의 기세가 너무 등등하여 존재가 위태롭다. 노송 병풍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숲을 손봐주어야 한다. 그리고, 후계목도 키워주어야 할 것이다.

석남사에 오면 꼭 돌아봐야 할 곳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전통해우소이다. 관청에서 수세식으로 지으라는 것을 회주이신 정무스님이 고집해 얼마 전에 전통해우소로 다시 복원한 것이다.

절집의 해우소는 전통적으로 두 가지 시스템으로 분뇨를 처리한다. 송광사나 선암사처럼 낙엽이나 톱밥 등의 매질(媒質)을 변조에 뿌려서 건분(乾糞)을 만드는 방법과 변조칸의 분뇨를 발효시켜서 액비(液肥)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 석남사 해우소는 흔히 ‘푸세식’으로 불리는 후자의 경우이다.

몇 년을 곰삭은 액비는 비중이 무겁기 때문에 갓 떨어진 배설물은 자연적으로 액비 위에 뜨게 되어 있다. 액비에는 인산과 각종 미네랄과 염분이 풍부하기 때문에 채전밭에는 더 없는 보약이다.
내부에 들어가 볼일을 보고 앉아있어도 전혀 냄새가 나지 않는다. ‘특수용해시설이 되어 있으니 휴지나 그 어떤 것들도 함부로 버리지 마시오’라는 글귀가 칸칸이 붙어 있다. 하지만, 특수시설이라는 것이 변조칸을 깊이 파고 햇볕과 바람이 들도록 살창과 구멍을 많이 낸 것 외에는 따로 없다. 분뇨들이 썩지 않고 발효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전기와 물을 낭비하고도 수질을 오염시키는 수세식보다 얼마나 친환경적인가. 환경시대에 본보기가 될 만한 해우소이다.

석남사는 해우소 말고도 ‘생태사찰’이라 불릴 만한 좋은 점 몇 가지를 지니고 있다. 심야보일러를 사용하는 석남사에서는 잔열을 지키기 위해 하루 종일 이불을 깔아둔다. 겨울에는 연료를 아끼기 위해 대중들이 큰방에서 예불을 지낸다. 사중 식구가 다섯에 불과한데도 꼭 죽비를 치고 대중공양을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법회 때를 제외하고는 공양칸에서 세제를 쓰지 않는다. 화장지를 쓰는 데도 대중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세제를 낭비하고 전기를 많이 먹는 세탁기는 가능한 돌리지 않는다. 웬만한 채소는 유기농으로 직접 길러서 먹는다. 벌레 먹은 채소들이 밥상에 오르는 것은 예사이다.

석남사에서 서운산 정상까지는 1.8킬로미터이다. 계곡을 따라 두 줄기의 등산로가 나 있는데, 한 줄기는 열두구비 산길이며, 다른 한 줄기는 개울을 따라 난 등산로이다. 개울 주변으로는 신나무, 복자기, 물푸레나무, 왕버들, 미류나무, 쪽동백, 떼죽나무, 노간주, 굴참나무, 층층나무, 개암나무, 산벚나무, 당단풍, 느티나무 등이 능선까지 어울려 있다.

개울 등산로 가까이에 고려말에 조성된 마애불이 있다. 있다. 안성 지역의 지질은 쥐라기의 대보화강암과 선캠브리아기의 편마암으로 크게 대별된다. 서운산 일대의 흑운모 편마암의 암상은 중립질로서, 마애불을 조성하기에는 ‘안성맞춤’이 아니다. 그래서 선각(線刻)이 비교적 거친 편이다.

벽면 곳곳에 회색깔의 석이(石耳)버섯이 돋아나 있다. 일명 돌버섯이라고 불리는 석이버섯은 석이속(屬)의 지의류(地衣類)이다. 겉모양과는 달리 공기가 비교적 청정한 산중의 바위에 붙어서 자라는 엽상지의(葉狀地衣)이다. 건조한 겨울철에는 죽은 듯이 납작 붙어 있다가 습기찬 여름철이 되면 다시 왕성하게 부활해 후손을 퍼뜨린다.

마애불 주변에 몇 그루의 노송들이 있지만, 활엽수들의 등쌀에 노후가 편치 못하다. 너무 늙어서 자식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주위의 활엽수들을 쳐서 경관미라도 얻었으면 싶다.
김재일 회장 |
2004-12-15 오후 4: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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