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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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낙동정맥에 솟은 천축산의 연꽃
108 사찰 생태기행(30) - 천축산 불영사
불영천의 네발나비.
찬이슬이 맺힌다는 한로가 엊그제. 옛 사람들은 한로 무렵을 가리켜 ‘산에 들에 노란 국화가 피고, 기러기가 초대를 받은 듯 모여드는 절기’라고 했다. 또, 높은 산에 올라가 머리에 수유(茱萸) 열매를 꽂으며 몸의 액을 털어낸다고도 했다. 백두대간 낙동정맥에 솟은 천축산에도 바야흐로 노란 산국(山菊)이 피고, 그 숲속의 절집 불영사에도 수유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울진에서 봉화 영주로 이어진 36번 국도는 낙동정맥을 가로 지르는 산간도로이다. 국도라곤 하지만, 10여년 전에야 겨우 포장된 산중도로이다.
불영사 주차장에 내려 일주문을 지나면 왕피천의 지류인 불영천이 맑게 흐르고 있다. 개체수는 많지 않으나, 예전에는 불영천에도 왕피천의 연어들이 오르내렸다고 한다. 지금은 아래쪽에 여러 개의 보가 막혀서 연어가 불영사까지는 못 오르고 있다.
불영천


* 불영천
불영천의 발원지는 강원도 삼척과 경계를 이루는 삿갓봉(1119미터)이다. 고산준령의 융기와 침식으로 인해 상류에서부터 심한 감입곡류(嵌入曲流)를 이루면서 내려와 불영사를 태극으로 한바퀴 감싸돈 후 하류로 내려가 왕피천 본류와 만난다.
불영천에는 서해로 흐르는 서계(西界)의 하천에 서식하는 어종들도 보인다. 이는 사람들 손에 의해 낙동정맥을 넘어왔다기보다 지질시대에 하천 유로의 변경 때문인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 불영천의 꺽지
불영사 아래위로는 비교적 맑은 물을 좋아하는 버들개, 꺽지, 돌고기, 자가사리, 동사리 등이 나타나고, 불영사에서 8킬로미터 아래에 있는 주천대 지역에서는 갈겨니, 피라미, 왕종개, 몰개, 밀어, 미유기, 쏘가리, 모래무지 등이 나타난다.
꺽지는 한국특산종으로, 유속이 빠르지 않는 곳에 산다. 길이 30센티 정도에 모양은 붕어처럼 납작하다. 몸의 바탕은 회갈색이며 얼룩져 있으며, 몸색깔을 자주 바꿔 ‘물속의 카멜레온’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꺽지는 매우 공격적인 육식성 어종으로 ‘물속의 표범’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1급수에 사는 산천어는 아직 불영천에서 관찰된 바가 없다. 냉수어종인 산천어가 서식하지 않는 것은 불영천의 수온이 강원도 심산계곡만큼은 차지 않기 때문이다.
불영사의 영지.


* 불영교 네발나비
불영천 위로 불영교 다리가 그림 좋게 걸려 있다. 2002년 가을, 매미 태풍 때 유실되고 다시 지은 것이다. 2년 전 피해조사를 왔을 때 두께가 한 자나 되는 시멘트 상판이 2백미터 정도나 떠내려가 있었다.
불영교를 건너면 햇살 좋은 숲길이다. 네발나비가 미동도 없이 오수를 즐기고 있다. 네발나비는 날개는 겉과 안의 무늬가 다르다. 그래서 날개를 폈을 때와 접었을 때의 무늬가 전혀 다르다. 네발나비는 여름형과 가을형이 있는데, 성충으로 겨울을 나는 가을형은 날개 표면에 붉은 색이 감돈다.

* 산국
길섶과 숲속에는 산국, 고마리, 거북꼬리, 여뀌, 미역취, 마타리, 기름나물, 꼭두서니, 며느리밥풀, 참취, 닭의장풀, 노루오줌풀, 큰까치수영, 기름나물, 억새, 달맞이꽃, 개망초, 사위질빵 등등이 보인다.
산국은 햇볕을 좋아하는 노란색의 들국화이다. 감국보다 꽃의 크기는 좀 작지만, 가지끝에 산형꽃차례로 한데 어울려 피면 탐스럽다. 들국화 가운데 향기가 가장 진하다. 번식력이 좋아서 사찰 화단이나 경사지 또는 절개지에 꺾꽂이를 해도 잘 산다.

* 금강송
목본류로는 몇 종류의 참나무를 비롯해 밤나무, 산벚나무, 왕버들, 오리나무, 쪽동백, 단풍, 산초나무, 붉나무, 산수국, 국수나무, 쥐똥나무, 댕댕이덩굴, 다래, 조릿대 군락 등이 잡목숲을 이루고 있다. 아까시나무도 몇 그루 들어와 있다.
그런 가운데 아름드리 금강송들이 장정들처럼 여기저기 군락을 이루고 있다. 불영천 건너 산기슭에도 금강송들이 그득하다. 울진-봉화-삼척을 잇는 지역의 금강송은 우리나라 소나무 가운데 질이 가장 뛰어나다. 일제 강점기 때 봉화 춘양역에서 이 금강송들을 많이 실어냈다. ‘춘양목’이라는 별명도 그래서 붙은 것이다. 현재는 불영사가 있는 천축산을 비롯해 휴양림이 있는 통고산, 천연보호림지역으로 지정된 소광리 주변에 금강송 원시림들이 남아있다. 최근에 이들 지역의 소나무를 ‘울진소나무’로 이름을 통일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무슨 영문인지, 이 숲속 금강송은 정강이들이 모두 도끼에 찍혀서 눈을 아프게 하고 있다.

* 사라진 굴참나무
숲길가에 고사(枯死)한 굴참나무 그루터기가 남아있다. 지난 1964년 천연기념물 157호로 지정될 당시 높이가 무려 35미터, 둘레가 6.2미터였다고 한다. 불영사를 품고 있는 천축산에는 굴참나무가 많아서 의상대사가 불영사를 창건하면서 심었다는 전설을 사실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다.
큰오색딱다구리가 철 없는 행자스님처럼 이 나무 저 나무를 툭툭 치고다니며 숲의 정적을 깨뜨리고 있다.
의상대사가 불영사를 창건한 것은 진덕여왕 때인 651년.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기 훨씬 전인, 20대 청년시절이다. <불영사기(佛影寺記)>에 따르면, 경주를 떠나 바닷길을 따라 운수행각을 하던 중, 서역의 천축산과 같은 산이 있어 들어갔더니 마침 연못에 부처님 형상이 비치어 이 곳에 절을 지었다고 전한다.

* 영지
전설의 불영지(佛影池)는 주변의 지형지세를 보아 창건 이전부터 있었던 연못임에 분명하다. 불영사는 크고 작은 암봉들이 함지박 모양으로 절을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주위의 산에서 내려오는 수기(水氣)가 영지에 한데 모이도록 되어 있다.
영지는 연지(蓮池)와 달리 자연성이 인공에 우선된다. 그래서 주위의 지형지세를 닮아 가장자리가 곡선을 이루고 있다. 또, 물의 투영성(投影性)을 이용한 연못이라는 점에서도 연지와는 다르다. 불영지에는 오른쪽 능선 위의 부처바위를 투영한다. 가을바람이 시샘을 해서 그림자가 연상 출렁인다. 불영지는 화마(火魔)를 내쫓는 거대한 벽사의 드무이다. 드무는 물을 담아두는 큰 그릇이다. 화마가 절 안으로 들어올 때, 드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도망간다는 속설이 있다.
지난 번 매미 태풍 때 불영지도 크게 망가졌다. 위쪽으로부터 토사가 밀려 내려와 영지의 4분의 1 가량을 덮었다. 하지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영지 물 위에 수련과 어리연이 평화로이 떠 있다. 소금쟁이 몇 마리가 노란 어리연꽃 늦송이를 희롱하고 있다. 못가에는 철 지난 창포, 꽃창포, 원추리, 옥잠화, 부용, 홍초, 상사화, 수크렁, 제라늄 등등이 쓸쓸한 가을을 이겨내고 있다.
극락전 옆 산수유 열매는 빨갛게 익고, 그 발 아래 맥문동의 주아(珠芽)는 까맣게 익었다. 의상전 앞 배롱나무도 시나브로 잎을 떨구며 허허로이 제 몸을 비워내고 있다. 가을엔 눈길 닿는 곳마다 가을이다.

* 대웅보전 돌거북
불영사의 전각들은 영지를 앞에 두고 방사선 형태로 앉아있다. 그래서 불영지를 화심(花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웅보전 석축 아래에 머리와 어깨 부분만 드러낸 돌거북 두 마리가 있다. 마치 대웅전을 등에 지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지관(地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대웅보전이 앉은 형국이 바다와 같기 때문에 동해 용왕의 화신인 거북을 받쳐두지 않으면 물에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또다른 지관의 이야기를 빌리면, 불영사에 가득한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 물의 동물인 거북을 모셨다는 것이다.
스님들의 이야기로는, 대웅보전을 사바의 고해를 건너가는 반야용선으로 보고 바다 생물인 돌거북 조성했다는 것이다.

* 대웅보전 뒤 금강송
석탑 앞에 서면 대웅보전 뒤로 금강송들이 건장하게 병풍을 치고 있다. 금강송은 절을 둘러싼 암봉과 기슭에 울타리처럼 그득하다.
이곳 사람들은 금강송 줄기가 위로 올라갈 수록 붉다고 해서 ‘붉대솔’이라고 부른다. 금강송은 몸통 속부분인 심재율이 일반 소나무보다 높고, 튀틀리거나 휘는 강도에 있어서도 훨씬 높다. 반면, 수피가 얇으면서도 나무가 터지거나 갈라지는 수축율이 낮고, 굵기에 비해 나이테의 너비가 좁고 비교적 일정하다. 또, 결이 곱고 광택까지 있어서 일찍이 ‘씨받이 나무’라고 불렀다.

* 수간주사
그러나, 이곳 금강송도 솔잎흑파리의 공격을 받아 얼마 전에 수간주사(樹幹注射)를 맞았다. 솔잎혹파리 애벌레의 공격을 받으면 솔잎이 누렇게 변하기 때문에 멀리서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방제는 나무 줄기에다 지름 1센티에 깊이 10센티의 구멍을 뚫고 그 속에다 약제를 주사한다. 비스듬히 뚫기 때문에 구멍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 해우소
불영사의 해우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통 해우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왔다. 최근에 해우소를 보수하는 과정에서 변조칸을 시멘트로 둘러치는 바람에 원래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지금은 분뇨차가 올라와서 수거를 해가지만, 그 전까지는 스님들이 변조칸의 분뇨로 채소를 길러 먹었다. 스님들이 일을 보기 전에 가사와 장삼을 벗어 걸어두었던 횃대가 옛일을 생각케 한다.

* 싸리버섯
칠성각 옆으로 난 숲길은 부처바위로 오르는 길이다. 굴참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와 같은 참나무류들 사이로 잣나무, 엄나무, 개옻나무, 산초나무, 쪽동백, 생강나무, 물푸레나무, 철쭉, 조록싸리, 청미래덩굴, 댕댕이덩굴 등이 활엽수림을 이루고 있다.
불영지에 그림자를 나툰 부처바위 뒤쪽 활엽수림에는 싸리버섯들이 군락을 이루며 탐스럽게 돋아나있다. 싸리버섯은 잔가지[分枝]들이 많아서 산호 모양을 하고 있다. 자실체의 조직은 흰색에 가깝고, 분지의 끝부분은 연한 담홍색이다. 맛과 향기가 좋아서 옛 스님네들은 국이나 된장국에 넣어서 즐겨 먹었다. 그러나, 황금싸리버섯처럼 몇 종은 설사를 일으키는 독성을 갖고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 의상대 금강송
의상대로 이어지는 숲에는 이끼와 일엽초가 다양하게 자라고 있다. 참나무엔 벌써 벌레혹이 달렸다. 그 안에는 겨울을 날 곤충의 애벌레들이 들어있다. 의상대 주변에 흩어진 잣껍질은 청설모가 어디선가 잣을 따와서 까먹은 흔적이다.
불영사 일대의 금강송은 불영천 상류를 따라 천축산과 통고산, 소광리 일대까지 드넓게 퍼져있다. 이 지역 금강송은 교목층에서는 우점하고 있으나 아교목층이나 관목층에서는 소수의 후대목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초본층에서는 어린 금강송조차 관찰되지 않는다. 이런 현실은 머지 않아 식생천이로 해서 금강송의 전성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신갈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등과 같은 참나무류가 뒤를 이어 우점할 것을 미리 말해준다.

* 불영산수화
능선의 솔숲길은 천축선원(天竺禪院) 뒤쪽으로 이어져 있다. 가끔 선방 스님들이 솔숲으로 산책을 나온다. 솔숲은 바람소리부터 다르다. 잡목림에서 나는 부시럭거림이 아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솔바람소리를 ‘송뢰’라고 칭송했다.
거기서 계곡 쪽으로 돌아가면 또 별천지이다. 마치 거대한 용이 몸을 뒤틀며 지나간 듯이 계곡의 화강암반들이 길게 움푹 패여 곳곳에 소와 작은 폭포들을 연출하고 있다. 여울을 만들며 구비돌아온 물소리가 마치 쏟아지는 벽력같다. 선(禪)이 달리 있는가. 옛 조사들은 바위에 걸터 앉아 물소리로 삼매에 든다 했거니...
소리는 밖의 소리와 내면의 소리가 있다. 처음에는 밖의 소리에 주목하다가 다음에는 내면의 소리에 들어가고 결국 마지막에는 듣는 성품마저 공(空)하다는 것을 깨닫는 수행법이 곧 능엄선(楞嚴禪)이근원통(二根圓通)이다.
천길 벼랑 위로는 금강송들이 바위틈을 비집고 저마다 화두를 들고 백척간두에 서 있다. 불영산수화가 바로 이것이다.





김재일 보리방송모니터회장 |
2004-10-27 오전 1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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