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가르침 배우고 실천하는 것은 성불의 기본
매순간 지극한 마음으로 살면 깨침의 단계 이르러
[원문]
사향사과조원성(四向四果早圓成)
삼명육통실구족(三明六通悉具足)
밀승아불수교촉(密承我佛受敎囑)
주세항위진복전(住世恒爲眞福田)
-금오산 향천사 나한전
[번역]
사향(四向) 사과(四果)를 속히 잘 이루고
삼명육통(三明六通)을 모두 다 갖추었다.
부처님 가르침을 공손히 모두 받아
이 세상에 참된 복전을 만들어서 오래 살고자
하네.
[선해(禪解)]
어느 날인가. 나는 법회 중에 한 불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어디서 왔으며,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지식의 정도에 따라, 여러 가지 대답을 할 수 있겠지만, 그 누구도 온전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아니 대답할 수도 없다. 이러한 물음은 생각하기에 따라 엄청난 물음일 수도 있고 허무맹랑한 물음, 아주 쉬운 물음일 수도 있다.
요즘처럼, 먹고 살기 힘들고 바쁜 세상에 이 따위의 질문을 가지고 고민하는 것 자체가 황당할 수도 있다. 더욱이 평범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왔는가?’에 대해 솔직히 고민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불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우리의 삶은 온 것을 모르고 간 곳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어떤 힘에 의해 태어났으며 그리고 늙어 병을 얻어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출가해 깨달음을 얻고자 했던 원인인 생로병사(生老病死)이다.
이에 대해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는 다음과 같이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인간은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을 때는 좁고 어두운 공간, 탁한 물속에 갇혀 고통을 받았다. 그리고 10개월이 지나면 비로소 지상 아래로 밀어내는 에너지가 생기게 되고, 그 때 거대한 압착기에 눌리는 나무 조각과 같은 고통, 기름을 짜내는 참깨가 된 것 같은 고통을 받는다. 어머니의 몸밖에 나온 후에도 고통은 계속돼 부드러운 천으로 감싸주어도 마치 가시구덩이에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것이 바로 탄생의 고통이다.”
그는 이처럼 인간의 탄생을 적절하게 비유했다. 하지만 고통은 이것만이 아니다. 성장하면서 더한 고통을 당한다. 마침내 탄생한 아기는 점점 자라서 등은 굽어지고 백발이 되고 이마에는 주름살이 가득한 노인이 된다. 눈은 시력을 잃어 희미하게 되고 귀는 어두워 잘 들리지 않는다. 입은 이가 빠져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 없게 되고 몸은 기력이 없어져 걷기 조차 힘들어진다. 고통은 그 뿐만이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 얻는 병마가 있다. 암이나. 혈우병, 고혈압, 당뇨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병()속에 인간은 갇혀 산다. 어디 그 뿐인가? 마음이 지어내는 욕망으로 인해 인간은 정신적 충격에 쌓여 온전한 자기 자신을 잃고 헤맨다. 이와 같이 인간은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고통을 당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을 고통 속에서 구제하기 위해 나타나신 분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다.
말하자면, 우리가 어디로부터 왔으며 지금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불교라는 말이다.
부처님이 인도 땅에 태어나 인간으로서 참으로 희유하고 어려운 깨달음을 얻으시고 난 뒤, 육도윤회의 질곡 속에서 신음하는 만 중생을 위해 바른 법의 수레인 법륜(法輪)를 굴리심으로써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보이셨던 것이다. 그리해 인간이 가진 모든 번뇌와 슬픔, 갈애와 분노, 어리석음과 죽음, 전쟁과 공포, 주림과 증오의 굴레를 벗고 깨달음이라는 영원한 행복으로 들어가게 인도하셨다.
오늘의 주련 이야기는 금오산 향천사이다. 옛날 백제의 승려 의각 대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1,035위의 불상을 배에 싣고 백제 땅에 도착했으나 이들 부처님을 모실 알맞은 절을 잡지 못해 몇 달을 헤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배 안에서 치는 종소리를 듣고 나타난 황금색 까마귀 1쌍에 의해 절터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당나라에서 가져와 안치했던 3053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의미하는 불상 가운데 1516불만이 남아 있다. 극락전 안에는 조선시대의 삼존불상이 봉안돼 있는데, 주불은 아미타여래좌상이며,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협시불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멸운에 의해 중건됐다. 극락전, 나한전, 천불전과 더불어 많은 요사채를 갖추고 있다. 천불전(충남문화재자료 173)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의각이 옥돌로 조성한 높이 15㎝ 정도의 소불이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안치돼 있다.
극락전 앞에는 자연석을 가공해 만든 당간지주가 있고, 그 옆 나한전 앞에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 174)이 있다. 천불전 서쪽에 부도 2기(충남문화재자료 179)가 있는데, 의각 대사 부도 1기와, 임진왜란 당시 승군을 조직해 금산전투에 참가했던 멸운대사의 부도 1기로, 의각 부도는 조각이 정교하며 신라나 고려 때 것과는 전혀 다른 작법을 보여준다. 그럼 주련의 내용 속으로 들어가 보자.
‘사향사과조원성 삼명육통실구족: 사향(四向) 사과(四果)를 속히 잘 이루고 삼명육통(三明六通)을 모두 다 갖추었다.’
사향(四向)은 소승불교에서 수도해 깨달음을 얻어 들어가는 4가지 품계이며 수행의 가장 기초 단계인 견도향(見道向), 불교의 근본 진리를 명료하게 보는 눈을 얻는 단계인 정류향(頂流向), 욕계의 모든 혹을 끊는 단계인 일래향(一來向), 욕계 9품의 수혹 가운데 7, 8품은 끊었지만 아직 1품이 남아 있는 단계 불환향(不還向)을 뜻한다.
사과(四果)는 소승불교의 성문들이 탐진치의 삼독을 끊고 위없는 성도에 들어가 부처가 되는 4단계 깨달음의 결과를 말한다.
삼명(三明)은 숙명통(宿命通) 천안통(天眼通) 누진통(漏盡通) 곧 과거의 업상(業相)과 인연을 알아내 내세의 상을 명확히 하며 현재의 고상(苦相)을 깨달아 번뇌를 끊어 버림을 말하고 육통은 천안통(天眼통), 천이통(天耳通), 타심통(他心通), 숙명통(宿命通), 신족통(神足通), 누진통(漏盡通)이다.
말하자면 사향 사과와 삼명육통을 다 구족하기 위해 정진하라는 경구(警句)이다.
‘밀승아불수교촉 주세항위진복전: 부처님 가르침을 공손히 모두 받아 이 세상에 참된 복전을 만들어서 오래 살고자하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평생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는 일이야 말로 복전(福田)을 구하는 길이며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물론 중생들이 이를 따르기란 힘들다.
하지만 이러한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필히 부처님의 시은(施恩)을 받게 될 것임은 틀림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부대중들이 평생 따라야 할 삶임을 명심해야 한다. ■ 조계종 원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