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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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지나가고 지나가면 결국 보이게 된다
틀린 줄 알았는데 다르고 다른 줄 알았더니 같다
혀와 말은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어

강 사 : 법현 스님(태고종 열린선원 원장)
일 시 : 2009년 10월 14일
주 제 : 한국 종교를 말한다
장 소 : 한신대학교 60주년기념관
주 최 : 한신대학교 종교문화학과

고타마 싯다르타는 29세에 출가해 6년 동안 여러 종교를 접하고, 고행 끝에 비로소 중도(中道)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게 됐다. 다양한 종교가 어울려 함께 공존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이런 중도 사상은 누구나 가져야할 마음가짐이라 할 수 있다. 태고종 교무부원장 법현 스님은 KCRP 종교간 대화위원을 맡으며, 각 종교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함께 나아가는데 앞장서고 있다. 10월 14일 한신대학교에서 ‘그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주제로 한신대 교수진, 학생들에게 불교에 대한 궁금증을 질의를 통해 설명하고 모든 종교가 함께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것에 집착하는 일 없이 모든 것을 버릴 것이 요구되는 중도는 불교의 중요한 사상이다. 다른 종교를 이해하면서 불교 수행을 하는 법현 스님처럼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마음으로 이 세상에 같이 존재하는 인연에 감사하며, 모든 것을 비우고 사회발전을 위해 정진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 그것 또한 지나가리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데모를 참 많이 했습니다. 그 당시 대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불리던 운동가 중에 이러한 가사가 있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우리 단결해.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생각해 보면 이는 참으로 웃긴 말입니다. 물가에 심어진 나무는 흔들리기 마련인데 말이죠.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얘깁니다. 사막지역에서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만이 살아남습니다.
<법구경(法句經)>이라는 경전이 있는데, 거기 ‘독사품’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흔히들 독사를 만나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사막에서 만난 독사는 물이 있는 곳을 알려줘 살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죠. 이처럼 지역, 문화 등에 의해 그것이 달리 생각되어질 뿐 세상 모든 것은 결국 연결되어 있는 것이죠.
차동엽 신부가 쓴 <무지개 원리>라는 책에도 소개돼 많이 알려지기도 한, 솔로몬의 일화 중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다윗왕이 어느날 보석세공인을 불러 반지를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그 반지에는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자만하지 않게 하고 힘들 때에 용기와 위안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길 것을 보석세공에게 주문합니다. 보석세공인은 반지를 만들고 글귀가 생각나지 않아 솔로몬을 찾아가 글귀를 부탁합니다. 그러자 솔로몬은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 라는 글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왕은 전쟁에 승리했을 때에 자만심에 빠지지 않고, 승리가 지나가면 또 다른 패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힘든 일이 생기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알고 용기를 얻게 되죠. 이와 비슷한 말이 또 있습니다. 조선시대 유한준(1732~1811) 이라는 사람이 한 말인데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이러한 지나간 상황을 겪으면 결국 보이게 된다는 뜻이죠.

#명상 통해 모두가 ‘하나’임을 체험해야
그럼 과연 이런 말이 어떠한 뜻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대개 ‘틀리다’와 ‘다르다’에 대해 구분을 잘 하지 못합니다. ‘틀리다’는 것은 알고 보면 ‘다르다’라는 뜻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르다’의 경우, 그 구성요소를 분석하면 결국 ‘같다’는 의미가 됩니다.
지금 시기는 추워지기 직전이라 모기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입니다. 그런데 만약 모기가 자신의 피를 빨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스갯소리로 모기와 피를 공유한 사이가 돼버립니다.
조금 어렵게 느끼실 수 있지만 저와 여러분도 이미 같은 호흡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지금 다른 곳에서 공유한 것들을 호흡을 통해서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을 분석하면, 결국 같은 구성요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들은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있고 그런 마음이 붙어있는 상태는 살았다고 말하며, 떨어지면 죽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계속 형성되고 죽는 것을 반복 하는데, 이는 결국 죽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명상수련인 호흡법을 통해 명상을 진행 하면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그 물질들은 일부이며 마음도 구분 되는 것을 알게 되죠. 이런 모든 것은 같은 존재며, 틀린 줄 알았는데 다르고, 다른 줄 알았더니 같고, 결국엔 맞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무상이라 말하는데, 이렇게 마인드가 전개되는 것이 결국 우리 현대사회에서 요구하는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사회 통합 또는 분열의 매체
독도 되고 약도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혀입니다. 우리의 혀와 말은 좋게 쓰이면 좋은 말씀과 화합이 될 수 있지만, 나쁘게 쓰이면 반대로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의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분별하는 것은 감각과 지각을 통해 알아차리게 되는데, 감각은 눈·귀·코·혀·몸·뜻(意)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을 식(識)이라 하여 의식이라고 합니다. 이런 감각을 통해 지각의 현상과 법칙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흔히들 법과 진리라는 말을 같이 사용하는데 이는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과 법칙을 이해하면 법이고 진리지만,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사건이고 사고입니다. 흔히 교통사고도 날만한 상황이니 나는 것입니다. 날만한 상황이 아니면 사고는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떠한 상황도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여섯 가지 정보를 잘 받아들여, 어떻게 저장하고 전달하는지가 삶의 질을 결정하게 됩니다. 말이라는 것은 전달자에 의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국 혀라는 것이 문제가 돼, 전달자의 번뇌와 싸움을 유발하는 것입니다.
혀가 하는 의식 중에 하나가 바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언어화한 것이 문자이죠. 그리고 이런 문자의 사회적 약속이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표면의식은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재의식을 깨워야만 합니다. 개념파악이 분명하고 발라야 어느 공부든지 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종교, 수행, 명상 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말이 곧 사회통합 또는 분열의 매체가 되기 때문이죠.
한국불교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게 됐습니다. 500년 동안 탄압받아 오던 불교는 일본의 침략 때문에 억압된 불교의 상황이 어느 정도 자유스러워 진 부분은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불교를 다 개방시킨 것은 아니었습니다. 딱 한 가지 금지한 것이 있는데, 바로 불교음악인 범패입니다. 범패를 금지한 것에 대해 정확한 이유가 설명된 자료는 없습니다. 하지만 추정하는 바로, 신라때 일본 구법승인 엔닌(圓仁, 794~864)이 당나라 유학당시 쓴 <입당구법순례행기에(入唐求法巡禮行記)>에 산둥반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산둥반도 편에 해상왕 장보고의 이야기가 수록돼 있는데, 그 기록에는 당시 장보고가 지은 법화원이라는 절에 갔는데 그곳에서 하는 불교의식이 당풍도 향풍도 아니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 말은 즉, 그 당시 그 절에서는 당나라도, 일본식도 아닌 신라 고유의 염불과 의식을 하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면 그런 비슷한 의식이 생겨나고, 비슷한 문화는 그만의 비슷한 의식이 생겨납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한국의 문화를 알리면, 그 나라에는 한국의식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사회가 통합되는 것을 방지하려면 그 나라만의 언어, 문화, 음악 등이 금지 돼야 하는 것이죠. 이렇듯 말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마음의 문을 열어야
21세기는 문화, 생태, 명상, 수행 등이 주가 되는 시기입니다. 받아들인다는 의미인 똘레랑스처럼 이 시대는 관용과 용서의 시대여야만 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종교, 사상을 떠나 이런 덕목을 지닌 사람이 종교, 단체,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올라야 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런 종교 간의 대화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차일피일 미룰 문제가 아닌 지금 바로 실행해야 하는 일입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아무 소용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지나간다’라는 말은 불교적 의미도 담겨 있지만, 시간적 관점도 포함돼 있는 말입니다.
개구리는 적정 온도의 물에서는 높이, 그리고 멀리 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 물의 온도가 변해 뜨거워지면 멀리 뛰질 못합니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현재에 충실해야 합니다. 또한 옛날 프랑스 수도원에서 있었던 일인데, 그 수도원 원장이 미사를 드릴 때마다 늘 고양이의 목을 끈으로 묶어 놓았습니다. 처음에는 미사를 드릴 때 고양이가 시끄럽게 할까봐 그랬던 거였는데, 그 신부가 워낙 뛰어난 분이라고 믿은 사람들은 생각 없이 그 행위마저 위대하게 보고 고양이를 숭배했습니다. 이처럼 쓸데없는 의식이나 전통에도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현재의 일, 사랑, 수행, 명상, 공부 등에 열심히 매진해 정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정리= 이은정 기자 seoj84@buddha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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