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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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참회 없이 바른 삶도 없다
탐진치 악업은 끝없어도 한 생각 돌이키면 참회
호국참회도량 도선사, ‘108 산사순례’로 신행바람

[원문]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嗔痴)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일념돈탕진(一念頓湯除)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
-삼각산 도선사 호국참회원

[번역]
내가 예부터 지어온 악업은
끝없는 탐진치에서 비롯되었다
몸과 입과 뜻에 따라 지은 허물,
내가 이제 속속들이 참회 하나이다
아무리 오랫동안 쌓인 죄라도
한 생각 돌이키면 문득 사라지네
마치 마른 풀이 불에 타듯이.

[선해(禪解)]
지난 3년 동안 불교 포교의 최대 이슈는 바로 ‘선묵 혜자 스님과 마음으로 찾아 가는 108 산사 순례기도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한국 불교 포교의 일대 혁명이었다. 이 순례기도회는 108산사에서 108배와 108불공을 올려 인간이 가진 108번뇌를 소멸하여 108선행과 108공덕을 쌓아 108염주를 만들어 가는 인연공덕을 쌓아가자는 데 있다. 사찰 하나를 찾을 때 마다 이러한 행을 실천하는 일은 마치 보현(普賢)행을 실천하는 일과 같다.
이러한 시발점의 모태(母胎)가 된 곳이 바로 삼각산 호국참회도량 도선사이다. 이곳에서 처음 2006년 10월 통도사에 첫 발을 내 디딘 이래, 2,500여명으로 시작된 순례기도회는 평균 5,000여명으로 늘어나 벌써 37회를 넘기고 있으며 참가 인원만 해도 무려 20여만 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71회 하고도 7년의 긴 세월이 아직 남아 있다. 한국불교 포교의 신기원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비단, 순례기도회의 업적은 한국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 스리랑카, 네팔에도 결연을 맺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선묵 혜자 스님이 이러한 108산사 순례기도회를 이끈 연유는 바로 청담 스님과의 무언(無言)의 약속 때문이다. 청담 스님이 평소 주창하신 것은 바로 한국불교 포교였다. 청담 스님은 한국불교 정화운동의 최일선에 나서 오늘의 한국불교를 있게 만든 대선사이다. 평소 청담 스님의 유지를 받들었던 선묵 혜자 스님은 도선사 첫 소임을 맡은 후 7관세음 33일 기도를 봉행 하던 날, 꿈속에서 도선사의 포대 화상이 모셔진 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환한 미소를 머금고 계신 청담 스님을 뵈었다고 한다. 그리고 2004년 7월 또 한 번의 7관세음 33일 기도를 봉행하던 중 기도 회향 당일 청담 스님 석상(石像) 뒤편 하늘에 ‘일심(一心)의 형상을 띤 무지개가 나타났다고 한다. 스님에게 있어 이 형상의 의미는 다름 아닌 청담 스님과 불보살님이 자신에게 어떤 힘을 주는 것이라 생각되었다고. 그 후부터 스님은 모든 일을 자신 있게 추진해 나갔다. 그 가운데 시작한 것이 바로 ‘108산사 순례기도회‘의 발족이었던 것이다.
도선사 하면 청담 스님의 공덕을 빼 놓을 수가 없다. 스님의 생애는 한국불교 근세사의 한 단면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한국불교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 위대한 수행자였으며 결코 산 속에서만 은거하는 소극적인 수행자가 아니었다. 세상 속에서 불타의 정견(正見)을 펴기를 서원한 행동하는 수행자였다. 따라서 근세의 고승들이 그들대로의 투철한 정진을 통해서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면 청담 스님은 그러한 내면적 견성(見性)보다는 중생 속에서 자기의 원력을 성취함으로써 성불에 도달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볼 때 선묵 혜자 스님을 보면 ‘그 스승에 그 제자’라는 말이 옳을 정도로 거침이 없고 어떤 일에도 주저하는 법이 없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108산사 순례기도회’를 회향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도선사의 유래를 살펴보자. 도선사가 있는 삼각산은 예로부터 수도로 건립된 곳이며 조선왕조 오백년의 역사가 전개되었던 유서 깊은 곳으로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호국참회기도 도량이다. 이 사찰을 최초로 창건한 개산조(開山祖)는 신라말엽의 도선 국사이다. 그는 신라의 국운이 쇠퇴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할 무렵, 흥덕왕 원년에 영암에서 태어났다.
스무 살에 혜철(惠哲) 대사에게 불도를 전해 듣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23세에 천도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비구가 되어 그 후 백계산에 옥룡사(玉龍寺)를 창건했는데 제자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고 한다. 이 때 스님의 명성을 들은 헌강왕은 스님을 대궐로 모셔 법문을 듣곤 했다. 스님이 입적하시자 왕은 요공 국사(了空國師)의 칭호를 내렸다. 대방중창기(大方重創記)에 따르면 불법과 천문, 지리의 심오한 이치를 통달한 도선 국사가 명산 승지를 두루 답사 하다가 삼각산에 이르러 산세가 절묘하고 풍경이 수려한 이곳에서 천년 후 말세 불법이 재흥하리라 예견하고 사찰을 건립한 뒤 신통력으로 사찰 옆에 우뚝 서있는 큰 바위를 반으로 잘라 그 한쪽 면에다 주장자로 새겼다고 한다. 불가사의 한 것은 정으로 쪼은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곳이 바로 지금의 석불전(石佛殿)이다.
그 후 조선조 광무(光武) 7년에 황제로부터 정식으로 국가 기원도량으로 지정받은 후 한국불교 정화운동의 선각자인 청담 대선사가 불교의 역사적 사명인 민족적인 문화과업과 불교중흥 그리고 조국통일 성취를 위하여 참회를 통한 호국을 제창하는 원력을 세웠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와 여러 신도들의 도움으로 호국불교의 의지가 한데 모아져 세워진 것이 오늘날의 도선사이다. 주련의 내용 속으로 들어가 보자.
‘아석소조제악업 개유무시탐진치.’
내가 저 먼 과거로부터 지은 바 여러 가지 악업들은 모두가 다 저 시작도 끝도 없는 과거로부터의 탐진치 때문이라는 뜻이다. 참회라는 말은 원래 불교용어이다. 우리나라 불자들이 조석으로 외우는 <천수경>에는 ‘참회게’가 있다. 여기에 ‘십악참회’가 있다.
‘종신구의지소생 일체아금개참회.’
몸과 입과 뜻에 따라 지은 허물, 내가 이제 속속들이 참회 하나이다. 불교는 참회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즉 참회란 이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고친다는 뜻으로 산스크리트어의 ‘크샤마(ksama)’를 음역한 참(懺)과 의역한 회(悔)로 이루어져 있다. 의미는 포살과 자자 의식을 통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고친다는 뜻이다.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제 여화분고초.’
아무리 오래 동안 쌓인 죄라도 한 생각 돌이키면 문득 사라지네. 마치 마른 풀이 불에 타듯이. 불교의 참회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참회의 내용은 <천수경>에 잘 나와 있는데 모든 악업들은 ‘신구의’ 삼업으로 생기며 이제 이 일체를 다 참회한다는 내용이다. 그에 따른 구체적인 실천 항목이 바로 십악참회인데 마지막으로 ‘옴 살바 못자 사다야 사바하’하고 진언을 외운다.
한국 불교 포교에 있어 매우 현실적이며 불교운동가였던 청담 스님이 떠난 지 25년, 오늘의 한국불교는 어떠한가. 스님의 원력은 얼마나 큰 결실을 맺고 있는가. 청담 스님의 행동하는 위대한 수행정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한국불교에 자양(滋養)이 되어 불교 중흥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 조계종 원로의원
200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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