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온 길을 거두어 입구를 봉해 버린
선승의 짧은 생이 풀꽃으로 흔들리는데
내 정작 길 위를 돌며 길을 자꾸 놓친다
멀리서 바라봐야 제 모습 보인다지만
애초 하늘 버리고 무릎 맞대 앉은 산
깊고도 그윽한 속내가 졸졸졸 정겹다
길은 낡았어도 향기 짙은 가을 햇살
누가 알기나 할까 저 이파리 속 벌레 울음
검불은 제 속을 비워 광배를 드리운다
눈물 다 쏟아내고 정좌한 구름 한 채
못물 깨우는 바람 일순 절은 사라지고
비로전 풍경소리는 마을로 내려가네
-권갑하, 시집 <외등의 시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