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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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견성 한 후 법을 설하라
[원문]
但不見性人 讀經念佛 長學精進 六時行道 長學坐不臥 廣學多聞 以爲佛法. 此等衆生 盡是謗佛法人. 前佛後佛 只言見性. 諸行無常 若不見性 妄言我得阿菩提 此是大罪人. 十大弟子 阿難多聞中得第一 於佛無識 只學多聞.
“성품을 보지 못한 사람은 경을 읽고, 염불을 하며, 오래도록 배우고, 정진하며, 하루 여섯 차례 예불을 하고, 오랫동안 눕지 않으며, 두루 배우고, 널리 들으며, 많이 아는 것을 불법으로 아는데 이런 중생은 모두 불법을 비방하는 사람이니라. 앞서 깨달은 부처님과 뒤에 깨달은 부처님이 오직 견성(見性)만을 말씀하셨는데, 성품을 보지 못하였으면서도 망령되이 ‘나는 위없는 큰 도를 얻었다’라고 말한다면 아주 큰 죄인이니라. 십대제자 가운데 아난이 가장 많이 알고 널리 배워서 식견이 제일이었으나 부처님께서는 성문들로 하여금 도(道)에 벗어나게 하여 무식하게 만든다고 책망을 하셨느니라.”

[해설]
달마 스님은 우주의 근본 실상이 마음으로 된 도리를 모르고 불법을 행한다 함은 불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처님께서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라고 말씀하신 것도 그 만큼 참된 불법 만나기가 어렵단 말씀입니다. <천수경> <반야심경> 외운다고 불법 만난 게 아닙니다. 눕지 않고 수행하는 것을 장좌불와(長坐不臥)라고 하는데, 성품을 보지 못하면 장좌불와를 아무리 오래 한다고 해도 불교를 비방하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기도라는 말을 쓰는 것도 불교를 비방하는 겁니다. 모든 존재가 부처이니 빌 대상이 없는 겁니다. 우리가 형상에 집착을 하니 “쇠로 된 불상은 용광로를 지나지 못하고, 흙으로 된 불상은 물을 지나지 못하고, 나무로 만든 불상은 불을 지나가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절을 하더라도 우주의 근본, 모양이 없는 그 자리를 향해서 절을 하셔야 됩니다. 법당의 불상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니까, 우리들 마음의 세계에서는 이것을 초월해 나가야 됩니다. 이런 것을 보고 타종교에서 ‘우상 숭배다’, ‘미신이다’, 어떤 분들은 ‘마귀의 소굴이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마귀를 믿는 분들은 마귀입니다. 그러니까 마귀를 만드는 것도 우리가 만들어 놓는 겁니다.
“사람이 만든 불상에 왜 절을 하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근본교리 가운데 삼법인(三法印)의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의 가르침을 알면 어떤 것이든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과학에서도 증명했듯이 모든 물질은 원자 차원에서 일초에 99억 번을 진동하고 있으니 시간성, 공간성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실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대상을 향해 절을 하니까 다른 분들이 봤을 때 우상숭배요, 미신이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하지만 불교는 대상이 없습니다.
불교를 조금 이해하시는 분들이 ‘불교는 무신론이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사실 신(神)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완전히 무신론도 아닙니다. 신중(神衆)도 있지만 목숨을 걸고 그 분들한테 매달리는 것이 아니고 방편입니다. 달마 스님께서 말씀하신 우주를 그대로 하나로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신행을 할 때 정도(正道)로 가는 것 입니다.
우주를 그대로 하나의 성품으로 보고 십분 정진한 것이, 성품을 보지 못하고 평생 장좌불와를 한 것보다 낫다는 얘깁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가르침과 달마 스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은 우주의 근본 실상, 하나의 마음으로 된 세계를 믿는 것입니다. 간화선 수행은 그 자리를 의심하는 겁니다.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 부처님으로부터 육조혜능 스님까지 가르침은 이해를 전제로 하고(理入) 닦아 나가는 수행법입니다.
‘앞서 깨달은 부처님과 뒤에 깨달은 부처님이 오직 견성(見性)만을 말씀하셨다.’
미륵부처님, 아미타부처님, 석가모니부처님께서 한결같이 중생들은 본래 성불할 수 있는 씨앗을 가지고 있으니까 견성할 수 있는 길만 일러 주셨습니다. 어떤 부처님이 온다고 해서 우리를 부처로 만들어 주는 법은 없어요. 그런데 깨닫지 못하고 깨달았다고 간혹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것은 증상만(增上慢)으로 큰 업이 된답니다.
십대제자 가운데 아난 존자는 부처님 말씀을 들으면 모두 기억을 했답니다. 아주 총명한 분이셨습니다. 법문을 듣고 성문 제자들에게 설명을 하면 부처님께서는 “너는 도리어 성문들을 도에 벗어나게 만들고 무식하게 만드니 하지 말아라”하고 말씀하셨답니다. 아무나 법을 설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품을 보지 못하고 법을 설하는 것은 상대도 속이고, 나도 속이고, 부처님도 속이는 일입니다. ■ 청주 혜은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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