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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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고 고집하지마시고 모든 걸 둥글게둥글리세요
(지난 호에 이어서)
그래서 내가 혼자 있을 때 사람을 죽였다 해도, 아무도 못 봤다 하더라도 천지가 다 보고 있는 겁니다. 가설이 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소리 내가 아마 몇 번 했을 거예요. 지구가 버스라면 버스 안에서 내다보지도 못하고 어디로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버스 안에서 옥신각신하면서 ‘이게 내 의자다, 저것이 내 의자다’ 하고 서로 뺏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이렇게 싸워야 되겠습니까? 이 버스가 어떻게 시공을 초월해서 도는지, 이게 어떻게 해서 이렇게 찰나찰나 걸림이 없이 돌아가는지 이것을 이 버스 안에서 우리가 상세히 증득한다면, 나를 증득해서 내가 벗어난다면 그런 데서도 모두 속박 안 받고 자유스러울 겁니다.
우리가 가만히 생각을 한다면, 이 모두가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도깨비장난 하는 것과 같고 어떻게 보면 즐겁고 어떻게 보면 환희스럽고…, 미생물에서부터 천차만별로 헤아릴 수가 없는 그런 생물들이 모두 암수컷이 되어서 자식을 낳고, 그래 놓고도 뭐 사람들처럼 질투를 하고 그러는 게 없이, 수컷이라면 암컷을 많이 두어도 그저 순간순간만 하곤 지나가면서 그냥 착을 두지 않고 살더라고요. 그런데 사람은 왜 그렇게 착을 두느냐는 얘기죠. 그까짓 거 찰나에 살다가 찰나에 가고, 한 철 살다가 가고 또 한 철 오고 가고 그저 그러는 거뿐인데 그렇게 야단들이거든요. 요만한 거 가지고도 그냥 불편하게 싸우고 네가 잘못했느니 내가 잘못했느니 하고 싸우고, 또 그런가 하면 그것뿐입니까? 자식이 가출했다가 들어오면 “요놈의 새끼, 깡통을 찰 놈의 새끼!” 그러고선 욕을 하고 말입니다. 여차하면 때리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지금 속에서 그 업식으로 인해서 그렇게 되는 건데, 그 의식이 자기 마음을 통해서 자꾸 나와서 그렇게 만드는 건데 마음에서 고장난 건 마음으로 고쳐야지 어떻게 때리고 욕을 해서 고칩니까? 그래서 주인공은, 한마음은 둘이 아니니까 벌써 자식과 부모 사이다 이런다면 가설이 돼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 내 주인공에다가 ‘둘이 아닌데, 저 애가 저렇게 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너 아니냐.’ 하고 모두 맡긴다면 거기까지 불이 들어오게 돼 있거든요. 통신이 되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통신이 됨으로써 자기 몸을 자기 마음이 끌어들여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이 스스로 그렇게 하기 싫어야 되는 건데, 자기 마음이 자꾸 나가니까 몸도 따라 나가는 거 아닙니까? 이러니 그 도리를 여러분이 잘 알아서 행하시면 아주 편안하게 사실 겁니다.
지금 모두 볼 때에, 영계성으로 인해서 바깥에서 영계들이 들어와 집을 차지하고 있게 되면 그게 바로 정신병자가 되는 겁니다. 내 집이라고 들어와서 살거든요. 내 집이 비었으니까, 모르니까, 주장자가 없으니까요. 그러니 아까 얘기한 다섯 가지가 모두 주둔해서 있으니 그것을 여러분은 잘 아셔서, 그저 욕으로 다스리지 말고 부드럽게 대해 주고 거기에 맡기세요. 아무리 나가서 자고 오더라도 “너, 나가서 춥지나 않았니?” 또 더울 땐 “덥지나 않았니? 밥이나 먹었니?” 아, 이렇게 따뜻하게 좀 해 주고 “아이, 시원하게 집에서 먹고 집에서 하지 왜 그랬니?” 하고 이렇게 인의롭고 부드럽게 대해 준다면, 그러고 거기다가 맡긴다면 거기서 그쪽으로 불이, 통신이 갈 수 있죠. 그러나 욕을 하고 말로 한다면 통신은커녕 오히려 마음이 천리만리 달아나가죠.
그러니 부처님 말씀을 의심하지 마시고, 여러분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데 조심해서 잘 실천해 보십시오. 부부지간도 그렇고 자식지간도 그렇고 모두가 그렇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가정에서도 금방 찰나에 “여보!” 하면 남편이 되고 “아버지!” 하면 아버지가 되고 “얘, 아무개야!” 하면 아들이 되고 “여보게!” 하면 사위가 되고 아, 이렇게 하고들 살지 않습니까? 그렇게 찰나찰나 바뀌면서 살아나가는데 내가 남편이 됐을 때 나라고 하겠습니까, 아들이 됐을 때 나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니 모두가 공해서 찰나찰나 화해서 돌아가고 나투어 가는 거니까 나라고 고집하지 마시고 모든 걸 한 아름으로 안아서 둥글게 둥굴려 보십시오. 그렇게 넓게 오신통이라는 이 다섯 가지를 모두 둥글려서 굴린다면 그게 바로 통 속에서 벗어나서 만사를 다 부끄럽지 않고 자유스럽게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상천하 모두를 다 함께 해서 도리천에 이르러 고요한 적멸궁에 든다면 다시금 이 세상에 소임을 맡고 나올 때는 별성으로 화해서 이 세상에 떨어지게 되고, 거기도 별성이 있고 여기도 별성이 항상 자기한테 같이 해 주기 때문에 항상 자기 소임을 그대로 잘 하고 갈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된 분들은 가시는 것도 오시는 것도 없습니다. 오신 것이 없기 때문에 가신 것도 없고, 그냥 과거가 현재고 미래가 현재니까 영원한 오늘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영원한 오늘에 그대로 지금 계십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 자체 깊은 속을 안다면, 부처님의 그 마음 깊은 속도 같이 둘 아니게 알아서 부처님이 계신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1(남): 큰스님! 감사합니다. 『반야심경』에 보면 ‘빌 공(空)’자와 ‘없을 무(無)’자가 많이 나오는데 특히 이 공에 대해서는 이해가 어렵습니다. 불교 사전에 보면 ‘진공묘유 진여실상’ 등으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큰스님께서 풀이하신 『뜻으로 푼 반야심경』에는 ‘색불이공 공불이색’을 ‘물질과 마음이 다르지 않고 마음은 모든 물질적 현상과 다르지 않나니’ 하여 공을 마음으로 풀이하셨습니다. 그리고 법문집에 ‘모든 것이 다 공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그 공에다가 다 맡겨라.’ 하고 자주 거론하셨습니다.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공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큰스님: 공에 빠지면 안 되죠. 빌 공에 빠지면 안 되고요. 우리가 공이라 하면 용무(用無)를 말하죠, 용무! 우리가 그냥 자연스럽게 움죽거린다. 그런데 우리가 그대로, 여기가 그대로, 지금 공이라는 자체 그대로입니다. 찰나찰나 나투면서 화해서 돌아가니 그대로 그냥 비었단 얘깁니다. 아까 얘기해 드렸죠? 한 가정으로 친다 하더라도 아버지가 됐을 때 나라고 하겠느냐, 남편이 됐을 때 나라고 하겠느냐 이랬으니 그거는 어떤 거라고 말할 수 없으면서 그대로 용무가 되죠. 그냥 그대로죠. 그래서 아마 여래라고 이름을 붙여 놓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그대로 여래 속에서 여래의 행동을 하면서, 법이 그냥 그대로 용이면서 무다 이겁니다. 이 모두가 다 그냥 비었습니다. 우리가 ‘비었습니다’ 이래도 빈 줄로만 알지 마시고 ‘꽉 찼다’ 이러더라도 꽉 찬 줄로만 알지 마세요.
전 엊그저께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구에 에너지가 다 없어진다면 무엇으로 살 것인가? 그런데 이 허공에 생명들이 꽉 찼느니라.” 했습니다. 생명이 꽉 찬 데는 에너지도 꽉 찼단 얘깁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용무를 그대로 알아서 진실하게 함이 없이 할 줄 안다면 에너지를 얼마든지 끌어 쓸 수가 있다는 얘깁니다. 왜 못한다고만 생각하십니까? 왜 우리는 중생이기 때문에 죄가 많다고 생각을 하시고 우리는 왜 못한다고만 생각하십니까?
200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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